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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 소설/나태한 악욕귀족으로 전생한 나, 시나리오를 부숴버렸더니 규격 외의 마력으

1화 능욕 악역 귀족

by Hellth 2025.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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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꺄아아앗… 하으읏!"

 날 선 목소리, 아니, 가련한 비명이 방안에 울려 퍼졌다.

 '…어? 누구? 여기는 어디고?'

 나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눈앞에 여성이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는 상태다.

 아니, 정확하게는 있어선 안 될 차림으로,
밧줄에 묶인 채 웅크려 앉아 있다.

 "이, 이, 이, 이게 대체 뭔 일이여…."

 너무 놀란 나머지, 충청도 사투리 같은 것이
입에서 튀어나오고 말았으나,

충청도 사투리 특유의 느긋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바이스 님,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지?"

 몸은 앞을 향한 채, 고개만 살짝 돌린 여성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한 미인이다.
 눈동자가 반짝이며, 황금빛 머리칼이 살랑살랑 나부낀다.

 그보다 어디선가 본 적이….

 문득 자신의  손을 바라보자,
오른손에 채찍이 쥐어져 있었다.

 '…엥? 바이스?'

 속박된 여성, 메이드처럼 보이는 옷차림, 채찍,
바이스 님, 화려하게 장식된 실내.

 '설마 나…, 능욕 악역 귀족 바이스인 거 아니야!?"

 황급히 옆에 놓인 거울에 비친 모습을 확인해 보니,
틀림없이 나는 학원 게임 「노블레스 오블리주」에서
등장하는, 악역 캐릭터 바이스 판센트였다.

 그렇다는 소린, 앞에 있는 이 여성은…
메이드인 리리스 스칼렛인가?

 "…리리스."

 "네, 왜 그러시죠."

 여, 역시나…. 이, 이거 꿈이지!?

 만일 내가 진짜 바이스였더라면,
"닥쳐라, 암퇘지 주제에 감히 사람 말을 하다니!"라며
불합리한 매도를 퍼부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나는 그저 이 게임을 좋아해, 몇 번이고 다 회차
플레이를 했을 뿐인 평범한 남성에 불과하다.

 그런 험한 말을 입에 담을 수 있을 리 없다.

 그러고 보니…, 취미가 채찍으로 사람을 때리는 거였나.
 진짜 쓰레기잖아, 이 자식. 아니, 지금은 나지만.

 "…잠깐 괜찮을까? 리리스."

 "네."

 "내가, 널… 때렸나?"

 "네, 두세 번 정도 때리셨습니다. 바이스 님께서,
저를 때리고 싶다, 두들겨 패서 너덜너덜하게
만들고 싶다 하셨기에, 옷을 벗었습니다."

 …완전 미친놈이잖아. 대체 왜 그런 짓을 하는 거야!?
 이렇게 귀여운 여성에게 뭐 하는 짓이야!?

 바로 밧줄부터 풀고… 아니지, 아무리 그래도
한순간에 사람이 뒤바뀌면 의심하지 않을까?

 뭔가… 적당한 변명거리가….

 "…착각 마라. 그저 고기의 상태를 잠시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니까. 이번에 본레스 햄이란 걸 만들어
보려고 했거든."

 "본레스 햄이라는 건 대체…?"

 큰일 났네, 실패한 것 같은데.
 어떡하지… 뭔가, 다른 수단이─.

 "그, 그게 말이지, 돼지고기를 묶고 훈연하는 거야.
그래야 맛있어지거든."

 "그런가요…, 저 같은 암퇘지를 훈연입니까.
맛있게… 드셔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망했다, 무슨 말을 하든 역효과잖아.

 변명하기를 포기한 채,
서둘러 리리스의 속박을 풀어주었다.

 "…어찌 된 일이죠?"

 "확인했으니 이제 됐다, 그보다… 저기,
아프진 않았나?"

 그러자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하는 리리스.

 어라, 내가 또 무슨 실수라도 했나…?

 "왜 그러지."

 "아, 아뇨!? 설마 그런 말씀을 하실 거라곤
예상치 못한 나머지, 굳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앞으로는 주의할게."

 "네?"

 급히 옷을 입고, 그 사이 상황을 정리한다.

 내 이름은 바이스 판센트.
 이 세계는 이세계 판타지 학원물로써, 등장인물 중에서도
최악의 버러지 능욕 악역 귀족이라 불리는 게 바로 나,
바이스 판센트다.

