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 소설/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관하여 (完)

21화 모 월간지 2010년 5월호 게재 단편 「심령사진」

Hellth 2024. 12. 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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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저도 실제로 봤던 심령사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만…."

 척 봐도 공들인 게 느껴지는 디자인의 명품 원피스를 입고,
그러면서도 미소가 인상적인 호감상을 가진 A 씨는
여성 패션 잡지의 베테랑 편집자라고 한다.

 "패션지의 촬영은 며칠간 스튜디오를 빌려, 그 기간 내로
후다닥 찍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모델 촬영이 포함된 경우, 스케줄이 정해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보니 시간과의 승부가 돼버리죠."

 촬영장에는 편집자는 물론 모델과 모델의 매니저,
메이크업, 헤어 메이크업, 코디, 의상 협찬 브랜드
홍보 담당자, 영업 담당, 작가, 카메라맨, 어시 등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한다.

 현장에서 난무하는 의견들을 수렴하면서도 편집 의도에
맞는 촬영을 제 시간 내로 진행해야 하는 편집가들은 실로
바쁘기 짝이 없다.

 "그러니 분위기 형성이 매우 중요하고, 현장이 날 선
분위기가 되지 않도록 어느 정도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항상 노력하고 있습니다."

 A 씨에 의하면 제작진들의 흐름은 각자가 가진
전문 기술만큼 중요하다고 한다.

 "카메라맨이나 메이크업 담당자와 팀워크를 맞추면,
처음 참가하시는 분들도 안심하고 맡겨주시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B 군은 카메라맨으로서는 아직 부족하지만,
모델의 기를 잘 살려주었고, 의지가 되는 동료였습니다."

 반년 정도 전, 편집부로 팔려온 젊은 카메라맨 B 씨가,
A 씨의 촬영 팀의 단골이 되는 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표지 촬영은 보통 수백 장을 촬영합니다.
각 포즈마다 사진들을 꼼꼼히 살펴보면서요. 
무턱대고 경력이 많은 카메라맨에게 부탁했다간
세세한 주문을 덧붙이기 어려워지기에, 제 입장에선
B 군처럼 의견을 서로 공유하며 임기응변으로
대응하는 신입들이 보다 더 귀하답니다."

 일주일 이상에 걸친 스튜디오 촬영이 끝이 나면,
다음은 잡지의 구성을 위해 편집부에 입고할 사진을
정하는 단계에 들어선다.
 그를 위해, 수많은 촬영 데이터 중에서 흔들림이 있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사진들을 제외하고, 용량을 줄여
수백 장 정도 되는 사진들을 우선 카메라맨에게
일시적으로 납품하는 형태라고 한다.

 "방대한 양의 사진들을 노려보며,
몇 가지 패턴으로 수를 좁힙니다.
그렇게 선택한 후보의 사진들을 카메라맨에게 전한 뒤,
사진들의 리터칭(밝기 보정 등 사진을 가공하는 행위)이
끝나면 그제야 겨우 입고를 할 수 있죠.
물론 러프본을 미리 제작해 본다거나, 디자인의 발주,
작가에게서 대본을 받는 등 그 밖에도 산더미 같은
작업과 병행하면서 하지만요."

 그러던 중, A 씨는 B 씨가 촬영한 표지들 중에서
무엇을 사용할지 결정을 내리기 어려웠던 순간이
있었다고 한다.

 "모델을 쓴 표지였는데, 굉장히 마음에 드는 포즈의
컷이 있었어요. 그런데 일시적으로 납품한 사진들이
10장가량 됐는데 전부 마음에 들더군요.
다만 협찬한 브랜드 측에서 피어싱이 머리카락에
살짝 가려진 걸 가지고 전부 거절해 버렸지만요."

 도저히 포기할 수 없던 A 씨는 10장 정도 되는
사진들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비교했다고 한다.

 "사진의 파일명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B 군이 납품한 사진들은 전부 「IMG_0001」과 같은
파일명이 붙어있었는데, 파일들 사이에 비어있는
부분이 있다는 걸요."

