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씨의 어머니는 항상 미소를 짓고 다니는
온화한 여성이었다.
A 씨는 20살 무렵까지 아버지, 어머니, A 씨 셋이서
오카야마에 위치한 친가에서 거주 중이었다.
취직을 계기로 A 씨는 근무지인 나가노에서
자취를 시작했으나, 20년 정도 지났을 무렵
친아버지가 뇌경생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발견이 너무 늦어져
병원의 치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그날 중으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홀로 남은 어머니를 배려해, 동거를 제안하였으나,
어머니는 외동아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싶진 않다며
이를 거절했다고 한다.
마흔이 넘도록 독신인 A 씨의 혼기가
이 이상 늦어지는 것을 걱정한 모양이다.
귀성할 때마다 어머니가 신경이 쓰였고, 친가의 넓은
외딴집에서 홀로 지내시는 칠순에 가까운 어머니는
역시 외로워 보였다.
"엄마 있지, 이사 가려고."
어머니의 연락을 받은 A 씨는 놀랐지만,
그 내용을 듣고 찬성한다.
어머니가 이사를 가기로 마음먹은 곳은 부동산에서
소개받은 ●●●●●에 위치한 맨션이었다.
친가는 혼자선 관리하기도 힘들었고, 이곳저곳에
아버지와의 추억이 깃들어 있었기에 마음이 어수선해진다.
차라리 장소를 바꿔 그곳에서 남은 여생을 보내고 싶다.
맨션이라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웃에게 의지할 수도
있으니까. 그런 엄마의 마음도 납득이 갔다.
A 씨가 인터넷으로 알아본 결과, 80년대 신도시 개발로
건축된 맨션 부지는 과거 가족들이 살기 좋은 분양 맨션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현재는 임대 맨션으로 많은 방들이 임대된 상태이며,
거주민은 고령자 부부나 어머니와 같은 독신들이 많았고,
집세 또한 크기에 비해 상당히 저렴하게 느껴졌다.
산을 깎아지었으나, 마을과의 거리도 가깝고,
완만한 경사라 노인의 몸으로도 장을 보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어 보였다.
부동산 직원에게 이끌려 어머니와 함께 방을
구경하러 온 A 씨가 느낀 첫인상은 「음울하다.」였다.
거리를 내려다보는 경치는 매우 아름다웠으며
뒤에 위치한 산에서는 자연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울하다.」라고 느꼈다.
주민이 적었던 것이다.
맨션의 광활한 부지 내에 여러 동이 들어서 있으나
바깥을 거니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웠고,
부지 내 공원마저 주민을 찾아볼 수 없었다.
건물 자체도 대부분의 창문에 커튼이 달려있지 않아,
입주자는 전체의 30%도 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화단이나 공용 시설도 낡았고, 전반적으로 삭막한 분위기라
그 인상에 박차를 가했다고 한다.
A 씨의 불안과는 대조적으로 어머니는 그 맨션을 마음에
들어한 눈치였다.
경치가 좋고 자연적인 입지는 물론이요, 사람이 적은 것도
얌전하신 어머니께는 장점으로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A 씨 또한 본인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생각해,
특별히 참견하진 않았다.
몇 개의 방을 둘러본 뒤, 최종적으로 어머니가 결정한 것은
5호 동 3층의 한 방이었다.
10층 건물이지만 고층은 오가기 번거롭다는 점.
5호 동은 비교적 독신자용 방 구조와 가구들이 배치되어
있다는 점, 비슷한 환경이라 이웃과의 교제가
쉽다는 부동산의 강한 권유에 의한 선택이었다.
그런데 이사 당일 어머니와 함께 인사를 하러 찾아간
같은 층의 주민들 중 문을 열어준 곳은 단 한 곳밖에 없었다.
그 주민 또한 몹시 무뚝뚝한 고령의 남성으로, 인사도
받는 둥 마는 둥 하며 과자를 받아 들고는 문을 닫아 버렸다.
