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 정말 오랜만이네요. 마지막으로 뵀던 게
시부야에서 했던 괴담 토크쇼였던 것 같은데,
실제로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도 거진 10년 만입니다."
"주문은 어떡하시겠어요? 저는 아이스커피, 블랙으로.
같은 걸로 하시게요? 하하핫, 이러니까 서로 아이스커피를
마시며 회의를 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둘 다 블랙이라
주문하기 쉬워 좋다고 했었죠."
"네, 지금은 프리랜서로 먹고살고 있습니다. 다행히도
편집자 시절의 연줄로 일거리를 받고 있거든요.
오컬트 계열에선 점점 멀어지고 있지만요. 솔직히 그쪽
방면의 일만으로는 좀처럼 먹고살기 힘들잖아요?
게다가 당신처럼 호러 마니아도 아니었고요. 굳이 따지자면
그쪽 계열 편집부에 배속돼서 그랬던 것뿐이죠."
"그래도 이렇게 옛날에 일했던 분께 다시금 연락을
받게 되니 기쁘네요."
"그렇게까지 띄워주지 않으셔도 돼요.
이제는 거래처 쪽 사람도 아니니까요.
오히려 업계 경력으로 따지면 그쪽이 선배잖아요."
"그 뒤요? 큰일이었죠. 갑작스레 상부로부터 휴간이
선고됐으니까요. 뭐, 소문 자체는 오래 전부터 돌긴 했죠.
결론적으로 편집장을 포함해 3명이서 운영했을 정도로
축소됐고요. 제가 부탁드렸는데 급하게 취소 연락을 드려
죄송했습니다. 준비해 주신 원고도 있었건만…."
"편집부가 해체되고 셋 다 회사를 그만뒀습니다.
휴간이 결정된 편집부에서 타 부서로의 이동은 쉽지
않잖아요. 저도 마침 프리랜서로 활동할까 싶던 참이었고,
또 다른 편집부 직원인 O 역시 제가 그만두고 얼마 되지
않아 다른 출판사로 이직을 결정했습니다. O랑은 요즘도
가끔 술자리를 갖고는 해요. 가끔 일거리도 받고 있죠.
그러고 보니 당신은 다른 두 사람과는 끝까지 마주한 적이
없었군요."
"편잡장님요? 아, S말이죠. 글쎄요, 어떻게 지내려나.
잘 모르겠습니다. 딱히 친하게 지냈던 것도 아니고요.
가장 먼저 그만두기도 했고 저희에게 인사도 없이
가버리셨으니까요."
"지금이니까 말할 수 있는 거지만, 딱히 좋아하진 않았습니다.
이유가 뭐냐고요? 이유라, 견해의 차이일지도 모르겠네요.
저와 O는 어디까지나 월간 ○○○○을 엔터테인먼트 잡지로
만들 생각이었는데, S는 뭐랄까 보도 쪽을 중요시 여겼던 것
같습니다. 물론 오컬트를 즐기기 위해선 리얼리티가 필요하죠.
독자들 또한 창작이 아닌 진짜를 원하기도 하고요. 다만,
가장 큰 욕구는 재미라고 생각합니다. 재미만 있다면 리얼리티가
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창작도 나쁘지 않다 생각해요.
다만 S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습니다. 그래서 기획이나 원고에도
정보의 출처와 증거 등을 요구했죠. 하지만 귀신이나 외계인이
존재한다는 증거를 어떻게 댈 수 있겠어요? 제보자의 일화가
실화인지조차 알 수 없고 모든 기사를 일일이 취재하다 보면
시간이 아무리 많아도 부족하고요. 저희가 신문을 만드는 것도
아닌데 S는 그런 애매모호함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그것 때문에 자주 말다툼을 벌이기도 했었죠."
"다만 저희들도 성인이고, 편집장은 S였기에, 최종적으로
그가 바라는 것을 제작하게 됐습니다. 물론 저와 O는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들이 많았지만요. 그런 의미에서도
당신께 신세를 졌습니다. 보내주신 원고의 퀄리티가 너무
높았거든요. 당신을 향한 신뢰도는 셋 모두 의견이 일치했습니다.