 A 씨가 마음에 든 컷이 만일 「IMG_0010」에서
「IMG_0020」이었다면, 촬영본의 10번째 컷부터
20번째 컷이라는 소리가 된다.
 그리고 파일명은 「IMG_0010」, 「IMG_0011」…
과 같은 순서로 이어진다 볼 수 있겠다.
 또한 그중 「IMG_0013」 파일만 쏙 빠져 있다면,
그 부분이 미납품이 된다 예상할 수 있겠다.

 "그때 빠진 부분이 「IMG_0053」이었는데요.
아마 촬영에 실수가 있었거나, 리터칭으로도 도저히
커버가 불가능한 사진이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다만 저는 어떻게 해서든 그 컷을 표지로 쓰고 싶은
미련을 도저히 버릴 수가 없었어요."

 B 씨에게 연락한 A 시는 비록 사진이 잘 안 나왔어도
좋으니 빠진 부분의 사진을 보내줄 수 없겠느냐고 부탁했다.
 어떤 사진이든 우선 한번 보고 싶다고.

 아니나 다를까, 촬영 실수였는지 쓰기 어렵다고 답한
B 씨였으나, 동종 업계의 선배 편집자의 부탁이었던 터라
거절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게 마지못해 그 사진을 A 씨에게 전송했다.

 어두컴컴한 사진이었다.

 "아무것도 찍히지 않은 새카만 사진이었죠.
혹시나 사진기의 캡을 벗기는 걸 깜빡했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뭐, 그런 사진을 표지로 쓸 수 있을 리 없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다른 컷을 쓰기로 결정했죠."

 그렇게 몇 달 뒤,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장신구 특집이었는데, 유명 해외 명품 브랜드의
목걸이가 갑작스레 본국의 의향으로 판매가
중단되어 버렸습니다."

 마무리 작업 도중이었던 터라, A 씨는 급박하게
해당 부분의 페이지를 채워 넣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B 군에게 촬영을 부탁했던 페이지였던 만큼,
급하게 전화해서 B데이터(사용되지 않은 데이터)를
포함해 우선 모든 사진들을 보내달라 부탁했죠."

 A 씨의 초조함이 전해진 탓일까,
B 씨는 재빠르게 모든 사진들을 보냈다고 한다.

 "또 「IMG_0053」의 사진이 새카맣더군요.
그때는 신경 쓸 겨를이 없어 다른 사진들을 둘러보느라
바빴습니다만, 「IMG_0053」이라는 파일명과
새까만 사진이 기억에 남아 있었기에 이상하다
싶기는 했죠."

 훗날 A 씨는, B 씨도 참여한 타 촬영 일정을
끝마친 뒤 뒤풀이 자리에서 그것을 떠올렸다.

 "촬영 실수라고 하긴 했는데, 그거 맞아?라고 물었습니다.
카메라맨에 따라서 루틴 같은 행위로, 촬영 초기에
의미 없는 것을 찍기도 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거든요.
그래서 무슨 루틴이라도 있어?라고 이어 물었더니."

 술에 취한 B 씨가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제가 찍은 53번째 사진은 늘 그렇게 찍혀요.
저주를 받은 걸지도 모르겠네요."

 술자리이기도 했던 터라, A 씨와 그 주변에 앉아 있던
멤버들을 분위기가 크게 달아올랐다고 한다.

 흥미진진해하며 저주라니 무슨 소리냐고 되묻는
주변 사람들에게 약간 압도당하며, B 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신입 카메라맨인 B 씨는 패션 잡지는 메인으로
삼기 위해, 어떤 장르건 가리지 않고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그중 하나가 레저 잡지의 촬영이었는데.

 몇 년 전, 국토 교통부를 중심으로 전국에 있는
댐에 「댐 카드」라는 것이 발행되었다고 한다.
 댐의 사진과 함께 기본적인 정보들이 포함되어 있는
카드는 해당 댐을 방문하면 얻을 수 있었고, 초기에는
일부 마니아층의 수집 아이템으로써 인기를 끌었으나,
점차 일반인들에게까지 유행하게 되며 댐 카드의 입수를
목적으로 한 댐 견학 투어 등이 성행했다고 한다.
 그로 인해 B 씨는 레저 잡지에 실을 댐 견학 투어의
취재를 갔다.

