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장래와 노동
만약, 자신이 [주인공]이라면?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물론 나는 [살아남는 것]을 최우선적으로 하고 있으며,
내가 생각하는 [주인공]이란,
그런 안정된 삶과는 정반대의 위치에 있다.
하지만, 영웅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품는 것을 완전히 포기할 수는 없었다.
다만, 그럴 때마다 언제나 괴로운 일을 경험했을 뿐만 아니라,
나와 관련된 사람들도 끔찍한 결말을 맡게 되었을 뿐.
내가 수차례의 실패를 거듭한 끝에 배운 것은
[사람은 제멋대로다]라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안나 양에 대한 것만 봐도 그렇다.
그녀는 자신의 힘으로 고민하고,
결론을 내린 끝에 부모를 설득시키며 음악의 길로 들어섰다.
나는 그녀가 단호하게 결단 내리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정말 예상치 못했던 일로, 밀림네 집에서 머물다 [무언가]
정신적인 전환점을 찾게 된 안나 양에게 억지로 끌려가,
어째서인지 안나 양과 안나 양 부모님의 가족회의에 함께 참석하게 되었고,
한 가정 내 진로 문제에 관한 다툼을 바로 옆에서 보게 된 것이다.
참고로, 어째서 나를 데리고 간 것인지에 대해 물어보니,
안나 양은 이런저런 이유를 얘기해줬지만,
예상컨대 [잠잘 때, 인형을 안고 자면 안심이 된다]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나를 데려간 것이라 생각했다.
쉽게 말하자면 애착 인형 정도일까.
내가 있는 것만으로 안심이 된다면야 다행이다만,
생존만으로 벅차 남을 도와줄 수 있는 여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자괴감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안나 양의 진로 결심을 보게 된 나 역시,
드디어 진지하게 진로에 대해 고민할 시기가 다가왔다.
고등 학과 건물로 향하는 험한 비탈길을 오를 때,
땀이 배어나는 계절이 다가온 어느 봄날,
고등 학과 2학년이 된 나는 진로 희망서를 제출하게 되었다.
우선 가장 근처에 있는 인생의 성공자 아버지가 교사로서,
학원 경영자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기에,
학원을 물려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1지망을 교사로 선택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꿈이 있었다─.
나 같은 녀석이 꿈을 품는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지만,
그런 꿈은 반드시 [적]에게 무산되고 말지만,
그럼에도 버릴 수 없는 꿈이 있었던 것이다.
[기둥서방].
나는 기둥서방을 동경하고 있다. 기둥서방이란, 직업은 아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안정적인 직업이라 할 수도 있다.
기둥서방이란 일반적으로 [백수에다,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고,
꿈을 쫓는다는 변명을 하며, 주로 여성에게 빌붙어 살아가는 남성]을 말한다.
이 직업에 나는 안정성과 가능성을 보았다.
물론, [여성에게 빌붙어 산다]라는 것은
결국, [단 한 명의 출자자에게 명줄을 쥐게 한다]라는 것이다.
심지어 계약서를 작성할 만한 관계도 아니기에,
출자자의 기분 하나로 당장 빈털터리 상태로
길거리에 나앉게 될 가능성 또한 있다.
어딜 봐서 안정적일까?
확실히,
일반적인 운과 재주를 가진 사람에게는 불안정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것도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백만 번의 불우한 전생을 맛본 16살.
사회에 진출해, 톱니바퀴의 일부가 되면 언제, 어디서,
어떤 이유로 인생이 틀어질지 가늠하기 어렵다.
동료가 늘어난다 한들 전원을 같은 편으로 묶어둘 수 없고,
지위를 얻는다 한들 시기하는 자들이 생겨나,
결과적으로는 적이 늘어나게 된다.
그렇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적을 줄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렇다면 기둥서방은 어떤가?
단 한 사람이라도 좋다.
단 한 사람에게만 신경 쓰면, 훨씬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
기둥서방은 타 직업에 비해, 불확정 요소가 적다.
나는 공부와 병행해, 요리와 집안일 등의 실력을 기르고 있다.
엄마와 함께 어울리며 행사 때마다,
집을 꾸미는 것 역시 기둥서방이 되기 위한 수행으로 여길 정도다.
이처럼 노력을 다하고 있는 나지만,
도저히 수행이 되지 않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꿈].