제출해 주신 원고를 반려당한 적은 없던 것 같네요. 게다가
이쪽 업게의 작가는 좀처럼 보기 드물잖아요? 글을 끊는 타이밍,
시점 등 여러 의미로 많이 보고 배웠습니다."
"실은 S에 관해서인데,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점이 하나
있습니다. 아까 전에 편집부가 해체되며 다들 그만두게
됐다고 했지만 나중에 인사부 동기한테 물어보니, 얘기가 좀
다르게 흘러가더군요. 갑작스럽게 S가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냈고 그로 인해 상부에서 휴간을 결정했다고
합니다. 확실치는 않지만 그 말이 사실이라면 어중간한
시기에 갑자기 휴간을 결정한 것도 납득이 가네요.
물론 그만두는 거야 개인 사정이니 좋다 칩시다. 다만,
최소한 저와 O에게는 설명을 했어야 한다고 봐요.
마지막 날에 슬쩍 인수인계 데이터만 일방적으로 보내놓고,
뒤처리를 떠넘기다니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어요. 뭐,
인수인계고 나발이고 월간 ○○○○ 자체가 휴간이라,
저희도 제대로 된 인수인계를 하진 못했지만요. 네?
서류 창고 정리가 안 되어 있었다고요? 하하핫, 죄송합니다.
그건 저희 책임이네요. 신입들에게 민폐를 끼쳐버렸네.
그보다도 별책이라는 형태로 이렇게 계속 발행이 되고
있는 건 왠지 좀 기쁘네요."
"죄송합니다, 무심코 추억에 잠겨 말이 많아졌네요.
그러니까 오늘은 ●●●●●에 관한 얘기였나요?"
"아, 녹음기를 켜두셨군요. 아니지, 요즘 시대엔
아이폰 녹음 기능이라 해야 하나요. 아무래도 옛날
사람인지라 녹음기 쪽이 익숙해서 말이죠, 하핫."
"평소엔 인터뷰를 하는 입장이었는데, 막상 반대
입장이 되어보니 좀 긴장되네요. 처음부터 녹음했나요?
에엑, 너무하시네~. 도입부의 편집부 관련 내용은
비공개로 부탁드립니다."
"그립네~. 저도 딱 한 번 현장에 취재하러 갔던 적이
있거든요. 어디였더라, 아, 터널이다. 거기서 심령 현상의
검증을 한다던가, 이런저런 실험을 해본다던가, 결국
밤을 새웠는데도 아무 일도 벌어지질 않아 적당히
도깨비불 같은 게 찍힌 사진을 게재하고 말았죠. 그때는
오컬트 잡지도 잘 나갔는데. 제법 즐거웠죠. 분명 제
선배 되시는 분이 그 근방의 종교 시설에 관한 기사를
쓰신 적이 있다 했습니다. 언제였더라."
"전화를 받았을 땐 놀랐죠. 그 신입, 제법이네요.
산의 반대쪽까지 포함해 커다란 심령 스팟이 형성되어
있다는 건 전혀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확실히 듣고 보니
그럴 법 하단 생각이 드네요."
"방금 전에 말한 대로,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만, 휴간이
결정된 뒤로는 다들 반쯤 정신줄을 놓았던 상태인지라,
인수인계랍시고 과거 발행 잡지들이랑 CD, 서류, 취재 자료 등
죄다 종이 상자에 때려 담고 서류 창고에 적당히 던져둔 뒤,
인수인계 끝! 이라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니 개개인의 수첩이나
담당 컴퓨터에 담겨있던 자료들, 작가로부터 받은 원고,
취재 내용 같은 것들은 각자 소지한 상태로 회사를 떠난 거죠.
이번에 연락을 받고 오랜만에 옛날 취재 수첩을 확인해 봤습니다.
훑어보는 정도였지만, ●●●●●에 관련됐지만 잡지에는
게재되지 않은 이야기가 있더군요. 신입의 말을 빌리자면
산을 기준으로 동쪽, 댐과는 정 반대편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아쉽지만 원고화 되지 않았기에 취재 수첩과 제 기억을
바탕으로 하여 말씀드리는 것이니 이 점 양해 바랍니다."