 어릴 적에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는 외교로 인해
집을 자주 비우는 터라, 그걸 핑계 삼아 제멋대로
행동하는 녀석이다.

 학원에 입학한 뒤로는,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거나,
성적이 떨어지는 일이 생기면, 권력을 이용해 무마하고,
약자들을 괴롭히는 비열한 일들을 일삼는다.

 누군가가 약간의 말대답만 해도, 집요하게 상대를
몰아붙이는 치졸하기 짝이 없는 녀석이다.

 다만, 마지막엔 주인공에게 호된 꼴을 당하며,
지금까지의 악행들을 모조리 폭로당한 끝에,
모든 걸 잃고 마왕의 부하가 된다.

 끝내, 마왕의 방패막이로 쓰이며,
온몸에 구멍이 숭숭 뚫린 채 죽음을 맞이한다.

 어린 시절, 왕따를 당했다거나, 신뢰하던 하인에게
배신을 당하는 등, 동정의 여지가 없지는 않으나,
「가벼워져서 좋겠구나, 바이스」라는 마왕의
잔악무도한 대사가 큰 인기를 끌며, 바이스는 
여전히 최악의 악역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다이어트 완료, 샤워 바이스 등,
다양한 별명들이 생겨나고 사라져 갔다.

 또한 미움을 받는 이유 중 하나로,
이 녀석은 상당히 여자 버릇이 나쁘다.

 므흣한 취미가 아닌, 방금 행하고 있던 것처럼
메이드인 리리스에게 상처를 입히는 게 취미인 것이다.

 그로 인해, 남성은 물론 여성들에게도
미움을 사고 있었다.

 나 또한, 이 점이 특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여성은 지켜야 할 소중한 존재, 라고 아빠가 입이
닳도록 말했기에, 나는 결코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

 참고로 난,
지금까지 여성과 제대로 마주해 본 적이 없다.
 아무래도 좋은 얘기지만.

 "리리스, 너 목이…."

 "네?"

 그때, 리리스의 목에 채찍 자국 그대로
멍이 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만일 누가 이걸 보기라도 한다면…
좀, 뭔가 좀 그렇다.

 이 게임은 스테이터스를 보는 것이 가능하다.
 주인공이 스킬을 배워나가고, 레벨업을 하는 것을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이 게임의 장점 중 하나였다.

 반면 악역인 바이스는 레벨도 낮고, 노력과는 담을
쌓았으며 권력만 휘두를 뿐인 별 볼 일 없는 놈이었다.

 하지만… 어쩌면.

 "뒤로 돌아줘."

 "네? 아, 알겠습니다…."

 다시금 채찍으로 맞을 것이라 생각했는지,
리리스의 목소리가 떨렸다.

 하지만 나는 작은 목소리로,
스테이터스 오픈이라 외쳤다.

 …제발.

 잠시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나,
순간─.


이름 : 바이스 판센트
종족 : 인간, 남성
나이 : 14세
직업 : 귀족
레벨 : 1
체력 : 10
마력 : 20
고유 스킬 : (NEW)속박 플레이 Lv.1
칭호 : (NEW)본레스 햄의 달인


 '좋아, 나왔다…!'

 감정 스킬이 발동.
본래 플레이어는 주인공밖에 조종할 수 없으나,
혹시나 싶었던 게 성공한 것이다.

 그보다… 레벨이 왜 이렇게 낮아!
분명 주인공조차 초기엔 10 언저리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 자식 정말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구나….

 속박 플레이 Lv.1… 본레스 햄의 달인?
이건 뭐… 됐다고 치자.

 "저어, 뭐라도 하는 편이 좋을까요?"

 "아니, 안심해."

 내 생각이 맞다면… 분명 그걸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네? 무슨─."

 "힐 라이트(小)."

 나는 양손을 뻗고, 주문을 외웠다.

 이는 운영진들이 재미 삼아 숨겨둔 이스터에그로,
초기부터 사용할 수 있는 회복 마법이라며,
공략본에서 폭로한 적이 있다.

 스테이터스가 보인다면, 바이스도 혹시나 싶어서
한번 시도해 본 것이다.

 손에서 하얀빛이 뿜어져 나오고, 리리스의 멍이 점차
사라지며 본래의 새하얀 피부로 돌아오기 시작한다.

