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스, 너는 진짜 바보구나.'
바보란 무엇일까?
나는 역시 [바보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것에
성적을 고려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학교 성적은 솔직히 말해, 동기부여의 문제니까.
내 성적은 학년 1위지만 내 지능이 남들과 비교했을 때,
뛰어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저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이번에야말로 천수를 누리겠다]라는 열의를 가지고,
[천수를 누리기 위해선 공부한다 (=이 세계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바라는 길)]
를 노리는 편이 좋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는 점과
[쉴라에게 절대 지지 않겠다]는 대항심을 키우기 위함이라는 점이다.
그렇기에 나는 [바보]라는 말은 단순히 지능의 높낮음으로 따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한 그래서 학년 1위인 내가 바보 취급을 받아도 이상할 것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느닷없이
바보 취급을 당하는 것에 불만을 품은 것도 사실이다.
실은 학년 1위라는 사실에 자긍심을 가지고 있어서,
바보라는 말을 들은 순간, [뭐, 그래도 나는 학년 1위니까]라는
생각을 무심코 떠올리고 말아 버렸고,
나는 무의식적으로 좋은 성적은 머리가 좋다로 인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러면 안 된다.
뭐, 그래도 나는 학년 1위지만.
자아, 그럼 내가 마틴에게 바보라는 말을 듣게 된
경위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어째서 나보다 성적이 나쁘고,
여자에게 인기도 없는 마틴이 나를 바보 취급한 것일까?
이야기의 흐름은 이렇다─.
지난 영화감상회에 마틴 일행은 오지 않았다.
나는 그 이유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마틴은 우물쭈물하며
'그보다 쉴라랑 같이 영화 봤지? 어땠어?'
라고 되물어 왔다.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면 안 되지. [그보다]가 뭐야, 그보다가.
[네가 파토 내놓고 히죽거리지 말라고]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나는 감정을 완벽하게 제어할 수 있는 16살.
마틴의 몸뚱이에 한 방 날려주는 걸로 넘어간 뒤,
친절하게 그의 질문에 답해주기로 했다.
"카페에서 공부했는데?"
그랬더니 바보라는 소리를 들었다.
'렉스, 너 말이야…. 공부 말고도 뭐랄까…, 응? 그런 거 있잖아….'
마틴은 역시 우리들이 공부하기를 원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녀석의 어깨를 쥐며 말했다.
"너도 공부했지?"
'아니, 안 했는데.'
아니, 하라고!
나랑 쉴라의 공부시간을 빼앗아 놓고선,
정작 자신은 공부하지 않다니, 무의미한 짓이다─.
나는 약간 낙담하고 말았다.
적대하는 사람의 발목을 붙잡았으면,
그 기세로 자신이 치고 나가야만 한다.
그런데 마틴은 우리들의 발목을 붙잡는 것으로 만족했고,
그것을 이용하지 않았다─.
우리의 공부시간을 빼앗고서, 자신은 공부를 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무런 득이 없다.
"진심으로 1위의 자리를 노린다면 공부해!"
'아니 아니…, 딱히 1위를 노리는 게 아니라….
그…, 뭐냐? 쉴라랑 너랑… 거 있잖아!'
나는 이런 [추측] 같은 것에는 서투른 편이다.
[알겠지?]라는 태도로 대하면, [알겠어!]라는 태도로
나오는 편이 자연스럽다는 걸 알면서도,
무심코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라고 말하고 싶어 진다.
사회에 속한 생명체에게 종종 가해지는 [무언의 압박]이라는 것이다.
[공통의 인식]이 있고, 그것을 모르면 안 된다는 분위기를 형성해,
눈에 보이지 않는 이건 상식이라는 무언의 압박을 넣는 것을 나는 극도로 혐오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무언의 압박을 형성하는 경우는 슬프게도 무척이나 많다.
무의식적으로, 의도적으로 [무심코 저질러 버렸다]와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한다.
고압적인 사람이 반드시 악의를 가지고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고압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기에, 고압적으로 행동하게 될 뿐이다.
마틴과는 친한 친구사이기에,
서로가 눈치채지 못한 사실에 대해 서로 스스럼없이 지적하는 사이다.
그래서 나는 무언의 압박을 넣는 마틴에게 주의를 주었다.
경우에 따라선 암바를 걸 수 있도록 오른손을 마틴에게 뻗으면서.
'진짜 모르는 거냐….'
마틴은 내게서 반걸음 떨어졌지만,
또다시 그의 대답에서 무언의 압박이 느껴졌기에,
나는 한 걸음 거리를 좁혔다.
'아니, 너를 바보 취급하는 게 아니라!
그…, 너 말이야…. 쉴라를 어떻게 생각해?'
나는 쉴라에 대한 솔직한 소감을 말했다.
"그 녀석이 외부 입학반의 대표가 된 건 이상하다니까.
애초에 중등 학과 때만 없었지, 다 있었잖아─."
'그게 아니라…. 하아…, 망할.
내가 말해도 되는 지를 모르겠으니….
이 이상은 말할 수 없어….'
아무래도 마틴에게 어떤 제약이 있는 듯싶었고,
그 제약에 저촉되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나는 감동하고, 사과했다.
"암바는 봐줄게."
이건 세뇌다.
마틴은 세뇌를 받고 있다. 그런데도 나에게 정보를 주려하고 있다….
일일이 [추측]하라는 태도로 나온 것은 세뇌에 의해 뇌에 새겨진
제약에 저촉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렇다면 추측해야만 한다.
하지만, 영문을 모르겠다….
나와 쉴라를 함정에 빠트린 것에 공부시간을 빼앗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것인가?
나와 쉴라….
이 조합에 [성적이 좋다] 이외에도 공통점이 있는 것일까…?
모르겠다. 우리들을 묶어 공부와 거리를 두게 하고 싶었던 이유….
'렉스, 네 인생은 공부 말고는 없냐?'
물론 있다.
공부를 제외하고도, 운동을 빼놓을 순 없다.
건강이야말로 생존의 필수 요소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덧붙여 장비들은 빼앗을 수 있어도, 근력은 빼앗을 수 없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나는 공부와 운동을 거르지 않는다.
그리고 건강은 자본이라는 인식 때문에 식사 또한 신경 쓰고 있다.
기둥서방을 목표로 하고 있기에, 요리와 가사의 대부분 또한 배우고 있다.
이제는 순식간에 세 장의 셔츠도 동시에 접을 수 있다.
그래, 마법을 이용한다면 말이야….
'…….'
마틴은 할 말을 잃었다.
그러나 그의 눈빛은 다정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애로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렉스…, 사랑은 중요해.'
그건 물론 알고 있다.
…아니, 이번 생에서 간신히 깨달은 사실이라 해야 할까.
이번 생에서는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기능의 문제다.
사회에 속하는 생명체가 왜 사회에 속해 있느냐,
그것은 사회에 속하지 않으면 생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음식을 확보하고, 요리하고, 식사하고, 배설하고, 배설물을 치우고,
그 외에도 이런저런 일들을 하고….
진지하게 [혼자 산다]라는 것은 생존만으로도 벅차다는 것이다.
그런 빡센 인생, 컨디션이 조금만 흐트러져도 목숨과 직결된다.
즉, 서로를 의지하는 것이 더 효율적인 삶이며,
사랑은 타인과 타인을 이어주는 끈이나 다름없기에 중요한 것이다.
이 완벽한 이론을 듣고, 마틴은 또다시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자애롭고 다정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내 어깨를 붙잡고 말했다.
'아니야, 절대 그렇지 않아.'
마틴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나는 그 이상의 발언이 제약에 걸리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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