"제보자는 ×××××× 씨라고 하시는 분으로,
A 씨라 칭하도록 하겠습니다. 수첩에 적힌 내용에 따르면
22살의 남성, 대학생이네요. 작가 F 씨로부터 소개받았습니다."
"인터뷰 날짜는 2012년 3월 4일입니다."
"A 씨는 도내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학생이었습니다.
인터뷰를 하기 전년도에 동일본 대지진이 있었기에,
취업 문제로 여러모로 고생을 했다 합니다만 무사히 4월에
취직처가 확정되고 졸업 논문도 제출을 끝마쳐, 한시름
놓은 시기였다고 합니다."
"이번 이야기는 A 씨의 졸업 연구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A 씨는 졸업 연구의 주제를 「공포라는 감정을 타인에게
전달할 때 나타나는 신체 표현」으로 결정했다 합니다."
"피험자에게 짤막한 공포 영상을 보여준 뒤, 피험자가
제삼자에게 해당 영상의 감상을 전달할 때 제스처에
과연 어떤 경향이 나타나는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특이하죠, 실은 A 씨도 호러 마니아였다는데, 이왕이면
자신이 좋아하는 걸 테마로 삼아 연구하고 싶었다 합니다."
"단순히 어떤 경향이 나타나는지 알아보는 것만이 아닌,
피험자의 특성에 따라 어떤 차이가 발생하는지를
연구하고 싶었던 A 씨는 피험자를 그룹별로 나눴다 합니다."
"그룹의 종류는 피험자에게 미리 전달한 10문제 정도가
담긴 설문지를 이용했다는 것 같습니다. 항목에는
「호러를 좋아한다.」, 「호러를 싫어한다. 같은 내용이나,
「말주변이 좋다.」, 「말주변이 나쁘다」 같은 것부터
「형제가 있다.」, 「형제가 없다.」 같은 것까지 다양했으며,
50명 정도 되는 피험자들의 제스처 데이터와 그들과 상반되는
그룹 피험자들의 제스처 데이트에 유의미한 차이가 있는 지를
알아보기로 했다 합니다."
"「공포라는 감정을 타인에게 전달할 때 나타나는 신체 표현」
이라는 특성상 A 씨는 스토리와 공포스러운 분위기만으로
공포를 조장하는 영상은 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가능하면 추상적이고 보고 난 뒤, 「무섭다」라는 순수한
감정만이 남는 쪽이 좋았으며, 그렇게 선택한 것이 동영상
사이트에 올라오던 「저주받은 동영상」이었습니다."
"물론 알고 계시겠지만 유명한 공포영화 「링」에 등장하는
저주받은 비디오는 본 사람이 일주일 뒤에 죽는다는 내용이죠.
의미를 알 수 없으면서도 섬뜩한 분위기를 내뿜는 저주받은
비디오는 하나의 사회현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링」의
히트 후 그걸 본떠 만든 자작 「저주받은 동영상」이
동영상 사이트를 중심으로 퍼져나간 것 또한 알고 계실 겁니다."
"A 씨가 선택한 것도 어찌 보면 무척 흔한
「저주받은 동영상」이었습니다. 약 3분 정도 길이의
영상으로 피투성이가 된 식칼, 화질이 나쁜 폐허에 비춘
사람의 그림자, 무서운 얼굴을 한 여성의 모습 등이
몇 초 간격으로 바뀌는 「뻔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A 씨가 그걸 보았을 때, 몇몇 동영상에 유명한 공포 영화의
일부 장면을 짜집기 했다는 걸 눈치챘다고 합니다.
요컨대 아마추어가 무서운 장면들을 짜집기 한 질 나쁜
영상이라는 거죠. 그 영상요? 저도 이번 기회에 다시금
찾아봤는데 이미 삭제된 것 같았습니다."
