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할머니가 왔다.
나는 기본적으로 타인에게 경계하는 편이지만,
특히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최대한으로 경계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 가혹한 세계에서
50년 이상을 살아온 강자이기 때문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내가 경험한 백만 번의 인생 속에서도,
[50년]이라는 시간을 살 수 있는 생물은 존재하지 않았다.
상당한 강운, 그리고 재주와 실력…….
그 외에도 이런저런 [이 세계에 존재하는 암묵적인 룰]을
지키는 신중함, 들이닥친 문제를 해결해 온 판단력….
열거하자면 끝이 없을 정도다.
그게 바로 [노인]이다.
노인들은 내가 무력한 세 살 배기 아이인 척 해도,
머지않아 나타날 [적]에 대항하기 위해,
이빨을 갈고닦고 있다는 것을 눈치챌지 모른다.
아니, 분명 이미 눈치챘겠지─.
그렇기에 노인들은 나를 세뇌하려 들것이다.
'렉스, 할머니랑 할아버지 오셨어─. 숨지 말고 얼른 나오렴.'
나는 거실 입구에 몸을 반쯤 숨긴 채,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그런 나를 싱글벙글 웃으며 보고 있다─.
마치,
[네놈은 이미 내 손바닥 안이다, 무의미한 짓 하지 마라.]
라고 말하는 것 같다.
'어머님, 죄송해요. 렉스가 쑥스러운가 봐요….'
'괜찮단다, 렉스 쨩─, 얼른 할머니의 무릎 위로 와요!'
역시 노련하다.
나는 할머니의 무릎이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차가운 곳에 앉거나 하면 아프다는 듯이 자주 문지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즉, 할머니의 약점은 무릎이다.
그런 약점을 대놓고 드러내며, 공격을 유도하고 있다.
이걸 노련미라 부르지 않으면, 뭐라 부르겠는가?
약점을 드러내고 유인함으로써, 내가 앞으로 나서도록 만들고 있다.
할머니에게는 [있다]는 것이다─.
내게 약점을 내주고도 남을 만큼의 [메리트]가!
다만, 나로서는 그 [메리트]가 무엇인지,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분명 속내가 있을 텐데, 그 속내를 읽을 수 없다.
……두렵다.
나를 무릎 위에 앉히는 게, 무슨 이득이 있을까?
모르겠다, 이제는 광기마저 느껴진다.
심. 지. 어!
이 세계에는 [무릎에 앉다], [무릎베개]라는 말이
존재하며, 관용적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실질적인 의미는 [무릎]이 아닌, 허벅지를 뜻한다!
무릎이 좋지 않은 할머니가 무릎에 앉으라 권유하다니,
이건 본인의 약점을 드러내는 행위다.
이제 알겠는가?
조금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는 얘기다.
실제로 할머니는 무릎을 드러내지 않았다.
정확히는 [무릎]이라 얘기했지만, 실질적으론 [허벅지]라는 것이다!
결국 그녀는 아무것도 잃는 것이 없다.
그러면서도 나를 곁으로 오게끔 만들어, 뭔지 모를 [메리트]를 얻으려 하고 있다.
어떻게 이렇게 교활할 수가! 소름이 돋는다.
마치 자신은 무해하다는 듯이 싱글벙글 웃었으면서,
그게 전부 계산된 행동이었다니.
[아무것도 내주지 않고, 무언가를 얻는다.]
할머니에게 있어, 이건 무척 손쉬운 일인 것이다.
게다가 마마가 '렉스, 얼른.' 이라며 나를 다그친다.
이제 나에겐 [도망친다.]라는 선택지조차 사라져 버렸다.
나는 할머니의 무릎을 향해 갈 수밖에 없다…….
정확히는 [무릎]이 아니라, [허벅지]지만….
대항할 수단은 없다….
후회해도 늦었다.
최소한 저항이라도 해보려, 슬금슬금 할머니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할머니의 허벅지에 앉았다.
'어이쿠, 렉스 쨩은 정말 쑥쑥 크는구나.'
할머니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후로도 할머니는 나를 만지작거리고, 안으며
내게 과자나 용돈을 계속해서 쥐어줬다….
나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이해가 가질 않아…
이렇게까지 해주는 이유가 뭐지?
도대체 무슨 메리트가 있는 거야…?
할머니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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