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레스 마법 학원」.
오스트라바 왕국에서 가장 저명한 교육기관이자,
누구나 한 번쯤 입학을 꿈꾸는 최고의 시설이다.
가장 큰 이유는 졸업생들이 남긴 공적.
어떤 이는 마법사의 최고 명예인 「현자」의 칭호를,
어떤 이는 「검성」의 칭호를.
「영걸」, 「준걸」, 「성검」, 「신동」──,
세자면 끝이 없지만 이들 모두 역사에 이름을 새길 만한
공을 세운 자에게 주어지는 특별한 칭호들이다.
부와 명성, 권력, 명예까지,
이 학원에 입학한 시점에서 이미 그중 하나가 약속된다.
하지만 그렇기에 입학 난이도가 매우 높다.
수련을 쌓기 위한 학원임에도 불구하고,
입학시험에서 고난도의 마법, 검술의 재능이 요구된다.
가문마저 중요시된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그건 사실이 아니다.
나이 제한은 있어도, 가문은 보지 않는다.
저명한 학원임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그런 역설적인
규칙이 있는 것이냐면, 원작 속 주인공의 태생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지 않나 싶다.
시골 태생, 가족을 아끼는 평민, 그것이 주인공이다.
하지만 마물에게 마을을 습격당하며 재능이 개화,
그로부터 여행이 시작되며 이런저런 만남과 이벤트를
발생시켜 나아간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이 학원에 입학하는 것이다.
나와 처음 만난 건 시험 당일날.
원작대로라면 주인공도 지금쯤 필사적으로 수련을
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
그래서 나도 그에 대비해 특훈을 하고 싶은데──.
"날씨가 참 좋네요, 새들이 지저귀고 있고요."
판센트 가문의 드넓은 정원의 한편에,
우아한 테이블을 둘러싸고 티타임을 보내고 있다.
그것도 금발 벽안, 초 미소녀, 금사빠 신티아 영애가
조용히 찻잔을 들며 말했다.
당연히, 나도 화답했다.
"그렇네, 새들이 지저귀고 있어."
"……."
"……."
불편한 정적이 흐른다.
흐르고, 또 흐른다──.
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신티아는 분명 미인이다.
피부도 하얗고, 몸매까지 좋다.
하지만 그녀에겐 주인공과 만나고,
여러 중요한 이벤트가 기다리고 있을 터.
그중에는 나를 처형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지만….
이런 곳에서 함께 홍차를 즐기다 보면,
미래가 바뀔지도 모른다.
시나리오를 깨서 미래가 틀어지면 곤란한 건 나다.
그러니 최소한 입학까지는 절대 접근하지 않겠다,
그리 다짐하고 있었건만….
"기뻐해라, 바이스. 내일이다."
"내일이라니 뭐죠? 아버님."
"후후후, 기대하고 있거라."
라고 의미심장하게 말하더니, 이 모양 이 꼴이다.
"수줍어하며 말수가 적은 것도 귀엽군요."
참고로 신티아는 한결같은 성격이다.
주인공이 몇 번이나 위기에 빠져도,
무상의 사랑을 제공한다.
금사빠 성격이라 착각하는 일도 많다.
무엇보다 가만히 있는데도,
내 호감도가 치솟는 게 바로 그 증거다.
"바이스 님, 한 잔 더 받으시지요."
"히익!? 가, 감사히 받을게."
그때, 어디선가 나타난 리리스.
너무 놀란 나머지 여자 같은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가끔 리리스의 기척을 눈치채지 못할 때가 있다.
부끄럽지만, 어찌 보면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남자다워야 할 내가 이런 꼴사나운 목소리를 내다니,
틀림없어, 이건 분명 안 좋은 쪽으로──.
"귀여워… 귀여워라… 바이스 님 귀여워….
귀여워… 너무 귀여워… 바이스 님 졸귀…."
아, 안 돼.
뭐라 중얼거리고 있지만, 싫어하는 느낌은 아니야.
…하지만 어찌 보면 이거 …잘 된 일 아닐까?
신티아 영애와 친해지면,
설령 시나리오가 틀어지더라도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지 모른다.
그래,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좋다고 하잖아.
그래, 그렇다고 치자.
그 순간, 뭐라 말할 수 없는 살기가 느껴졌다.
황급히 돌아보지만 아무도 없다.
분명 근처에서 느껴졌는데.
시야에 들어오는 거라곤,
리리스의 천사 같은 미소뿐.
"……무슨 일 있으신가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호감도가 떨어지는 현상은 없었지만,
괴기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바이스 님, 오늘 일은 아버님께 들으셨는지요?"