"그 영상을 피험자에게 보여주고 감상을 설명하게끔
했다고 합니다. 어깨를 감싸 안으며 「무서웠다.」라고
말하는 사람부터, 「옛날에 꿨던 악몽이 떠오른다.」라고
말하는 사람까지 각양각색이었다고 해요. 다만 주제가
주제인지라 50명의 피험자를 모으는 데도 고생이 많았다 합니다."
"뜬금없지만 상당히 흥미로운 실험 아닌가요?
저도 취재 당시에 인터뷰라는 사실을 잊고 무척 흥미롭게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결과요? 물론 들었죠.
제스처는 「종류」, 「빈도」, 「길이」로 나누어
계측했다고 합니다. 다른 설문지 항목에서는 유의미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으나, 「호러를 좋아한다.」와
「호러를 싫어한다」 그룹에선 뚜렷한 차이가 나타났다 합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호러를 좋아한다.」 그룹은
「호러를 싫어한다」 그룹에 비해 유령의 움직임,
외모를 표현하는 제스처의 빈도가 잦고, 길이가 길었다고 해요.
그 있잖아요, 손을 앞에 늘어뜨리고선 「원통하도다~」
같은 대사를 하는 거. 그런 제스처를 말합니다.
그와는 반대로 「호러를 싫어한다.」 그룹은 필러 제스처의
빈도가 잦고, 길이가 길었다고 합니다. 필러라는 것은
본디 「빈틈을 메운다」라는 의미인데, 여기선 말을
멈춘다거나 이어 말할 때 왠지 모르게 손을 움직이는 듯한,
특별한 의미가 없는 제스처를 뜻합니다."
"A 씨는 위와 같은 행동들을 이렇게 고찰했다고 합니다."
"호러를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이 공포를 느끼면서도,
그와 동시에 즐거움을 찾고 있기에 상대방 또한 동일하게
공포를 느끼면서도 그와 동시에 즐기기를 바라고 있다.
그렇기에 귀신 등 공포의 핵심이 되는 부분을 되도록
세세하게 표현함으로써 상대방에게 즐거움이 담긴 공포를
느끼게끔 하려 한다. 반대로 호러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공포를 힘든 경험으로 여기기에 상대방에게 공감을 받고,
서로에게 다가가기를 원한다. 그렇다 보니 때로는 감정이
앞서고 말이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었으며,
그 결과 필러 제스처의 빈도가 잦아진 것이 아닐까."
"이런 느낌이죠, 재밌지 않나요? 곰곰이 생각해 보면,
오컬트 잡지의 제작자 측과 독자 측과도 연관이 있어 보이잖아요.
저희는 엔터테인먼트로서 이런저런 수단을 활용해,
오컬트를 독자들에게 제공하나, 그중에는 어떤 정보에 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독자도 있다. 그런 독자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편집부에 의지해 오는 것이죠. 당신이 썼던
이야기도 그랬던 적이 있었다 생각합니다. 독자들이 보내온 편지.
특히 ●●●●●을 다뤘던 호에서 그런 「열렬한 독자」
들로부터의 연락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저도 UFO를
봤어요」 같은 연락과는 조금 다른 「무서워요, 곤란한
상태입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같은 연락들이."
"또 본론에서 벗어나 버렸네요.
쓸데없이 말이 많은 것도 나쁜 버릇이라니까요."
"그렇게 실험을 진행하며 A 씨는 50인분의 제스처를
집계해야 했다고 합니다. 전부 수동으로요. 저도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상당히 아날로그구나 싶었습니다."
"미리 피험자가 제삼자에게 설명하는 모습을 녹화해 두고,
훗날 그걸 보며 피험자의 프로필과 함께 제스처를,
엑셀에 「종류」, 「빈도」, 「길이」로 구분하여 카운트
했다고 합니다. 공포 영상 자체는 3분 언저리지만,
피험자의 이야기가 대체로 5분 정도, 길면 10분까지도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어 제법 노력이 많이 들었다 합니다."
"다만 20명 정도 집계하니 나름대로 요령이 생겨,
「이 사람은 이런 말투지 않을까?」라고 예상도 해보고
소소하게 즐기며 작업할 정도의 여유가 생겼다 합니다."
