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수들이 옅은 분홍색 꽃잎을 흩날리기 시작할 무렵,
나는 유치원에 가게 되었다.
새로운 친구들이라곤 해도, 낯익은 얼굴들이 대부분이다.
그렇다, 보육 시설 또한 거대한 학원의 일부로
보육 시설에서 유치원으로 유치원에서 초등 학과로
가는 것이 일반적인 루트이기 때문이다.
그다지 동급생들과는 놀지 않고, 연하를 돌봐주던 나였지만,
홀로 붕 뜨거나 하는 일 없이 평범하게
동급생들 사이에 잘 녹아들었다고 생각한다.
이거라면 분명 [적]도 방심하겠지─.
그렇다, 생존하고 싶다면 자신을 약하게 보임으로써
상대방이 방심하게 만드는 의태가 필수다.
[굳이 죽일 가치도 없다.]라고 생각하게 만든다면
그만큼 이쪽의 생존 확률이 올라간다.
보육 시설에서 그랬던 것처럼, 나는 유치원에서도
크게 눈에 뜨이지 않도록 적당히 선생님들에게
순종하며,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장난치는
그런 생활을 해 나갈 생각이다.
하지만 그런 밋밋한 유치원 생활이 시작될 무렵,
나에게 하나의 불온하고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전학생이다.
정확히는 [전학생]이 아니다─.
다른 보육 시설 혹은 가정에서 이 유치원으로 입학시킨 것이고,
애초에 [입학식] 역시 함께 하기에, 전학이라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다.
나는 당연하다시피, 같은 보육 시설에서
한솥밥을 먹은 사이가 아닌 그 녀석을 경계했다.
그렇다면 경계란 무엇인가?
당연히 [파악]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경계해야 할 것이 정말 많기에 모든 일에
일일이 날을 곤두세우며 경계할 수는 없다.
정신은 피폐해지고 기력은 떨어져,
만일의 사태에 대비할 수 없게 된다.
그렇기에 파악함으로써 경계를 계속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나는 자유시간이 되자, 보육 시설에서 함께 입학한
친구들을 이끌고 외부 입학생들을 둘러쌌다.
가자, 애들아!
오오─!
눈에 띄지 않도록 적당히 행동하며 적당히 순종하고
적당히 응석 부린 결과, 나는 보육 시설 출신 아이들의
대장이 되어 있었다. 역시 적당히는 굉장해.
외부 입학생들은 어딘가 불안해 보였고
나는 그 녀석들을 지긋이 노려 보았다.
'뭐, 뭔데!?'
외부 입학생 중 한 명이 내 앞으로 걸어 나왔다.
어라? 하고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리들은 아직 네 살이다.
물론 두 발로 걷고, 뛰는 것은 평범하게 가능하고
나무 타기 및 손기술이 필요한 [종이접기]까지도
문제없이 소화해낼 수 있다.
말도 점점 또렷하고 명확해지고 있다.
아직 불안하고 어색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지만,
일상적인 대화를 소화하기에는 충분할 정도로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나조차도 그 녀석의 [뭐, 뭔데!?] 발언은
왠지 모르겠지만 무척 어른스럽게 느껴졌다.
말에 무게감이 있다고 할까, 명확하다고 할까,
어른처럼 또박또박하고 명확한 발음에
무심코 감탄해 버렸다.
그리고 하나의 가설을 세웠다.
이 녀석── [4월 생]인가!?
내가 전생했던 세계의 3분의 2가 그랬듯이,
이번 세계 역시 12개월제를 채용하고 있다.
한 해의 시작은 당연히 1월부터다.
하지만 이상하게 입학 같은 행사는
4월에 행해지는 것이었다.
이게 무슨 소리냐 하면,
[4월생이 같은 반 아이들 중에서
가장 빨리 생일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뭐야, 고작 그런 거였어─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우리들은 네 살이다.
아이들은 순식간에 성장하는 생물이다.
네 살 하고 10개월과 네 살 하고 2개월의 경우,
네 살 하고 10개월이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보다 더 성장했다─. 즉, 강하다는 것이다.
딱히 [아기가 마법적으로 최강 생물]이 아닌,
이 세계에서 다른 친구들보다 빨리 생일을
맞이한다는 것은 분명 유리하다고 볼 수 있다.
나는 한층 더 경계하며 그녀를 노려보았다.
이 정도로 발음이 명확하고, 나보다 키까지 크다니….
이 녀석은 위협적이다. 적으로 돌려선 안 된다.
나는 손가락을 깨물며 고민했다.
4월생. 몸집이 큰 여자아이.
어떡하지, 조금 무서운데. 뭐랄까, 눈매도 날카롭고,
화나게 해서는 안 될 존재인 것 같아….
외부 입학생 아이들은 보육 시설 아이들의
유대감을 보고 불안해졌을지도 모르지만,
우리도 외부 입학생이라는 미지의 존재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첫 충돌에서 얕보이지 않도록, 둘러싸 보았지만
이후에 어떻게 할지라는 구체적인 계획이 있던 것은 아니었던 데다,
여자아이의 몸집은 컸고 눈매는 매서웠다.
어떡해, 울고 싶어 졌어….
하지만 나는 벌써 네 살인 오빠다.
오빠는 울지 않는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 오빠란── 상냥하게 대하는 것이다.
나는 보육 시설에서 배운 마음가짐을 떠올리고 있었다.
[오빠니까, 동생들한테 상냥하게 대해줘야 돼.]
보육 시설에서는 인생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다양한 정보를 배울 수 있었다.
나의 인생은 보육 시설이나 다름없다고 말할 수 있다.
보육 시설. 보육 교사. 거기서 배운 것들은
유치원에 온 내 안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나는 4월생인 여자아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 렉스. 잘 부탁해."
여자는 순간 멍하니 바라보더니,
헝클어진 빨간 머리카락 속에 손을 집어넣고서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 쉴라!'
우리들은 손을 맞잡고, 붕붕 흔들었다.
그리고 다 같이 종이접기를 하며 놀았다.
선생님들은 우리를 웃는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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