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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 소설/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관하여 (完)

33화 인터뷰 테이프 첨부 (4)

by Hellth 2024.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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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가 보낸 메일로부터

 늘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K입니다.

 지난번엔 감사했습니다.
 작가님께 얘기는 들으셨나요?
 O에게서 사정은 얘기해 뒀다고 전해 들었습니다만.

 연락드린 이유는,
편집장이었던 S에 관한 건 때문입니다.

 ●●●●●에 관련된 것을 발견해서, 보내드립니다.

 함께 첨부한 것은 S가 현지인분들을 인터뷰한
음성 데이터입니다.

 그도 ●●●●●에 관해 조사하고 있던 모양이네요.

 확인 부탁드립니다.

 ※이하, 첨부된 파일의 음성 기록


 남성 "안녕하세요."

 여성 "…안녕하세요."

 남성 "전 기자입니다만, ●●●●●에 관한 취재로,
이 근방의 향토 및 지리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명함을 전달드려도 괜찮을까요?"

 여성 "…네에. …아아,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출판사네요. 주소는 도쿄인데, 어쩌다 이런 외진 곳을
조사하게 된 거죠?"

 남성 "기획하고 있는 책 때문에 그렇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잠시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으신가요?
이대로도 괜찮습니다."

 여성 "뭐, 딱히 상관은 없습니다만."

 남성 "감사합니다, 저 너머로 보이는 산 위에 산시가
하나 있죠? 옛날부터 있던 건가요?"

 여성 "그렇네요, 벌써 그렇게 됐나. 옛날에는 신주님도
계셨는데, 돌아가신 뒤로 벌써 몇십 년이나 방치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여름마다 축제를 하고,
제사를 지내는 날도 있었는데. 벌써 50년도 더 된 일이지만요.
어른이 된 이후로는 간 적이 없네요. 전 불교기도 하고요."

 남성 "그렇군요, 대체 어떤 신을 모셨던 걸까요."

 여성 "뭐라더라…, 물인지, 산인지 하는 신님이었던 것
같은데,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네요. 미안해요."

 남성 "…그렇습니까, 그럼 안쪽에 있는 사당에 관해서도
모르시겠네요?"

 여성 "사당? 아아, 마시라 님? 그거라면 알고 있죠.
옛날에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으니까요."

 남성 "저, 정말입니까? 지금은 텅 비어있는 그 사당이요?
마시라 님이라고 합니까?"

 여성 "네? 비어있어요? 거기엔 마시라 님의 돌이
모셔져 있는 걸로 아는데?"

 남성 "네, 원래는 금줄에 감긴 돌이 놓여 있었다는 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여성 "지금은 없어요? 어째서?"

 남성 "전에 이 근방에 종교 시설이 있던 건 알고 계십니까?"

 여성 "종교 시설? 아, 그 이상야릇한 집단 말이죠?
지금은 없어지지 않았나? 분명 휴양소인지 뭔지로
바뀐 뒤로는 계속 방치된 걸로 아는데, 연관이 있나요?"

 남자 "그 종교 시설이 돌을 가져간 게 아닌지,
의심하고 있습니다."

 여성 "네에? 대체 무슨 짓이람. 천벌 받을 짓을 하다니."

 남성 "그러게 말입니다. 참고로 그 마시라 님에 관해,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만, 가능할까요?"

 여성 "상관은 없지만, 별 걸 다 묻네요.
저도 어렸을 적에 들은 얘기라 잘은 모르지만서도….
마시라 님은 원숭이신입니다."

 남성 "원숭이… 말입니까?"

 여성 "맞아요, 새하얗고 커다란 원숭이. 제가 어렸을 적엔
「늦게까지 밖을 거닐다간, 마시라 님께 시집가게 된다.」
라며 겁을 주고는 했죠. 귀가 얇으셨던 할아버지는 감을
수확할 때쯤 제사를 지내러 가곤 하셨고요."

 남성 "감이요?"

 여성 "네, 과일말이에요. 알고 계시죠?
원숭이는 감을 좋아한다는 얘기."

 남성 "공양하는 건 감뿐인가요?"

 여성 "그리고 또 인형. 할머니가 직접 만든 인형을
공양하러 가기도 했죠. 보면 알겠지만 계단이 많잖아요?
운동도 겸해 적당적당 다니셨던 거 아닐까요?"

 남성 "그렇군요…, 인형이라."

 여성 "댐쪽의 국도가 뚫리면서, 근처에 살던 사람들이
퇴거하고 이주하며 주민들이 많이 줄었죠. 옛날에는
제법 집도 많았지만, 이젠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어졌죠.
마시라 님에 관한 것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을 걸요?"

 남성 "그, 마시라 님이라고 하는 걸 본 적 있으신가요?"