"그 중 두 피험자가 특이한 움직임을 보였다고 합니다."
"한 명은 남성, 다른 한 명은 여성으로,
제스처 자체에는 별다른 특징이 없었다네요.
다만, 두 사람 모두 이야기를 하던 도중 가끔씩
무언가를 깨달은 듯한 모습으로, 시선을 대화를
나누던 상대방이 아닌 다른 곳으로 보냈다 합니다."
"두 사람이 시선을 보내는 곳은 동일했고, 피험자 기준
오른쪽 대각선 앞, 카메라의 시야 밖이었습니다. 다만,
A 씨의 기억으로는 그곳은 방구석이며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이었다 하네요."
"게다가 의식하며 그곳을 바라보고 있다기 보단
반사적으로 바라보는 듯했으며, 어쩔 때는 순간적으로
말을 멈춘 뒤 바라보는 일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누군가에게 갑자기 이름을 불린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더군요.
정확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싶었기에 잡음이나, 방해가
될 만한 것들은 모두 사전에 배제해 둔 상황이라,
A 씨는 의문을 느꼈다 합니다."
"한 명이라면 버릇으로 치부할 수 있겠지만, 2명.
심지어 바라보는 방향마저 동일하니 이건 뭔가가
실험 결과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A 씨는 그 두 사람의 설문을 다시금 검토해 보기로
결심했다 합니다."
"실은 처음에 말씀드리지 않았던 게 있는데, A 씨는
설문지를 작성할 때 반쯤 장난 삼아 어떤 항목을 설문지에
추가해 두었다고 합니다. 바로 「영감이 있다.」와
「영감이 없다」입니다."
"그렇습니다, 짐작하신 대로 50명 중 그 둘만이
「영감이 있다.」에 응답한 것이죠."
"호러 마니아였던 A 씨는 흥미를 느끼고 개별적으로
두 사람과 대화를 나눠봤다고 합니다. 두 사람 모두
처음에는 단호히 거절했지만, A 씨가 끈질기게
부탁해 온 탓에 끝내 허락을 구할 수 있었다 합니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대체적으로 일치했다고 하네요.
실험 도중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면 소리가 들려왔다고 합니다.
방구석에서 말이죠. 쿵, 쿠웅하고 불규칙하게 소리가 계속
울리듯이 났다고 합니다. 다만 두 사람 모두 그것이 흔히
말하는 심령 현상이라는 것을 단번에 눈치챘다고 합니다.
본인에게만 보이고, 본인에게만 들리는 삶을 살아온 그들에게
있어 지금까지 조우했던 것 중 하나에 불과했기에 특별히
언급하지 않고 이야기를 계속했다고 합니다."
"다만 반사적으로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고,
그 모습이 A 군의 눈에 띈 것이죠."
"그 방에 귀신이 있었느냐는 물음에도 두 사람의 답변은
동일했다고 합니다. 아마 실험에 사용된 동영상 때문이
아닐까란 답변이 돌아왔다고 하네요. 이유는 동영상에
관련된 이야기를 끝내자마자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됐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두 사람 중 남성 쪽은 여기에 더해 소리와 함께 검은
그림자가 보였다고 얘기했습니다. 소리에 맞춰 검은
그림자가 방구석에서 오르내리고 있었다고. 마치 그림자가
펄쩍펄쩍 뛰어 바닥을 쿵쿵 울리는 것 같았다고 합니다."
"남성은 A 씨에게 이리 말했다고 합니다."
"이런 건 모른 척하는 게 제일 좋아요. 이쪽이 눈치챈 걸
상대가 깨닫게 되면 귀찮은 일이 벌어질 테니까요.
흥미 본위로 접근하진 않는 편이 좋아 보입니다."
"경험자의 말은 무게가 다른 법이죠. A 씨도 그 이상
캐묻기를 포기했다고 합니다. 그 동영상도 이후로는
보지 않은 듯하고요."