정말 이런 곳에서 사는 게 어머니께 도움이 될까
싶은 불안감을 A 씨는 떨쳐낼 수 없었다고 한다.
어머니의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고 반년 정도가 흘렀을 무렵,
A 씨가 살고 있는 나가노의 자택에서 누수가 발생했다.
심지어 A 씨의 방 바로 위에서 누수가 발생하여, 필연적으로
A 씨의 방은 누수 피해를 제일 크게 입고 말았다.
부동산에서 말하기를 수리 및 정돈을 위해선 이틀 정도가
걸린다 하였고, A 씨는 이를 기회로 어머니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 잠시 머물기로 결정한다.
어머니의 이사 이후 A 씨의 일이 바빠진 탓에,
오랜만에 만나는 것이라 그런지,
어머니는 몹시 기뻐했다고 한다.
이사 후 처음 방문하는 그 맨션은 여전히
음울한 분위기를 띠고 있었다.
다만 어머니의 방에 들어서자 벽에는 달력이 걸려 있고,
이사 이후 구매했을 책들이 책장에 꽂혀있는 것을 보고,
어머니가 새로운 터전에 적응하고 있음을 느꼈다.
주민은 적어도 몇몇 친구도 사귀었다고 한다.
그 사실이 A 씨를 조금 안심시켰다.
A 씨의 어머니는 늘 웃고 있는 온화한 여성이었다.
그건 A 씨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였으며, 어렸을 때
A 시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자주 어머니에게
이야기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별말 없이 싱글벙글 웃으며
A 씨의 이야기를 얌전히 들어주고는 했다.
엄하고 다가가기 어려운 분위기인 아버지와는
대조적이었다고 한다.
A 씨가 어머니가 사는 아파를 찾은 그날도 어머니는
커튼을 활짝 열어젖혀 햇살이 비치는 창문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아 싱글벙글 웃으며 근황을 들어주었다.
다만 그 모습은 A 씨가 알고 있는 어머니와는 조금 달랐다.
대화 도중 가끔 공허해지곤 했던 것이다.
A 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미소와 함께 맞장구를 쳐주던
어머니의 얼굴에서 순간 감정이 사라진다고 한다.
정색과는 조금 다른, 무표정 속에서 아파트의 첫인상과
같은 음울함을 느낀 A 씨가 그에 대해 지적했으나,
어머니는 자각하지 못하는 듯했다.
또한 어머니는 의자에 앉아 오랜 시간 멍하니 창밖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창밖에 펼쳐진 산의 경치에 묵묵히 시선을 보내고 있다.
원래 내성적이고 외출보단 독서를 좋아하던 어머니였지만,
TV를 켜지도, 음악을 듣지고 않고 그저 밖을 바라보는 모습에
상상하기도 싫었으나, 치매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참다못한 A 씨가 물었다.
"왜 그렇게 밖만 보고 있어? 희귀한 새라도 있어?"
어머니는 여전히 밖을 바라보며 답했다.
"기다리고 있어."
A 씨는 어머니가 대체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거냐고
되물었으나, 어머니는 싱글벙글 웃기만 할 뿐 더는
답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 부엌에서 요리를 하던 어머니가 말했다.
"오늘은 고기 감자조림을 만들게.
디저트는 시원한 감으로. 둘 다 좋아하는 거지?"
분명 A 씨는 고기 감자조림을 무척 좋아했다.
하지만 감은 딱히 좋아하지 않은 데다 지금은 봄이다.
역시 어머니가 치매에 걸리신 걸까 하는 생각에
A 씨는 슬픔에 잠겼다.
그렇게 고민에 잠겨있을 무렵, 식탁 위로 음식들이
늘어서기 시작했다.
고기 감자조림, 된장국, 시금치 무침, 당면 샐러드,
갓 지은 따끈따끈한 밥. 모두 A 씨가 좋아하는 메뉴들뿐.
그게 역으로 슬프게만 다가왔다.
그런데 한 입을 먹은 A 씨의 말문이 막혀버렸다.