 여성 "농담이시죠? 부처님이나 하느님을 본 적 있나요?
그런 건 전부 미신이죠."

 남성 "아뇨, 마시라 님의 본존을 말한 거였습니다."

 여성 "아, 그렇군요. 있죠, 어렸을 때지만.
검고 울퉁불퉁한 바위 같은 돌이 놓여 있어서,
이게 왜 원숭이야?라고 어머니께 물은 기억이 있네요."

 남성 "그래서 어머님은 뭐라고?"

 여성 "그렇네…라고 하셨는데, 아마 어머님도
모르셨던 거 아닐까요? 요상한 걸 다 물으시네요.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셨지만, 아버님은 아직
살아계시는데 한번 대화라도 나눠 보시겠어요?"

 남성 "정말요? 꼭 좀 부탁드립니다."


 노인 "마시라 님에 관해 듣고 싶은 게 있다고?
별 이상한 걸 다 조사하는구먼."

 남성 "네, 저어… 이상하다뇨?
마시라 님께선 신인 게 아닌지?"

 노인 "그게 신? 아, 그 녀석이 그렇게 말하디?"

 남성 "네, 그렇게 들었습니다. 원숭이 신이라고요."

 노인 "그런가, 얘들한텐 그렇게 가르쳤나 보군.
형씨, 잠깐 괜찮을까? 알려주는 거야 상관없지만,
세간에 알리지는 않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남성 "알겠습니다, 저희만의 비밀로 하죠."

 노인 "저건 말이야, 신도 뭣도 아니야. 그냥 남자일 뿐."

 남성 "남성요?"

 노인 "그래, 마사루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였지."

 남성 "평범한 남성을 사당까지 지어 모셨다고요?"

 노인 "그럴 수밖에 없었다네."

 남성 "그럼 돌도 연관이 있나요?"

 노인 "그래, 관계가 없지는 않지.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하려나. 애초에 나도 아버지한테서 들은 얘기거든.
아버지 또한 아버지로부터 들은 얘기라고 했으니,
할아버지께서 살아계실 적에 있던 일이라고 생각 허는디.
메이지 시대(1868년 ~ 1912년) 무렵이려나.
댐이 생기기 전까진 이 근방도 번화했던 거 알고 있나?"

 남성 "네, 알고 있습니다."

 노인 "이런 촌동네다 보니, 마을사람들이 모두 가족처럼
지냈다는 듯하네. 다만, 한 집, 마사루네만은 조금
달랐다고 해. 따돌렸다기 보단, 굳이 건드려서 좋을 건
없다는 느낌의 취급이었다더군."

 남성 "무슨 문제라도 일으켰나요?"

 노인 "마사루네는, 아직 마사루가 어릴 적 불운하게도
곰 때문에 아버지를 잃게 된 이후로, 어머니와
단 둘이서 살았다는데. 그러다 어머니마저 몸이
약해지며 병져 누웠다는 듯하네."

 남성 "그럼 마사루가 어머니를 돌보았겠군요?"

 노인 "그런 것 같아, 어머니와는 달리 덩치도 좋고,
밭일도 묵묵히 해내는 성실한 녀석이었다고 했거든.
다만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조금 이상해졌다고
하더군."

 남성 "이상해졌다라…."

 노인 "아마도 외로웠던 탓일까. 어머니를 돌보는데
열심이었고, 집회 같은 곳에도 참여하지 않았던 터라,
스무 살을 넘겼음에도 결혼을 하지 못했거든. 집안에
틀어박혀 묘한 인형을 만들어다가, 하루종일 말을
걸었다더군. 마치 본인의 아내인양 다루면서."

 남성 "마을 사람들은 그걸 보고만 있었나요?"

 노인 "당연히 걱정했다더군. 살림을 차리면 제정신으로
돌아올 거라 생각해서, 마을 내 비슷한 또래의 여성들과
이어주려 했던 모양이네. 실패했다는 듯 하지만."

 남성 "어째서죠?"

 노인 "뭐…, 그걸세. 애초에 별난 사람이었달까….
여러모로 곤란했던 모양이야."

 남성 "…네에."

 노인 "그중에는 그런 마사루를 보고 놀려먹던 녀석도
있었다고 하는데. 형씨, 「감나무 문답」이라고 아나?"

 남성 "죄송합니다, 지식이 부족한 터라."

 노인 "아니, 요즘 사람들은 모르겠지. 쉽게 말하자면
남자와 여자가 주고받는 첫 날밤의 암호 같은 걸세.
내가 어렸을 때도 아직 쓰였던 것 같은데 말이야."

 남성 "암호요?"

