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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 소설/백만 번 전생한 나는, 평화로운 세상이라도 방심하지 않는다.

26화 데니어

by Hellth 2022.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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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지 않는다]라는 목표를 가지고 살고 있다.

매일 아침마다 거울을 보며, [눈에 띄지 않는다]를 삼창 한다.

눈에 띄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눈에 띄면 [적]에게도 주의를 끌게 된다.
승리란, 단순히 싸움에서 이기는 것만이 아니다.

나에게 있어 승리란, 생존이며, 그것은 즉슨,
적이 나를 죽일 필요조차 없다는 생각이 들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렇기에 내가 목표로 하는 것은 길가의 돌이다.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에 살의를 담는 자가 있을까?

적당한 크기의 돌이라면, 아무 생각 없이,
걷어차는 경우가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손가락으로 잡기도 힘들 정도의 작은 돌이라면?
그렇다, 나는 아주 작은 돌이 되고 싶다.
아무도 볼 수 없고,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길가의 작은 돌.

그걸 위해선 무엇보다 눈에 띄지 않아야만 한다.

초등 학과 과정 이래, 나는 계속해서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물론, 쉴라라는 여자가 있던 탓에

초등 학과 시절에는 목표를 달성했다고 말하기 힘들지만.

하지만, 지금은 쉴라도 없고,
쉴라처럼 나에게 덤벼드는 녀석 또한 없다.

그저 조용히 살기만 하면 된다.

동아리 활동도 하지 않고, 위원회에도 속하지 않고,
어찌 됐든 최대한 주목을 받지 않도록….
하려 했는데, 중등 학과 2학년으로 진급함과 동시에
나는 학생회에 소속되어 버렸다.

안나 양에게
'렉스 군, 학생회에 들어와 주지 않을래?'
라고 부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안나 양은 전 학생회장이라는 직책을 가지고 있다.

이 학원에서 학생회 멤버가 후배에게 학생회 입부를
권유하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어째서 나인가 하는 의문이 생겼다.
그렇기에 이유를 물어봤다.

"아, 안나 선배…. 저를 의지해주시는 건 기쁘지만,
어째서 저인지…."

'학생회는 잡일도 많이 해야 하고, 시간도 많이 빼앗기는데,
장점이라곤 내신밖에 없어.
그래서 다른 애들한테 부탁하기 껄끄럽더라구.'

안나 양은 단점만을 얘기했다.

권유를 받아들일 이유가 없었다.
애초에 [학생회]라는 조직은 교사로부터,
어느 정도의 권한을 받고, 학생들을 감시하는 역할이다.

즉, 어른들의 앞잡이나 다름없다.

세뇌당한 자 중에서도, 더욱 어른들에게 순종적인 자들이
내신이라는 에스컬레이터식 진학에 있어,
거의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미끼에 낚여, 부려먹혀질뿐이다.

게다가, 사사건건 학생들 앞에 서기에,
굉장히 눈에 띄는 포지션이기도 하다.

눈에 띄지 않겠다는 목표를 내걸고 있는 데다, 세뇌 교육에서 벗어나,
투쟁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나에게 있어,
학생회는 득이 될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 결과,
나는 중등 학과 2학년에 진학함과 동시에 학생회에 소속되게 되었다.

아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모르겠다. 분명 득이 될 게 없어, 거절하려 했다.
하지만,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필요한

서류들의 준비를 끝마친 채, 학생회실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생각하고 생각해,
그나마 가장 그럴듯한 이유를 찾아냈다.

안나 양의 존재.

그녀는 어린 시절의 나를 관리하던 존재였다.
보육시설에서 만나, 지금까지 교제를 해온 상대이다.
학생회 일로 바빠, 중등 학과로 진학한 뒤에는
연락이 뜸해졌지만, 만나면 나름대로 대화를 하고,
예전처럼 상냥하게 대해주었다.

즉, 나는 그녀에게 동생 취급을 받고 있다.
그게 뭐가 곤란하냐면,
안나 양은 나와의 물리적 거리가 항상 가깝다는 것이다.
타인과 접할 때보다 훨씬 더 가깝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안나 양이 미인이라는 것이다….

멀리서 보면, 여신인가 싶을 정도의 금발을 가진 미녀이며,
큰 키와 날씬한 몸매, 작은 얼굴과 뚜렷한 이목구비.
게다가 발에는 검은색 타이즈를 신고 있다.

타이즈….
나는 사춘기에 들어선 남자,
정신이 육체에 영향을 받고 있기에,
여자의 몸에는 남들처럼 흥미가 있다.

타이즈는 몸에 딱 달라붙은 채로 노출을 줄여주는 의류지만,
왠지 모르게, 나에게 있어 타이즈는 알몸과 비슷한 수준으로
느껴졌기에 안나 양의 다리를 볼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유를 모르기에 조사했다.
[모르겠다면, 알 때까지 조사해라.]
이것이 내가 미지를 상대할 때의 마음가짐이다.

그 결과,
나는 섬유의 굵기를 데니어라 부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좀 더 면밀하게 조사한 결과,
안나 양이 애용하는 타이즈는 60 데니어로,
언뜻 보기에는 새까맣지만, 적당한 비침이 있는
품위 넘치는 수치의 데니어라는 것을 깨닫고,
결과적으로 최근에는 60 이라는 숫자만 보고도
약간 흥분하게 되었다.

그런 60 데니어의 타이즈를 입은 금발 벽안의 미녀가
손을 뻗으면 닿는 거리에서 학생회에 들어와 달라 부탁하고 있다.

내 정신력으로는 거절할 수가 없어,
"아…, 아, 알겠습니다.
안나 선배의 부탁이라면, 뭐든지 할게요!"
라고 우물쭈물 거리며 대답하는 게, 한계였다.

그렇게 나는 학생회 소속이 되었다.

눈에 띄지 않는다라는 목표를 방해하던 쉴라가 사라져,
손쉬울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의 복병이 나타나,
나를 주목받는 장소로 몰아넣어 버렸다.

하지만, 나는 다시금 생각을 바꾸었다.
안나 양은 애초부터 복병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내가 성적 우수자로서 있을 수 있는 것 자체가,
공부를 가르쳐 주는 안나 양 덕분이었기 때문이다.

안나 양은 여기까지 내다보고,
나에게 공부를 가르쳐 준 것일까….

어찌 됐든, 나는 미인 누나에겐 거역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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