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외부 입시를 치르지 않은 것을 실수라 여긴 것은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르고 있는 도중의 일로,
중등 학과보다도 높은 위치에 있는 고등 학과는
전망이 좋은 대신, 교통편이 좋지 않았다.
학교에 도착해서도, 1학년은 교실이 3층이기에,
우리는 또다시 가파른 경사를 올라온 발을 이끌며,
3층까지 계단으로 올라가야 한다.
고등 학과에는 외부 입학생들도 꽤 많았다.
지금까지는 해봐야 3할 정도였던 외부 입학생들이
고등 학과에 들어서자, 반절 가까이 차지하고 있었다.
내가 선택한 것이 고등 교육과라 이 정도지,
전문 교육 과정 과목은 오히려 외부 입학생들이 더 많다고 한다.
외부 입학 파와 에스컬레이터 파.
고등 학과에 진학하며, 더 명확하게 갈리기 시작했다.
에스컬레이터 파는 나름대로의 긍지 같은 게 존재했고,
외부 입학 파 역시 에스컬레이터 파에서 자신들을
깔보는 것 같다며, 영문모를 대항심을 가진 모습이었다.
굳이 다투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 다투는 모습….
역시 모두 세뇌를 받고 있는 것이다.
에스컬레이터 파는 귀족적 분위기로,
엘리트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 [엘리트 의식]이라는 것은 지배자 층에서 생겨나는
실체 없는 꿀과 같으며, 피지배자 층은 그것을
실존하는 것으로 여기며 갈등이 생겨난다.
쓸데없는 다툼을 벌이는 두 조직은 진정한 [적]은
외부에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환상이나 다름없는 엘리트 의식을 지킨다는 목적으로,
동지가 되어야 할 상대와 의미 없는 피를 흘려가며,
서로 손해만을 보고 있다.
뭐, 싸우는 게 좋다면야, 마음대로 하라지.
물론, 나는 싸움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살아남는 것]이다.
그를 위해 눈에 띄지 않는다는 목표의식을 가지고 행동하며,
다투지 않고 이기는 것이 승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재회한 쉴라와 같은 반이 되었다.
'있잖아, 렉스…. 그 뭐라고 해야하나…?'
재회 직후의 쉴라는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표현하지 못하겠다는 눈치였다.
그 모습에 나 역시 비슷한 태도로 대응하고 말았다.
뭐야? 어떡하지? 뭐라 말해야 할까? 부끄러워….
초등 학과 졸업 후, 떠는 그녀는 고등학생이 되어,
완전히 어른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차분함이 드러나는 것은 물론,
몸매 역시 완전히 여성스러워졌고, 뭔가 좋은 냄새도 났다.
나는 쑥스러워,
"여전히 고슴도치 같은 머리네."
"그 빨간 머리는 피로 염색한 거야?"
같은 말밖에 할 수 없었다.
그러자, 쉴라도
'너도 여전히 죽은 동태 눈깔을 하고 있네.'
'공부 말고 친구는 있니?'
라고 되받아치며,
대화의 9할 이상을 서로에 대한 욕설로 성립하고 있었다.
그렇게 다투다 보니, 어느새 우리들의 주위에는
에스컬레이터 파와 외부 입학 파의 학생들이 모여 있었고,
마치 나와 쉴라가 서로의 대표자 격이 되어,
다투는 것처럼 되어가고 있었다.
아닌데…, 실은 나랑 쉴라는 친하다고.
하지만,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말다툼을 했고,
학기 초 시험에서 나와 쉴라가 동점을 받으며,
무승부가 되기도 했으며, 이후 성적뿐만이 아니라,
수업 중의 태도 같은 것들로도 경쟁하게 되었다.
물론, 나는 싸우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걸 위해선, 내가 어디선가에서 패배하면 된다.
그러면 쉴라와의 다툼도 끝이 나고,
나의 패배로 에스컬레이터 파의 무리들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대표자로 내세우게 될 것이다.
여기서 쉴라에게 패배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승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세력을 대표해 화살받이가 되는 것은 손해만 볼뿐이다.
나는 득이 없는 행동은 하지 않는 타입이다.
왜냐하면, 나는 단순히 15살이 아니기 때문이다.
백만 번의 전생을 산 경험이 있는 15살이다.
정신의 성숙상태는 누구에게도 비할 바가 못 된다….
미래를 위해, 지금 패배한다는 선택지를 선택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다음 중간고사에서 승부하자.
지면 이기는 쪽의 명령을 뭐든 들어주기로.'
어? 방금 [뭐든]이라고 했지?
해보자 이거야─!
질 수 없는 승부가 시작됐다.
달아오른 반 친구들은 쉴라와 나를 중심으로 갈라 선 채,
함성을 지르며 우리들의 싸움을 부채질했다.
나는 쉴라에게 지고 싶지 않았다.
아니, [뭐든]이라는 단어가 너무 매력적이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진짜 그런 건 아닌데, 쉴라를 상대로 일부로 지는 것은
초등 학과 시절 전력을 다해 겨뤘던 쉴라와의 추억을 더럽히는 일이라 생각한 것이다.
즉, 예의범절에 관한 문제다.
나는 백만 번의 전생을 반복한 15살.
[살아남는다]라는 목표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그건 둘째치고 쉴라가 뭐든 들어주겠다니, 반드시 이기고 싶다.
우리들의 경쟁이 옆 반까지 알려져,
어째서인지 내기로 판이 커지기 시작했고,
마틴이 중계자 역할로 나서며,
현재 배당은 반반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나는 따돌림을 좋아하지 않는다.
다만, 외부 입학 파에게 바보 취급을 당하기는 싫다.
좋아, 쉴라에게 건 걸 후회하게 해 줄게.
나는 평소보다 더 빡세게 기합을 넣고,
중간고사를 치렀다.
그리고──.
나는 승리했다.
이로써, 나는 쉴라에게 [뭐든] 명령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뒤늦게 깨달았다.
……이거, 막상 쓰기에는 뭐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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