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는 보기 드문 폭설이 잦아들 무렵,
나는 친가에 돌아가 부모님이나 밀림에게
스무 번째 생일을 축하받으며 정장을 선물 받게 되었다.
그것도 맞춤 정장으로.
이 세계의 의복은 이른바 [기성품]이라 불리는 옷과,
주문 제작으로 만들어지는 옷이 존재한다.
어느 쪽이 더 고급스러운지는 드는 수고의 차이를 생각하면
금방 답이 나올 것이다. 다만, 그만큼 주문 제작은 비싸다.
최근에 들어서 기성품과 비교했을 때 가격이 천지차이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는 아니었지만, 기성품 가격의 배 이상은 되었다.
세간에는 대학 입학식 날 정장을 입거나,
혹은 좀 더 좋은 옷을 입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보육 시설부터 대학까지 에스컬레이터 구조로 되어있는
우리 학교는 작년까지 입었던 교복을 입고
입학식과 같은 행사에 참여하도록 했다.
즉, 정장이라는 것을 가지게 된 것은 첫 경험이었고,
수치 측정을 마치고 제작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멍하니 [정장을 입은 내 모습]을 상상하고 있었다.
상상이 가질 않아─.
교복과 정장의 디자인이 그렇게 큰 차이가 있던 것은 아니었다.
셔츠를 입고 넥타이를 매고, 슬랙스를 입은 뒤, 재킷을 걸친다.
그런데도 교복과 비슷한 디자인의 정장을 입은
내 모습을 상상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뭐라 표현 못할 불안? 초조함을 품은 내게 떠오른 것은
[안나 양에게 연락하기]라는 선택지였다.
연락해서 뭐라 하지? 혹시 바쁘진 않을까?
애초에 나한테 시간을 쓸 이유가….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취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적을 늘리지 않는 것을 목표 삼아 살고 있으니까.
상대방에게 실례라고 생각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고 있으니까….
그래도 안나 양에게 의미와 목적을 모르겠는 문자를 보내버린 것은
분명 지금 내 육체에 담긴 내 마음이 아직 미성숙해서─.
아니, 변명은 그만두자. 백만 번의 전생을 경험했더라도,
내 마음은 전혀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른이 된다는 건 어떤 건가요?]
내가 보낸 것은 이런 영문 모를 질문이었다.
[본인 스스로 답을 내릴 수 없는 질문은 하지 않는다]라는
나만의 규칙을 어기고 만 것이다.
분명 곤란하겠지. 무시당할지도 모른다….
내 고민은 문자를 보낸 시점에서 초단위로 증가해 갔다.
몇 분이 지나고 [죄송합니다, 잊어주세요]라고 보내려고 하던 그때─.
[어른이 돼도 몰라.]
라는 답장이 왔다.
적당히 답변한 것처럼 보이는 문자였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아, 그렇구나.]라는 안심과 동시에
납득할 수 있었다.
단순한 문장이었지만, 안나 양은 내가 그 답변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눈치채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보충은 없었다. 단지 그것뿐. 내 답장을 재촉하는 일도 없었다.
이제 곧 정장이 완성되고, 나는 3학년이 된다.
사회로 나갈 일이 점차 다가오고 있다.
문득 나는 내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정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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