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세계의 이야기다.
나는 이 세계의 인류가 상정할 수 있는
모든 생명체가 되어봤다고 생각한다.
암수 성별은 물론 형태마저도 가지각색이었다.
애초에 생물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것으로 태어나,
영겁에 가까운 시간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천수를 누리지 못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전생을 거듭할 때마다 생각하는 게 있다.
[나는 다른 생명체의 마음을 모른다.]
암컷 생명체로 태어났을 때는 수컷 생명체의 기분을 알 수 없었다.
형태가 없는 것으로 태어났을 때는 형태가 있는 것의 기분을 알 수 없었다.
반복적으로 전생을 거듭한 내 영혼은 축적된 기억으로부터,
다른 생명체의 기분을 얼추 유추할 수 있게 되었을 뿐─.
실제로 나는 이런 식으로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다른 생명체의
기분을 유추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나는 지금 벽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다른 세계에서 [여자]라 불리는 생명체로 태어난 적이 있다 한들,
그것을 이 세계의 [여자]와 같다고 볼 수 없으며,
그저 같은 이름을 가진 무언가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이번에 전생한 세계는 특히 더 제각기 개성이 다르고, 다양했다.
같은 생물이라고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다.
입장, 분위기 그런 것들이 큰 영향을 미치기는 하지만,
이외에도 다양한 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혀 사람의 사상을
다양하게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결론은 즉, 나는 쉴라의 기분을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영화 보러 가자고 얘기하고 있잖아!'
얘기가 아니라, 고함치는 거잖아!
우리들은 어째서인지 다투고 있는 중이다.
싸움을 하게 된 [계기]가 뭐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발단은 쉴라와 그녀가 이끄는 외부 입학반 여자 두 명과
나, 마틴, 그리고 또 다른 에스컬레이터 입학반 학생을 포함해,
총 여섯 명이서 5월의 황금연휴 중에 영화를 보러 가자는 의견 제시였다.
애초에 쉴라가 외부 입학반 대표라는 게 이해가 가질 않아.
이 녀석은 유치원부터 초등 학과까지 에스컬레이터 입학반이었고,
없었던 건 중등 학과 때뿐이라고.
그래도 괜찮은 거냐? 외부 입학반.
이 녀석 실질적으로는 에스컬레이터 입학반에 가깝다고.
뭐, 그건 둘째 치고.
우선은 이 고함부터다.
나는 마틴 일행과 함께 5월 황금연휴에 영화를 보러 가자는 권유를 받았다.
하지만, 나는
"아니, 연휴 동안에 공부하고 싶어서"
라는 이유로 권유를 거절했다.
그랬더니, 쉴라가 펄쩍펄쩍 뛰며, 화가 난 톤으로 소리치기 시작했다.
영문을 모르겠다.
물론, 나는 [학생의 본분은 공부다!]라고 말하며,
다른 사람에게도 학습을 강요할 생각은 전혀 없다.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하는 이유는 안 하는 것보다,
하는 것이 내 미래의 선택지가 넓어지기 때문이고,
[성적은 예습을 그만두는 순간 내려간다]라는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즉, 철저하게 내 개인적인 의견일 뿐,
연휴 동안 공부를 하지 않는다고,
남을 비난하거나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공부를 안 했으면 하고 바랄 정도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이 공부를 하지 않을수록,
내 경쟁 상대가 줄기 때문이다.
그런 내 개인적인 사정으로 연휴 스케줄을 정했을 뿐인데,
어째서 화를 내는 것인지 전혀 이해가 가질 않는다.
쉴라와의 대화는 대체적으로
[고함]과 [화를 내는 것]이기에, 익숙해진 상태다.
우리들에게 있어 고함은 장난과도 같은 느낌이기에,
나 역시 쉴라에게 꽤 심한 말을 했던 적이 있다는 자각도 있다.
우리들이 아니라면 용서할 수 없을 정도의 온갖 다양한
욕설들을 서로에게 내뱉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믿음이 있었다.
이 믿음이 무엇이냐 하면, [선]이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넘어서는 안 될 선이 존재했고,
그 선을 넘어서까지 끈덕지게 다투는 일은 없었다.