"다만 A 씨는 이미 너무 깊이 파고들었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한 달 정도가 지나 졸업 연구도 마무리되어갈 때쯤,
A 씨는 매일 늦은 시각까지 대학에 남아 논문을 집필하고
있었다 합니다. A 씨가 혼자 사는 맨션은 대학에서 두 정거장 정도
떨어진 곳이라 대학 인근에 사는 세미나 동료의 집에서 잠시
신세를 지며 그곳에서 통학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A 씨의 휴대폰에 낯선 번호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고 합니다. 상대방은 결찰이었죠.
어젯밤 이웃 주민으로부터 신고가 들어왔는데,
A 씨 집 베란다에 여성이 서 있다고요."
"신고한 주민은 맞은편 맨션에서 거주 중이며, 거실에서
창문을 통해 아파트 베란다가 보인다고 합니다. 21시경에
무심코 베란다 쪽을 바라보았더니 5층 모퉁이방, 즉 A 씨의
방 베란다에 빨간색 계열의 코트 같은 옷을 입은 여성이
두 손을 들고 만세를 하는 듯한 자세로 서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갑자기 그 여성이 A 씨의 방 쪽을 바라보며 일정 간격으로
점프를 했다고 해요. 커플들의 치정 싸움으로 베란다에
쫓겨났나 정도로 생각한 주민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잠자리에 들었으나, 새벽 3시경 화장실에 가려다 무심코
그쪽을 바라보았더니, 놀랍게도 그 여성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고 합니다. 변함없이 A 시의 방 쪽을
바라보며 일정 간격을 두고 점프를 반복했다고 해요.
놀란 주민이 눈을 떼지 못하고 바라보고 있는데, 뭔가
위화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점프할 때마다 목이 크게 기울어졌대요. 목을 고정하지
않은 아기처럼 점프에 맞춰 목이 앞뒤양옆으로 이리저리
흔들렸다 합니다."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했을 때는 이미 그 여성이
사라진 뒤였고, 경찰이 A 씨의 방을 찾아갔지만
부재중이었기에 다음날 부동산을 통해 연락처를 물어
연락을 해왔다는 겁니다."
"또한 그 소동 이후 며칠 뒤, 이번엔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다고 합니다. 담당자가 말하기를 A 씨가 거주하는 방
바로 아래층 주민으로부터 민원이 들어왔다고.
요즘 매일 같이 새벽에 쿵, 쿠웅 하고 천장에서 소리가
난다는 민원이 들어오고 있기에 조용히 좀 해달라는
것입니다. 경찰이 출동한 적도 있어서 그런지, 강제로
퇴거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는 투로 주의를 줬다고 하네요."
"A 씨는 그 이후로 거의 집에 들어가질 않았다고 합니다.
여자가 자신의 방을 찾아내 내부에 침입한 것을 알게 됐는데
돌아갈 수 있을 리 없죠. 그럼에도 몇 번 정도 부동산에서
계속해서 민원이 들어오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합니다.
A 씨가 거의 집에 들어가질 않았다고 전하자 일단은 한 발
물러선 모양이지만요."
"그렇다고는 해도, 만일 4월에 취직한 직장 근처로
이사를 간 곳까지 따라오면 어떡하나 싶어, 두려움에
떨던 A 씨는 지인 중에 오컬트 방면의 작가가 있어,
그 사람에게 울며 불며 애원했다고 합니다. 그게 바로
A 씨를 제게 소개해준 F 씨입니다. F 씨로부터 상담을
받은 저는 불제를 받을 수 있는 절을 소개해주는 대신
인터뷰를 하게 된 것이고요."
"어떠셨습니까? 후훗, 납득이 가질 않죠?
그도 그럴게 ●●●●●가 등장하질 않으니까요."
"실은 뒷이야기가 있거든요. 당신도 신경이 쓰였겠지만
그 저주받은 동영상에 관해서요. 저도 바로 알아봤습니다."
"A 씨는 연구를 위해 적당히 골랐다고 했지만, 실은
그 동영상 제법 유명한 거더군요. 유명이라고 해도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된 수준이긴 하지만요."