 50년대 중반에 건설된 ●●●●●에 위치한 그 댐은,
중력 콘크리트 댐이라 불리는 것으로, 깎아 지른 듯이
우뚝 솟아있는 거대한 콘크리트 벽이 특징인, 일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태의 댐이었다고 한다.
 다른 댐에 비해 특별히 볼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자살 명서로서의 지명도가 더 높은 곳이었다.

 B 씨는 그날 아침부터, 렌터카를 빌려 편집자와 작가와
함께 셋이서 현지를 방문해, 오전에는 댐과 호수 경관
등을 촬영했다.
 그 이후, 댐 관리자의 안내에 따라, 실제 견학 투어의
루트를 따라가는 형태로 취재를 시작했다고 한다.

 우선 댐의 본체라 불리는, 물을 막는 거대한 콘크리트
벽 위에 설치된 보도를 걸으며 댐의 구조나 기능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열심히 메모하는 작가 옆에서 B 씨는 주제가 되는 지점
혹은 장소나 경치를 카메라에 담았다.

 이어 일반인들은 견학 투어 때만 출입이 가능하다는
댐 관리용 통로로 향했다.
 관리용 통로는 콘크리트 벽 내부에 위치한 터널로,
외부에 설치된 긴 계단을 따라내려 간 끝에 위치해 있었다.
 댐의 유지관리 역할을 하는 관리용 터널은 튼튼한 철문으로
잠겨 있었고, 입구 근처임에도 불구하고 안에서 새어 나오는
냉기에 한기마저 느낄 정도였다고 한다.

 1년 내내 기온이 15도 안팎으로, 어른 2명 정도 되는
폭의 아치 형태, 끝없이 안쪽으로 이어진 콘크리트 터널은
군데군데 무미건조한 형광등이 빛날 뿐인 어둡고,
상당히 불길한 기운을 내뿜는 곳이었다고 한다.

 그와 동일한 감상을 입에 담은 편집자의 말에 따라,
댐의 직원이 시험 삼아 입구의 전기 스위치를 끄자,
눈앞에 진정한 어둠이 펼쳐졌다.

 "직원이 들어갈 때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손전등을 가지고 갑니다."라는 직원의 말에도
충분히 납득이 갔다고 한다.

 몇 개의 모퉁이를 돌고 계단을 내려가, 변위계실이나
방류 게이트실 등을 안내받으며 차례대로 둘러보았다.
 복잡한 구조의 터널은 자칫 길이라도 잃었다간,
두 번 다시 나오지 못할 것만 같았기에 불안에
떨었다고 한다.

 취재도 후반부로 접어들 무렵, 마지막으로 안내받은
곳은 밸브실이었다.

 평소에는 관리실에서 제어하지만, 위급할 때는 수동으로
조작하기 위해 사용한다는 그 방에는 안쪽으로 길게
손잡이가 달린 여러 개의 밸브들이 늘어서 있었다.

 편집자와 작가는 입구에 서서 실내에 서 있는 직원의
설명을 듣고 있었으나, B 씨는 촬영을 위해, 안쪽으로
들어와 홀로 촬영을 진행했다고 한다.

 B 씨는 방 가장 안쪽에 있는 밸브의 그림자에 가려지는
위치에 덩그러니 놓인 사물함을 발견하였다.

 그건 사무실에서 자주 볼 법한 세로로 기다란 사물함으로,
청소 용구 등을 넣어두는 사물함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 사물함이 살짝 열려 있었다고 한다.

 어설프게 열려 있던 터라, 별생각 없이 닫아주려고
손을 뻗은 B 씨는 문이 닫히기 전 사물함의 안쪽으로
시선을 보냈다고 한다.

 그곳엔 청소도구 같은 것은 없었으며, 사물함 바닥에
프랑스 인형 같은 것이 B 씨를 올려다보고 있었다고 한다.