또한, 나는 쉴라에게 꽤 심한 말을 하고 있지만,
[대머리], [뚱땡이], [멍청이], [등신] 같은
사실과는 다른 욕설은 하지 않았다.
그건, 쉴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눈에 보이지 않는 협정에 의해,
우리들의 관계는 성립되고,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대화는 분명히 선을 넘어섰다─.
나는 쉴라가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까지 화를 내고 있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어 당황한 채로 쉴라의 말꼬리를 잡아가며,
맞대응하고 있었다.
'잠깐만! 이쪽으로 좀 와바!'
격한 대화가 극에 달했을 무렵,
쉴라가 내게 말했다.
밖으로 나오라는 소린가.
부럽다.
세상에는 남자가 여자에게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는 풍조가 있는 것 같은데,
우리 사이에서 만큼은 그런 건 무효지!
나는 전생에서 배운 군대식 격투기를 떠올리며,
어떻게 대응할지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물론, 그때는 상대가 인형이었고, 팔이 네 개였으므로,
상황이 다르긴 하지만, 응용 정도는 가능할 것이다.
그렇게 교실에서 복도로 끌려 나온 나에게 쉴라가 귓속말을 해왔다.
'마틴을 데리고 나올 명분이 필요하단 말이야.'
아무래도 쉴라가 정말 때리고 싶었던 것은 내가 아니라,
마틴이었던 것 같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쉴라에게 말했다.
"알겠어, 내가 그 녀석 뒤에서 팔을 붙잡을게.
너는 마틴이 도움을 요청하기 전에 끝내버…."
'그게 아니고! 아…, 뭐라 해야 하나….'
'렉스한테 말해도 괜찮으려나?'
그렇게 갈등하는 척하던 쉴라의 발언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친구 A가 마틴에게 관심이 있기에,
어떻게든 두 사람이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고 싶다.]
사정을 알게 된 나는 친구의 연애 중개인 노릇을 하고 있는
쉴라를 동정하며, 그녀를 돕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생각만 했다.
나는 연휴 동안 공부하고 싶으니까, 알아서 하라고.
'도와달라고! 하루 정도는 괜찮잖아!'
하아, 어쩔 수 없네. 진심을 말해야겠어─.
"나는 마틴이 행복해지는 걸 용납할 수 없어…."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니, 쓰레기니!?'
애초부터 논리적이지 않다.
마틴과 그 아이를 이어주고 싶은 거라면,
굳이 나를 통할 이유가 없다.
게다가, 나와 마틴을 포함해 한 명 더 있는 상태기에,
내가 없더라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어색할지도 모르기에 단 둘만 남는 상황을 피하게 하기 위함이라면,
2:2여도 충분할 것이고, 그 정도 눈치는 있을 것이다.
그런 내 생각을 쉴라에게 털어놓았다.
그랬더니, 다른 한 명 또한 이어주려는 계획이라고 한다.
즉, 나와 쉴라를 중개인 역할로 한 더블 데이트를 계획한 것이다.
나는 생각했다─.
인싸들은 다 죽었으면 좋겠다.
그보다 최근 들어 새콤달콤한 청춘의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지 않은가?
학생의 본분은 공부야! 공부하라고, 공부!
연휴에 뭘 하겠다고? 데이트? 아니, 예습이랑 복습이나 해!
나는 딱히 연휴 동안 공부하는 것을 강요할 생각이 없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학생의 본분은 공부다!]라고 외치고 싶다.
하지만, 거절하기엔 쉴라가 불쌍하다….
우리 둘은 반에서 성적 1, 2등을 다투고 있다.
서로 팽팽하기에 언제 순위가 뒤바뀔지 모른다.
그런데도 쉴라는 친구들의 연애 상담 따위로 중요한
공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왜 굳이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걸까.
스스로의 행복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벅찬 나에게는
쉴라가 성녀 혹은 또라이로 보였다.
아니, 애초에 그 둘은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서 쉴라가 빚을 지게 만드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가 공부하는 것은 50%는 쉴라를 이기기 위함이기에,
쉴라가 나와 동등한 공부 시간을 잃는다면,
결국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라고 볼 수 있다.
결국, 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승낙했다.
하아…, 하아…, 하아아아─….
'고마워, 나중에 답례할게.'
하아아? 흐음…, 흐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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