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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 소설/백만 번 전생한 나는, 평화로운 세상이라도 방심하지 않는다.

9화 세뇌당한 그녀

by Hellth 2022.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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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단련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두 발로 걸을 수 있게 된 후부터,
매일같이 몸을 단련하고 있다.

눈앞에는 영상을 비추는 마도 영상판 TV가 있고,
그 속에서 미친 듯이 춤을 추는 2차원 캐릭터들이 있었다.

그 미친듯한 영상은 계속해서 반복 재생되며,
나는 질릴 때까지 마도 영상판 속 캐릭터들과
같은 움직임을 따라 하고 있었다.

즐거운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는 법.

'렉스는 정말 그 춤을 좋아하는구나.'

'틀어만 주면, 계속 따라 춤을 추고 있고.
덕분에 그 틈을 노려 집안일을 할 수 있어 다행이야.'

부모님은 아직 뭘 모르고 있다─.
마치 내가 순수하게 흥미를 가지고,
춤을 추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춤이란 전신의 근육을 사용한다.
즉, 나는 전신의 근육을 단련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세계라 한들, 체력은 기본이다.
건강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과
다름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나는 건강을 위해 몸을 단련하고 있다.
나를 주변에 있는 [용왕님 체조]를 정말 좋아하는
아이들과 동급 취급하지 말았으면 한다.

연륜이 다르다고, 연륜이.

하지만 슬슬 질리기 시작했기에 마도 영상판의
스위치를 눌러 끈 뒤, 간식을 요구했다.

마마는 최근 들어 제과에 빠지셨다.

밀림 마마를 시작으로 나와 같은
보육 시설에 아이를 보내고 있는 부모들이
같은 요리학원을 다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보육 시설 사람들 말고도,
유치원 사람들도 다니고 있었다.

대부분이 보육 시설과 유치원에 아이를 맡기는
엄마들로 구성된 요리 교실에서 나는 안나 누나
극적인 재회를 맞이할 수 있었지만,
유치원생이 된 그녀는 완전히 성숙해져 있었고
항상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나를 안아 주지 않았다….

누나는 유치원에서 변했다.

이제 나에겐 밀림밖에 없는 것이다.

아마 누나가 나에게 차갑게 대하는 것은
내가 안나 누나의 이름을 까먹은 것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4살이나 먹은 어른이니,
그 정도는 어른의 아량으로 넘어가 주었으면 한다.

그나저나 간식은 아직인가?
마마, 간식을 요구하고 있는 건데요?

'오늘은 친구가 오지? 그러니까 그때 먹자.'

…친구?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친구라니!
나는 친구가 없다. 있어본 적도 없다.

물론 백만 번의 전생을 반복해온 나다.
소중한 사람은 있었지만,
친구라고 부를 정도의 가벼운 관계는 아니었다.
절대 배신하지 않을 거란 믿음이 있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그런 상대였던 것이다.

다만, 그런 소중한 사람들과는 잔혹한 세계 탓에

끔찍한 이별만을 맛봐 왔다….

그러니 이제 나는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다.
빼앗기는 것도, 배신당하는 것도 이제는 지긋지긋하다….

'밀림 쨩이랑, 안나 쨩이 온데.'

뭣!? 저, 정말!? 얏호──!

나는 무척이나 들떠버렸다.
기쁨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용왕님 체조]를 시작했다.

일일이 영상을 보며, 따라 추는 것은

내 움직임을 파악하기 위한 목적일 뿐.
실은 이미 전부 암기한 상태이다.
영상을 보지 않더라도 식은 죽 먹기다.

내가 춤을 추던 도중,
우리 집 도어벨이 [딸랑]하고 울렸다.

나는 현관을 향해 달려갔다.
내 전용 받침대도 잊지 않고 챙겨갔다.
받침대 없이는 손잡이에 손이 닿질 않는다.

문을 열자, 그곳에는 안나와 밀림이 있었고,
그 둘의 부모 역시 함께 서있었다.

나는 마마의 체면을 위해, 두 사람의 부모님께
인사를 드린 뒤, 가장 먼저 밀림에게로 달려갔다.

밀림은 새까만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아장아장 걸어와 나를 껴안았다.
나는 밀림을 꼭 끌어안고, 그 볼에 뽀뽀를 해줬다.
밀림은 꼬리를 흔들며 좋아했다.
무표정하지만 감정은 풍부한 후배인 것이다.

그렇게 후배와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와중에
누군가 내 등을 탁탁하고 때렸다.

아프잖아, 누구야!? 라고 생각하며 뒤를 돌아보니,
안나 누나가 내 등을 때리고 있었다.

'안나! 죄, 죄송합니다… 안나, 너, 렉스를
보고 싶어 했잖아? 왜 갑자기 때리고 그래!'

'나는 몰라!'

안나가 왠지 모르겠지만 화가 나있다.

화를 내고 싶은 건 나다.
왜 만나자마자 때리는 건데,
성인이었다면 정신과부터 가봐야 할 수준이라고.

하지만 나는 어느 가능성을 떠올렸다.

세뇌다─!

부모 곁, 보육 시설의 세뇌 교육은 무시무시했다.
[이 세계는 평화롭다.] [어른은 아이를 아낀다.]
[세계에는 적이 없으며, 너희들은 사랑받는다.]
심지어 나조차도 속아 넘어갈 수준이니,
다른 아이들은 오죽할까.

평범한 네 살짜리 아이인 안나는 분명
벌써 세뇌가 끝난 상태일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가벼운 세뇌 수준일지도 모른다.

그녀가 나에게 폭력적으로 나오는 것은
가벼운 세뇌에 걸린 그녀가 나에게 [도와달라.]
라고 도움을 청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의심하며 살아가야 하는 인생]을 살아온 나는
누구보다 빠르게 숨겨진 진실을 눈치챌 수 있다.

그렇게 진상을 파악한 나는
[세뇌당한 안나를 버린다.]가 아닌,
[세뇌당한 안나를 구한다.]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녀와 함께 보낸

일 년간의 시간을 잊을 수 없었다.

안나. 그 이름은 내 마음속 깊이 새겨져 버렸다.
분명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을 수 없는 여성의 이름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번 인생의 대부분을 그녀와 함께 보냈기 때문이다.

일 년. 내 반생을 함께한 상대를 걱정하는 마음은
[천수를 다하고 싶다.]라는 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독이 될 테지만, 나는 이 정을 버릴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흥! 하고 고개를 돌리는 안나를 껴안았다.

안나는 나를 떼어놓으려 했지만,
끝까지 끈질기게 달라붙는 나를 보고 결국 포기한 것 같다.

[화나지 않았어.]라고 나를 달래듯이 말했다.

정말? 진짜 화난 거였잖아. 나는 이번 일, 잊지 않을 거야.

어쨌든 10초 만에 화해를 끝마친

우리들은 집안에서 놀게 되었다.

[용왕님 체조]를 추고,
[스위트 성녀 카미큐어]를 감상하며 놀았다.

하여튼 애들 상대는 정말 힘들다니까.

나는 [용왕님 체조]를 추며, 허망하게 웃었다.

참고로 부모님들이 만든 과자는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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