"「이 동영상을 보면 레알 저주받는다는 듯함」이라는
게시글이 있었는데, 거기에 이 동영상 링크가 첨부되어 있어서,
본 사람들은 하나 같이 기분이 나빠졌다던가 유령을
봤다던가 하며 한때 불타올랐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관심이
끌리기 시작하자 유저들에 의한 판별이 시작된 모양이에요."
"이 장면은 몇 년도에 제작된 미국의 이 영화라던가,
옛날에 유행했던 심령 계열 GIF를 짜집기 했다던가,
이런 걸 찾아내는 사람들 보면 참 굉장하죠."
"그중 유일하게 짜집기를 하지 않은 장면이 있더군요.
엄밀히 따지자면 2컷에 한 장면 같은 느낌이랄까요?
5초 정도 되는 흑백 영상이 나오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 부분만 짜집기가 아닌 아마추어가 찍은 영상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저도 봤습니다만 딱히 특별한 건
없었고, 불쾌함만 따지자면 제법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가장 먼저 「5」라는 숫자가 벽면에 적힌 건물이 등장합니다.
아파트 단지 같은 걸 보면 건물마다 몇 동인지 적혀 있잖아요?
딱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마치 그 건물을 올려다보며
촬영하고 있는 듯한 느낌. 그런 다음엔 여성의 얼굴이
클로즈업되고 웃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화간 난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입을 옆으로 크게 벌린 채 이를 훤히 드러내고선 화면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거죠. 여자 얼굴의 임팩트가
컸기도 했고 비치는 것이 정말 짧은 시간이기에 천천히
돌려보야 알 수 있지만, 아마 그 여자, 카메라를 바라보며
점프를 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그러니까, 아래에서 위를
바라보며 펄쩍펄쩍 뛰고 있는 여성을 바로 위에서 촬영한
느낌이라면 이해가 되시려나요. 얼굴보다 조금 위로 두 손이
보였기에 카메라를 향해 손을 뻗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맞아요, A 씨 이야기에 등장한 여성과 비슷하죠.
동일 인물인지는 모르겠네요. A 씨도 그 여성을 직접
본 게 아니니까요."
"당연하게도 그 의문의 영상 속에 관한 장면도 특정이
이루어졌습니다. 첫 번째 건물, 그건 ●●●●●의
유령 맨션이라 불리는 건물의 5호 동이었어요. 건물의
외관부터 시작해 배경으로 보이는 산의 능선까지,
틀림없어 보였습니다."
"다만 여성 쪽은 무리였습니다. 사실상 비치는 게 얼굴과
손 밖에 없으니까요. 그 밖에 유일하게 알 수 있는 건
땅이 자갈밭이었다는 점 정도겠네요. 커뮤니티에서도
제법 다뤄지고 있습니다만 그게 누구인지, 어디서
찍은 건지는 끝내 알아낼 수 없었습니다."
"그 유령 맨션, 이런저런 소문이 있잖아요. 그게
저주의 원인 아닐까 하는 게 인터넷에서의 견해였습니다."
"이걸로 이야기는 끝입니다."
"어째서 잡지에 실리질 못 했냐고요?
아, 편집장한테 까였습니다. 결말이 너무 애매하다면서요.
즉, 진상을 파해치지 못했다는 소리죠.
뭐, 그 사람 답다변 그 사람 답습니다.
또한 제 스스로도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이 이야기는 어중간하다고. 난잡하다 해야 할까요?
정체를 알 수 없어 열린 결말로 끝내기엔 조금 임팩트가
약한 것 같고, 진상을 파해쳤다기엔 애매하고. 여러모로
아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차피 잡지에 실리지 못한 이야기니, 필요하시다면
소재로 쓰셔도 좋습니다. 당신이라면 분명 맛깔나게
집필해 주시겠죠? 이로서 이 이야기도 성불할 수 있겠네요.
아뇨 아뇨, 사양하지 말아 주세요. 여러모로 신세를 졌으니까요.
그보다 이러고 있으니 옛날 그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네요.
즐거웠습니다."
"혹시나 O에게도 ●●●●● 관련 미게재 정보가 없는지,
물어보겠습니다. 최근에 연락이 뜸하기도 했고, 마침 잘 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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