 "바이스 님…, 따뜻하고 기분 좋습니다."

 "그래, 이걸로 괜찮을 거야."

 리리스는 거울로 본인의 상태를 확인하더니,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바이스는 정말이지 나태한 녀석으로,
아무것도 하질 않았다.
 어차피 본인에겐 필요 없다며, 학원을 졸업할 때까지
최소한의 마법만 배웠을 정도로.

 하지만… 오늘부턴 아니다.
 나는 바이스이자, 바이스가 아니니깐.

 "바이스 님, 감사합니다."

 "아니, 나야말로 미안했어."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 놀랐습니다….
게다가 회복 마법을 다루실 수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헷갈리게 해서 미안해.
 뜬금없이 포박하곤 채찍으로 때리다, 회복 마법으로
치료를 해주다니, 당사자 입장에선 공포 그 자체지
않으려나?

 그날 밤, 집사들이 차려준 풀코스 요리들이 너무나도
맛있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음식들을 모조리 먹어치운 뒤였다.

 "최고였어…."

 그러자──.

 "바이스 도련님…,
이번 음식의 간이 특히 더 마음에 드셨는지요?"

 집사 제비스 오르딘이 눈을 번쩍 뜨며 말했다.

 조각상 같은 얼굴, 얄상해 보이나, 실제로는 단련된
근육들로 채워져 있으며, 명석하고 전투 능력 또한 높다.
 어떠한 일에도 끄떡없을 것 같은 인물이나,
지금은 다채로운 표정을 지으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음, 그게 무슨 뜻이야?"

 "저어… 그게…."

 곤란한 듯 보였으나, 조금 강경하게 말하라 지시했다.
 처음부터 태도가 확 바뀌는 것도 좋지 않을 거라 판단했다.

 "…평소였으면 맛이 없다며 접시를 바닥에
집어던지셨을 텐데, 오늘 음식의 간이 마음에 드셨다면,
앞으로는 이와 같은 맛으로 조정하려 했습니다.
번거롭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그렇군…, 그런 짓까지 했을 줄이야.
 게임을 클리어한 나도 모르던 사실이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내던지다니….

 그래서 내가 밥을 먹는 동안,
다들 조마조마해했던 거구나.

 왜 전원이 다 집합해 있나 싶었는데,
아무래도 깨진 접시를 치우는 담당이었던 모양이다.

 다만 리리스만은 조금 미소 짓고 있다.
 내가 변했다는 걸 눈치챈 것일까.

 아니, 그보다 할 말이 있잖아.
 당연한 거지만.

 "…지금까지 미안했어. 아침에 눈을 뜨니,
음식을 소홀히 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
그러니 앞으로 그런 일은 없을 거야. 그동안 미안했다."

 이 정도면 되겠지.
 싶었으나, 주위 사람들이 여전히 굳어 있다.
 큰일이다, 다른 사람이라는 걸 들킨 거──.

 "…어, 어찌 그런 과분한 말씀을….
감사하기 그지없습니다…."

 제비스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그리 말했다.
 그런 캐릭터였었나…?

 그에 맞춰, 주변에서도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뭐, 뭐야!? 뭔가 마지막 화처럼 되지 않았어!?

 "바이스 님, 훌륭하십니다!"

 아무래도 리리스마저 감격한 모양이다.
 터져나오는 박수들, 나, 밥을 먹었을 뿐인데!?
 이런 건 아기도 할 수 있잖아!? 응애!?

 "하하, 하하핫, 고, 고마워."

 무사히 넘어간 것 같아 다행이긴 한데.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성공적인 한 걸음이었다 치자.
 아직 나는 좀 더 변해야만 해.

 어째서냐면,
학원의 입학식이 2년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바이스가 다니는 학원은 반배정을 위한
모의고사가 존재한다.

 모의고사 전투 테스트에서 주인공에게 패배한 바이스는
평판이 떨어지고, 그로 인해 적이 늘어난다.
 반대로 생각하자면, 주인공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다면
존엄성과 위엄을 유지하며 주변에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러기 위해선, 입학식까지 준비를 끝마쳐야 한다.

 이 스테이터스로는── 미래가 바뀌질 않는다.
 죽을 만큼 노력해서, 파멸 루트를 회피하고 말겠어.
 온몸에 구멍이 숭숭 뚫린 채, 죽는 건 절대로 싫단 말이야.

 아, 일단 채찍부터 처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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