맛이 없던 것이다.
만드는 음식의 맛이 이상해지는 건 치매의 유명한 증상 중
하나다.
다만 어머니가 만든 음식은 그런 것들과는 조금 달랐다.
겉보기엔 고기 감자조림인데 맛이 나질 않는 것이다.
마치 모래를 씹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설탕과 소금을 바꿔 넣는 실수라면 당연히 위화감이
느껴지고 맛이 없게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맛이 없다가 아닌 맛이 나질 않는, 무맛이었다고 한다.
할 말을 잃은 A 씨를 눈치채지 못한 채, 어머니는 자신의
접시에 담은 그것을 부지런히 먹고 있었다.
그 모습 또한 식사를 즐긴다기보단 반복적인 작업으로
보였다고 한다.
소중한 어머니를 이렇게 방치할 순 없다.
A 씨는 어머니를 모시고 살기로 결심했다.
젓가락을 내려놓고 어머니에게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하나
고민하던 순간 창밖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쿵」하는 소리와 함께 「철퍽」하는 소리가 동시에
들린 것 같은 기묘한 소리였다.
너무 큰 소리에 놀란 A 씨는 창문을 향해 달려갔으나,
놀랍게도 그보다 더 빠르고 민첩하게 어머니가 먼저
창문으로 달려갔다.
창문 아래에는 사지가 이상한 방향으로 뒤틀린 인간이
피웅덩이 속에서 미세하게 몸을 경련시키고 있었다.
A 씨의 어머니는 항상 미소를 머금고 있는
온화한 여성이었다.
그 순간을 A 씨는 잊지 못한다.
창문 아래의 참상을 바라보며,
어머니는 조용히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일시적으로 어머니를 친척에 맡긴 A 씨가, 맨션에서
나가노로 어머니의 짐을 옮기는 이사 트럭을 배웅한
그날, 맨션 부지 내에 있는 공원에서 한 중년의 여성이
말을 걸어왔다.
듣자 하니, 그 여성은 다른 동에 사는 어머니의
지인이라고 한다.
얼마 전 어머니의 방에 드나드는 A 씨의 모습을 보고,
오늘 우연히 앞을 지나가길래 말을 걸었다는 것 같다.
맨션에 주민 자체가 원체 적기도 하고, 어머니가
이사했을 당초, 공원을 산책 중에 알게 된 그 여성은
이것저것 많이 신경을 써줬다고 한다.
다만, 어머니가 밖을 별로 돌아다니지 않게 되고 난
뒤부터는 교제도 끊기고 말았다고 한다.
A 씨가 어머니께서 이사를 가게 됐다는 사실을 밝히며,
그동안 신세를 졌다며 감사 인사를 전하자.
"쓸쓸해지겠지만, 차라리 그게 낫지.
저런 곳에서 계속 살아봐야 좋을 것 하나 없어…."
5호 동에서 자살 소동이 벌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해마다 몇몇 사람들이 뛰어내리고 있으며
이미 자살 명소로도 유명하다는 듯했다.
뛰어내리는 사람들은 맨션 거주민이 아닌, 어째서인지
일부러 멀리서 「죽으러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또한 다른 동에서는 그런 일이 없고, 유독 5호 동에서만
이러한 사건들이 자주 벌어지는 터라 맨션 부지 내
주민들도 5호 동에는 그리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그런 곳에서 어머니는 살고 있던 것이다.
A 씨는 문득 생각이 나, 어머니가 넘어온 뒤로도
이런 소동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이미 2명이 뛰어내렸던 모양이다.
A 씨는 그 말을 듣고 확신했다.
어머니는 누군가 뛰어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조용히 창가 근처에 앉은 채로.
인쇄물에 붙은 포스트잇에 빨간 글자로 지시가 적혀있음.
「분량상 게재 페이지가 4P에서 2P로 변경되었습니다.
세세한 묘사들은 제외하고 투신자살에 초점을 맞춘
괴담으로 수정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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