기둥서방이라는 허무맹랑한 꿈이나 꾸고 있지,
다들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거창한 꿈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
오히려, 기둥서방이 되겠다는 것 자체가 거창한 꿈이라 할 수 있는데,
[화가]나, [소설가]처럼 출자자가 이 사람이 꿈을 이룬다면,
출자한 만큼은 되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법한 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즉, [언젠가 대가를 받을 수 있다]라는 생각을
투자자에게 심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포인트다.
그리고 기둥서방은 대부분 여성에게 경제적 지원을 받는다.
그렇다면 출자자인 여성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기술이자, 필수 요소인데 나는 여성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
여성들의 생각은 이해하기 힘들다.
잘 웃는다. 화를 잘 낸다. 항상 감정을 소모해야 한다.
그런가 싶으면 다음날,
어제 있었던 일 따윈 잊었다는 듯이 행동하고,
그러면서도 어느 순간 옛날 일들을 떠올리며 분노하기도, 즐거워하기도 한다.
흥미를 갖는 포인트가 너무나 다르다.
[그게 중요해?] 같은 일들을 중요시 여기는가 하면,
정작 [정말 중요한 일들]은 까먹곤 한다.
여성이라는 것은 의문의 생명체이며, 이 생명체에 대해 이해하고,
그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도록 행동하는 것이 내게는 불가능한 일이나 다름없었다.
뭐, 납득은 간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들은 절대 못 하는 것이 국룰이나 다름없으니까.
언제나 그랬다.
꿈을 이루겠다는 출반선에조차 설 수 없을 정도로 재능이 없고,
노력으로 해결될 만한 수준에 이른 적 자체가 드물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의지할 수 있는 상담사가 있다.
이런 여성 심리 문제를 상담하는 데에 있어,
가장 가까운 상대. 즉, 밀림이다.
나는 방에서 함께 공부를 하던 중, 눈치를 보다 얘기를 꺼냈다.
"나, 실은 기둥서방을 목표로 하고 있어…."
밀림은 기둥서방이라는 게 뭔지 모르는 것 같았지만,
내가 정리한 자료들을 읽고 이해한 것 같았다.
'즉, 내가 렉스를 기르면 되는 거야?'
"………."
……아, 그렇구나!
맹점이었다.
밀림에게 길러진다라는 것은 생각지도 못 했다.
확실히 밀림이라면 여러모로 안심이 된다.
여자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지만,
밀림에 대해서는 세세한 곳까지 잘 알고 있다.
어쨌든 그녀의 기저귀도 갈아준 적이 있으니.
장차 밀림의 남편이 될 사람이 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한다 치더라도,
그 녀석이 밀림의 기저귀를 갈아주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할 것이다.
아니지…, 노인이 돼서 간호한다는 것까지 가정하면….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밀림에 관한 것이라면, 뭐든 알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막상 다시 생각해보면 밀림의 평소 교우 관계라던지,
요즘 점점 시선을 끌기 시작한 가슴의 성장이라던지,
나랑 같이 있지 않을 때, 어떤 식으로 시간을 보내는지,
그런 것들을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뭐, 밀림이 길러준다면 내 인생은 대체로 편하겠지.
응, 밀림에게 길러지고 싶어.
그런 마음이 내 안에도 분명히 존재했다.
그렇지만, 내 안의 [오빠]라는 부분이
무시하기 힘들 정도로 저항하기 시작했다.
[밀림에게 빌붙어 살고 싶지 않아!]
밀림에게 기생하는 기둥서방─.
생각만 해도 구역질이 난다.
용서할 수 없다. 죽여버리고 말 것이다….
살의마저 느끼지만, 밀림에게 빌붙어 사는 기둥서방이,
바로 나 자신이었다.
진짜 미친 거 아닌가 싶지만,
나는… 밀림에게 빌붙어 살 바에는… 일하고 싶다.
노동이란 전혀 쓸데없는 짓이라 생각한다.
왜 살기 위해선 노동을 해야만 하는가….
의미를 모르겠다. 삶은 생존 자체로 고난이다.
거기에 노동이라니…, 역시 이 세계에는 [적]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하고 싶다.
밀림에게 빌붙어 사는 자신을 견딜 바에야,
노동을 하는 쪽이 훨 나을 것 같다.
"나, 일할게."
'그럼, 나도.'
이렇게 우리는 노동 의욕을 불태웠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며,
기쁘게 빌붙어 살만한 상대를 찾을 수도 있으니,
기둥서방이 되기 위한 노력은 계속할 것이다.
나는 불우한 인생을 백만 번 산 16살.
노력을 한 순간부터,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