 기묘한 광경에, 무심코 B 씨가 목소리를 내었고,
편집자와 작가가 다가왔다.

 이를 본 두 사람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평정을 되찾은 작가가 직원에게 무슨 의도로
인형을 두었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제가 이곳에 부임했을 때부터 놓여 있던 겁니다.
선배의 가르침으로 치워선 안 된다고 배웠습니다.
어째서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별 거 아니라는 듯이 말하는 직원의 모습을 보고,
B 씨는 더욱 섬뜩함을 느꼈다.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하던 설명을 이어나가는
직원으로부터 고개를 돌리자, 편집자가 히죽거리며
B 씨에게 눈짓을 보내왔다.
 아무래도 찍으라는 눈치였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사진을 보며 흥을 돋우고
싶었던 것 같다.

 내키지 않았지만 발주처 직원에겐 거역할 수 없었고,
B 씨는 직원이 눈치채지 못하게끔 인형을 촬영했다.

 "그게 그때 취재의 53번째 사진이었어요. 돌아오는 길에
「IMG_0053」의 사진을 봤지만 새카만 화면만
찍혔을 뿐,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죠. 편집자분들은
아쉬워했지만, 그 이후 제가 찍는 사진의 53번째 사진은
항상 새까만 것이 찍히기 시작했습니다. 일에도 지장이 가고,
이제는 슬슬 봐줬으면 하는데요."

 헤어 메이크업 담당 여성이 날카로운 비명을 내지르는
옆에서 A 씨가 물었다.

 "그래도 어째서 새카맣게 찍히는 걸까. 만약 인형이
저주받은 인형이라 그랬던 거라면, 유령 같은 게
찍히는 게 국룰 아니야?"

 순간 A 씨를 쳐다본 뒤, 잠시 텀을 두고는
B 씨가 대답했다.

 "글쎄요, 어떻게 된 걸까요…. 우선 이걸로
이 이야기는 끝입니다."

 "이런 일을 하다 보면 여러 인종, 여러 입장에 놓인
사람들을 취재하기 마련이잖아요? 그렇다 보니
알 수 있거든요. 겉으로는 이렇게 얘기하지만 속내는
따로 있는 반응. B 군이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걸
단번에 눈치챘죠."

 A 씨는 계속 이어나갔다.

 "게다가 저는 그 사진을 봤을 때 「새카맣게 찍힌 사진」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B 군은
「새까만 것이 찍힌다」라고 말했죠. 이상하지 않나요?
아무것도 찍히지 않았다면 그렇게 표현하질 않죠.
그 사진엔 뭔가 찍혔고, 그 사실을 제가 눈치채지
못하게끔 신경을 쓰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A 씨는 다음 날, 회사에서 전에 B 씨가 보내준
「IMG_0053」 사진을 다시 확인했다.

 "역시 새카매서 아무것도 안 보이더군요.
그래서 손을 좀 써봤죠."

 A 씨는 사진 편집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IMG_0053」 사진의 밝기를 최대까지 올렸다.

 그러자 희미하게 보이는 그것이 무언인지
깨닫기까지 잠시 시간이 걸렸다.

 화면의 위아래로 하얀 곡선들이 늘어서 있고,
아래쪽엔 안쪽으로 이어진 무언가가 놓인 형태.

 "입속이었어요. 아마도 사람의 입일 거라 생각합니다.
입을 크게 벌려 안을 찍은 사진이었죠. 위아래는
이빨, 가운데는 혀 같아 보였습니다."

 B 씨는 사진에 찍힌 것을 알려, A 씨가 겁을 먹지
않도록 신경을 써준 것으로 생각된다.
 A 씨는 이후 B 씨와의 대화 도중 그 사실을 언급하지
않게끔 주의를 기울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 뒤부터 묘한 꿈을 꾸게 됐어요.
깨면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악몽이었죠.
산속 같은 곳에서 크게 입을 벌린 남자에게 쫓기는 것
같은 꿈입니다. 저도 저주받은 건지도 모르겠네요."

 아직까지도 B 씨로부터 납품을 받는 사진 속 데이터에는
늘 「IMG_0053」이 빠져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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