"응, 들었어(어젯밤이지만)."
"그렇군요, 그래서 양해해 주신 건가요."
"양해랄까(기대하고 있으라 했을 뿐이지만),
그보다… 나도 기뻐(티 타임은 처음이기도 하고)."
그렇게 별 의미 없는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다만 몇 번 정도 살기가 느껴졌으나,
끝내 정체를 밝힐 수는 없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즐거웠어요."
"나야말로, 어이쿠, 실례."
마차까지 신티아 영애를 배웅한다.
등에서 날카로운 살기가 날아드나, 이젠 익숙해졌다.
쓰러질뻔한 그녀의 손을 순식간에 낚아챘다.
생각해 보니, 이거 가지고 뭔가 달라지진 않을 것이다.
앞으로 주의하면 된다.
우리는 그저 단순한 지인일 뿐,
무슨 일이 있어도 바쁘다 둘러대면 될 것이다.
"후후후, 정말로 친절하셔라. 입학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서로 힘내보죠."
"그렇네, 신티아 영애도 무리는 하지 말고."
참고로 그녀는 별문제 없이 합격한다.
아주 희귀한 마법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검술마저 다룰 줄 알고.
가녀리고 가련해 보이나,
뒤에선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미소녀다.
"오늘은 좋은 추억이 생겼네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자세한 얘기는 다음에 다시 하도록 하죠."
"나도 잊지 않을게
(시나리오가 바뀌진 않을지 걱정이 태산이니)."
그렇게 신티아 영애가 떠나간다.
마차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쯤 뒤를 돌아보자,
리리스가 어째서인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리리스!? 왜 그래!?"
"아뇨…,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저는… 그저 메이드에 불과하니까요."
영문을 모르겠다.
어째서 리리스가… 그런가, 어쩌면… 괴로웠던 걸까.
나와 신티아 영애가 사이좋게 지내는 게.
항상 나를 응원해 주었는데… 눈치채지 못했다.
"단순한 메이드라니, 리리스는 내게 소중한 존재인걸."
"하지만…신티아 영애와…."
"아버님이 멋대로 결정한 거지(티 타임),
내가 결정한 게 아니야. ──그보다, 귀족 학원의
시종 제도라고 알아?"
"…네, 물론입니다."
"나는 리리스를 데려갈 생각인데, 그때는 잘 부탁할게."
노블레스 학원에는, 상위 귀족만을 특례로,
시종을 동행하는 것이 허용되고 있다.
원작이라면 바이스는 분명 적당한 메이드를 시종으로
데려왔겠으나, 나는 리리스로 할 예정이다.
이 정도 개변은 문제없을 것이다.
시종도 시험을 봐야 하는 걸로 알고 있으나,
그리 어렵지는 않겠지, 아마도.
"…그건 즉, 저를 원하신다는 소리인가요?"
"응, 그런 거지."
"…알겠습니다, 바이스 님! 열심히 할게요!
…금단의 사랑… 이로군요."
"예?"
마지막 말은 잘 안 들렸지만,
울고 잇는 리리스에게 꼬치꼬치 캐물을 순 없었다.
하지만, 그날 밤 터무니없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약혼…."
서류에 적힌 내용은 나와 신티아 영애가,
약혼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식사회는, 약소한 축하라고 할까,
두 사람의 첫 상견례였던 모양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어제의 대화가 퍼즐처럼 맞물리기 시작했다.
"바이스 님, 오늘 일은(약혼에 관한 것)
아버님께 들으셨는지요?"
"응, 들었어."
"그렇군요, 그래서 양해해 주신 건가요
(약혼자들끼리 마주하는 자리기에)."
"승낙이랄까(동음이의어), 그보다…
나도 기뻐(약혼한 것에 관한 것이라 생각했을 터)."
에에엑!? 그럼 나, 신티아 영애와 약혼한 거야!?
"아빠아아아아아아아아!"
그리고 한 가지 더, 리리스가 취침 전,
내 방 앞에 나타나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저희 둘만의 비밀은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라고 말해 온 것이다.
그것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니…,
아마도 이럴 것이다.
"단순한 메이드라니, 리리스는 내게 소중한 존재인걸."
"하지만… 신티아 영애와…(약혼한 것)."
"아버님이 멋대로 결정한 거지(약혼),
내가 결정한 게 아니야."
그리고 나와 함께 있어달라고 선언,
거기에 소중한 존재라고 고백까지.
마지막에 희미하게 들렸던,
「금단의 사랑」이라던 리리스의 말.
아마도, 약혼한 날,
불륜 선언을 해버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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