 노인 "남자가 「너네 집에 감나무 심어져 있어?」
라고 물으면, 여자가 「있어, 때마침 수확하려던 참이야.」
라고 답하는 거지. 그러면 다시 남자가 「그 감, 내가
따도 될까」라고 묻고, 여자는 「그래, 얼마든지」라고
답하지. 물론, 실제로 감 같은 건 없어. 그런 대화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것뿐이지."

 남성 "그렇군요, 굉장히 흥미롭네요."

 노인 "뭐, 그런 풍습이 있었는데, 마사루에게 그걸
장난 삼아 알려준 녀석이 있던 모양이야.
「감이 있냐고 물으면 너도 아내가 생길 거야」라고."

 남성 "그리고 마사루는 그걸 실행했다."

 노인 "아니, 그게 뭘 잘못 알아들었는지, 주야장천
마을 처녀들에게 「감이 있으니, 이리 와.」라고
떠들고 다녔다더군."

 남성 "…그렇군요."

 노인 "그러니 다들 꺼려했고, 여성들은 마사루를
멀리했지."

 남성 "안타까운 이야기군요."

 노인 "…그런데 말일세, 어느 날 밤. 마사루의 집
근처에서 여성이 살해당했어. 그것도 머리가 깨져서.
범인을 찾아 나섰는데, 마사루의 집 앞에 있는 밭에서
피가 묻은 커다란 돌이 발견됐다네. 어디서 가져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 근방의 산에선 본 적 없는
검은 바위를 잘라낸 것처럼 생긴 커다란 돌이었지.
그걸 발견한 여성의 남편과 젊은이들이 마사루를
둘러싸고 마구 때렸다더군."

 남성 "…그게 정말 마사루의 짓이었을까요?"

 노인 "글쎄, 마사루 본인도 마을 사람들에게 추궁을
당했을 때 자백을 했다고는 하던데."

 남성 "그렇게 마사루는 죽어버렸나요?"

 노인 "아니, 빈사 상태로, 옆에 놓인 여자를 죽일 때
썼던 커다란 돌에 직접 머리를 박고 죽었다더군."

 남성 "끔찍하네요."

 노인 "차마 눈을 뜨고 보기 힘들 정도의 몰골이었다고 하네.
입을 쩌억 벌린 채, 눈을 뜬 채로 죽었다고 하니."

 남성 "그러고 어떻게 됐습니까?"

 노인 "이런 놈을 마을 공동묘지에 묻을 수는 없다며,
산속에다 묻은 모양이네. 그리고 묘비 대신 그 돌을
위에 올려뒀고."

 남성 "그게 그 사당인가요?"

 노인 "아닐세, 그로부터 몇몇 마을 여성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했지. 그것도 기묘하게 말이야. 다들 일부러 그 돌에
머리를 박고 죽었다고 하네. 마사루의 저주라고 하는
사람들까지 나왔던 모양이야."

 남성 "마사루가 재앙을 내렸다?"

 노인 "다들 그렇게 생각한 모양이네, 급하게 산 위에
산시를 세우고, 사당을 지어 마사루를 달래기로 한 거지.
다만, 모실만한 본존이 없기에 그 돌에 금줄을 감고,
「마사루 님」이라 부르며 모시기로 한 걸세."

 남성 "그 이후로는 잠잠해졌나요?"

 노인 "그로부터는 별일 없었던 모양이야. 다들 마사루가
집착하던 감이나 인형을 공양했던 덕분일까."

 남성 "그렇군요, 그런데 왜 지금은 「마시라 님」이
된 겁니까?"

 노인 "그거지, 그거. 이런 끔찍한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해줄 순 없지 않나. 다만, 마사루를 계속 모셔야 하니,
이름을 살짝 꼬아 「마시라 님」이라는 원숭이 신으로
둔갑시켜 이어져 내려오는 거겠지. 실제로 나도 녀석에겐
「마시라 님」으로 알려줬기도 했고 말이야."

 남성 "감사합니다, 덕분에 많은 걸 배워가네요."

 노인 "그 녀석도 말했지만, 지금은 신사도 방치된 상태지.
신이란 건 말이야, 잊히면 악행을 저지른다고 하거든.
그래서 나도 매일 불단에다 대고 조상님께 참배드리고 있지."

 남성 "…하지만 마사루는 신이 아니잖아요?"

 노인 "형씨, 한번 생각해 보게. 주변에서 떠받들어주면,
실상과는 다를지언정 본인이 잘 나간다고 착각하기
마련이지. 그거랑 같은 거지. 모두에게 떠받들여지며,
두려움을 사고, 그러는 사이에 신이 되고 마는 거야.
그랬는데 점점 잊히고. 신이든 부처든, 괴물이든,
아는 사람이 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지. 그래서
잊힐 것 같다 싶으면 악행을 저질러서라도 본인의
존재를 남들에게 알리려고 하지. 그런 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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