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사랑] 이라는 것을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죽고 싶다. 지금 당장 죽고 싶다.
죽은 다음에 환생 따위는 없는 [완벽한 죽음] 이야말로,
나의 가장 큰 소망이다.
그렇다면 [완벽한 죽음] 을 맞이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천수를 누리는 것] 이 유일한 방법이다─.
라고 [전지 무능한 존재] ,
흔히 말하는 [신] 에게 그렇게 전해 들었다.
환생할 때마다, 그 시절 내가 가장 사랑했던 존재의
외견으로 나타나는 전지 무능한 존재는
경계심이 녹아버릴 정도로 달콤하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사랑합니다].
사랑하기에, 나를 되살리는 것이라 했다.
사랑하기에, 내가 전생을 반복하도록 하는 것이라 했다.
사랑하기에,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는 삶을 맛보게 하고 싶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나를 전생시키는 것이라 했다.
내가 그녀를 구한 적이 있다는 것 같다.
물론 내게 그런 자각은 없었지만.
아무래도 그녀는 나를 행복하게 만들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물론 내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지만.
그녀는 내 행복만을 바라고 있는 것 같다.
물론 그녀는 '사람' 이라는 것을 전혀 이해하질 못하고 있지만.
우리 사이에는 존재라는 차이 때문에,
서로에게 인식의 차이가 발생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귀찮은 [사랑] 에 노출되어 있던 내가,
어떻게 [사랑] 이라는 것을 아름답고, 고귀하다 여길 수 있을까.
절대로 불가능하다─.
[사랑] 이란,
제멋대로이며 남의 의견은 들어주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까, 뭐냐….
"그런 거랍니다, 밀림 양."
'……무슨 소리야?'
연인 수습 기간이 끝난 지도 벌써 반년이 지났다.
애초부터 나와 밀림의 관계는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의 약속이었다.
뭐, 그렇다고 졸업 후 헤어진 것도 아니고,
수습 기간이 끝나고, 정말 연인이 된 것도 아니고,
어중간한 관계인 채로 유지되고 있었다.
나는 모험을 하지 않는 타입이다.
그것만은 몇 번을 전생하더라도, 변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모험을─.
결단을 요구하는 때가 왔다.
계속할 것인가, 그만둘 것인가.
하지만, 이것은 책임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에서
생겨난 의문이라는 것은 절대 아니고…,
물론 약간 그런 마음도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의문점이 생겨났다.
밀림은 괜찮은 걸까?
애초에 결정권이 내게 있기는 한가?
라는 의문이었다.
'모르겠어.'
"에에…."
'연애 쪽은 남들에게 치이고, 짜증 나서,
렉스랑 사귀는 게 딱 좋다고 생각했어….'
여자한테 고백받은 적도 있다는 것 같다.
밀림은 내가 모르는 밀림의 얘기를 들려주었다.
후배에게 인기가 많다는 것.
(당연하지만, 밀림에게도 후배가 있었다.
왠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일에 몹시 놀랐다.)
수인이기에 호기심으로 다가오는 사람이 많다는 것.
학생회 내부에서도 연애 관련 소문들이 무성해,
밀림으로선 피곤하고 답답했다는 것.
그렇기에 내 여자 친구라는 입장은
자신에게 딱 맞았다는 것.
나는 유명했고 (얼레?),
렉스라고 하면 [찍히면 큰일 나는 사람] 랭킹에
압도적인 1위로 뽑힐 정도의 사람이었기에 (에엑?),
[렉스가 남자 친구] 라고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러났다고 한다.
"잠깐만, 내가 그렇게 유명하다고?"
'……중, 고등학교에서 학생 회장을 했는데,
유명하지 않을 리가 없잖아.'
성적 우수 (지력), 학생 회장 (권력),
마틴과의 다툼과 얽힌 수많은 무용담 (무력),
모든 것을 겸비한 나는 공포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눈에 띄지 않는다] 라는 표어를 내걸고,
살아온 나는 큰 충격을 받고 말았다.
거짓말….
내가 눈에 띄지 않으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
구체적으로…….
엄청 열심히 살았지.
즉, 우리는 서로에게 득이 있고,
잘 어울리는 연인이었다는 소리다.
가볍고 깔끔하다. 그리고 마음이 편하다.
나는 [사랑] 이라는 것을 좋게 보지 않는다.
오히려 이번처럼 서로에게 뚜렷한 이해관계가
있는 편이 좋다고 생각할 정도다.
연인에서 결혼.
그것은 분명, 사람마다 제각기 다른 드라마가 있을 것이다.
새콤 달콤한 청춘의 추억, 결혼식, 두 사람의 드라마틱한 만남.
나는 그런 게 필요한가?
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이해관계, 얼마나 좋아? 가벼운 게 최고지.
[사랑] 같은 어중간한 것보다 훨씬 더 믿음이 간다.
나는 마음을 굳혔다.
'밀림, 계속 이대로 있어줬으면 해."
'…그래도 돼?'
"응, 나랑 함께 해줘."
이렇게 우리들은 정식으로 연인 사이가 되었다.
분명 이해관계가 얽힌 가볍고도, 편한 계약 관계일 텐데….
나도 밀림도, 어째서인지 묘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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