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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 소설/백만 번 전생한 나는, 평화로운 세상이라도 방심하지 않는다 (중단))

57화 취미 이야기

by Hellth 2022.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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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 이란 대체 뭘까?

동아리 활동을 하지 않는 나로서는
매일매일이 [알바] 와 [강의] 로 이뤄져 있다.

뭔가를 하는 편이 좋다, 뭔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보고 싶다.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나는 아무래도 [취미] 를 가지는 것에 서투른 것 같다.

취미란, 사람을 구성하는 중대한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자면 [A 씨] 를 누군가에게 소개할 때, 어떤 식으로 말할까?
[18살에 남성이고, 취미는─] 보통 이런 식으로 소개하지 않을까?

성적, 운동신경, 경력 등 물론 중요하다.
다만, [누군가와 친구가 되기 위함] 이라면,
[취미] 가 가장 큰 계기가 될 것이다.

'이 녀석은 렉스, 취미는 BL 동인지 제작의 지휘야.'

잠깐, 기다려!

카리나가 동아리에 새롭게 들어온 신입들에게
나를 소개한 것은 겨울 코미케가 다가왔을 때였다.

길거리는 다음 주에 있을 성녀 성탄제를 위해,
일루미네이션으로 도배되어 있었는데,
[그딴 거 알빠냐] 라고 외치는 것 같은 공간─.
카리나의 대학 동방에서 우리는 얼굴을 마주하고 있었다.

신입이 들어온 것은 봄 무렵,
이때는 내가 알바 때문에 여름 코미케에 참가할 수 없었기에,
만나는 것은 지금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취미가 BL 동인지 제작 지휘라니,
이건 아니지.

그딴 취미는 들어 본 적도 없고,
나도 취미로 제작 지휘를 하는 게 아니야.

나 말고는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하는 거지.

그걸 취미라고 부르는 것은 벌써 2권의 BL 동인지

제작에 참여한 나라도 조금 의외였다.

'그럼 취미가 뭔데?'

그래, 그거야!

카리나의 논법에는 끔찍한 전제가 담겨져 있었다.
즉, 사람에게는 취미가 있어야 한다는 전제이다.

취미가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무의식적으로 단언하는 그녀의 태도에
나는 약간의 불쾌감을 느꼈다.

애초에, 다른 취미가 없다면 BL 동인지 제작 지휘가
취미가 되는 것도 이상하다.
왜 선택지가 두 개밖에 없는 건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취미는 딱히 없다.
그렇다고 취미로 BL 동인지 제작 지휘를 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지휘를 하는 것은 뭐랄까,
나 말고는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라는 느낌으로 발생한 사명감 때문이랄까….

'렉스의 사명은 BL 동인지 제작 지휘야?'

그것도 아니야!

안 되겠다, 개판이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BL 동인지 제작 지휘를
중요시 여기는 사람처럼 되어버렸다.

분명 최근 들어 자신의 성적 취향과는 별개로
순수하게 BL이라는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하기에,
신입 두 명이 저런 시선을 보내는 것도 이해가 간다만….

나는 고민했다.

까놓고, 내 취미가 BL 동인지 제작 지휘가 된다고 한들,
딱히 불이익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반드시 바로잡고 싶다. 그 착각….

이것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필요 없는 들러리 같은 것이다.
그렇지만, 결코 양보하고 싶지 않은, 즉 나의 고집이었다.

그때, 나는 눈치채고 만 것이다.

내 취미란, 즉, [남의 잘못을 바로잡는 것] 이 아닐까.

상상해 본다.
[렉스라고 합니다, 취미는 남의 잘못을 바로잡는 것입니다].

……아니야.

아무리 봐도 독재자로밖에 보이질 않잖아.

BL 동인지 제작 지휘가 취미인 사람과
독재적 사고를 가진 사람, 과연 어느 쪽이 더 나을까….

흐음─.

"……그렇네! BL 동인지 제작 지휘가 취미입니다!
열심히 지휘할 테니, 잘 부탁해!"

이렇게 나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렸다.
하지만, 더 이상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나는 이미 심연을 들여다보았기에.

올해도 지옥 같은 스케줄로 동인지 제작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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