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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 소설/백만 번 전생한 나는, 평화로운 세상이라도 방심하지 않는다.

6화 새로운 만남

by Hellth 2022.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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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잎들이 파릇파릇하게 피어날 무렵,
안나는 유치원으로 갔고,

우리 보육 시설에는 새로운 아이들이 들어오게 되었다.

보육 시설 졸업식에서 안나는 울상을 지으면서도,
훌륭하게 졸업식 대표 인사를 끝마쳤다.

나는 울고 말았다.
안나가 말하는 도중에 서럽게 울고 말았다.

마지막에는 결국 안나도 울었다.
덩달아 다른 아이들도 울고 말았다.
이렇게 모두가 우는 졸업식은 백만 번의
인생을 살아오면서 처음 겪는 일이었다.

인정한다.

그 순간만큼은 나는 [적]의 존재를 잊을 수 있었다.

[적]이란 무엇인가?

그 정체는 알 수 없다.
어쨌든 적들은 그림자조차 드러내지 않으며, 정체를 숨기고 있다.
하지만 [적]은 분명히 존재한다.

어찌 됐든 간에 지금까지의 인생은 너무나도 평화롭다.
평화에 찌들어 싸울 기력을 상실한 나를 노리기 위해,
적은 지금도 기회를 엿보고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의 백만 번 인생에서
불우하지 않았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고,
얻은 것을 빼앗기지 않은 인생 역시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번 인생은 너무나 수수하고 평화로웠기에,
[정말 평화로운 세상인가?]라고 믿어버릴 정도지만,
절대 그럴 일은 없다.
백만 번을 전생하며 한 번도 평화로웠던 적이 없었는데,
백만 한 번째는 평화롭다니, 확률적으로도 불가능한 수준이다.

그렇기에 나는 보육 시설에 새로 온 아이들을 경계했다.

나는 어떻게든 아슬아슬하게 세뇌되지 않고, 자아를 유지하고 있지만,

부모나 어른에게 세뇌당한 녀석들이 들어와,

내부부터 평화를 교란시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보육 시설에서는 그 해에 졸업을 앞둔 친구들(즉, 3살 ~ 4살.)이

한 살 이하의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통례다.

그렇기에 2살은 비교적 자유롭게 동기들과 지낼 수 있게 된다.

나도 드디어 2살이 되어 말도 어느 정도 할 수 있게 되었고, 걸음마도 땐 상태다.
그렇기에 동기 중에서 신뢰할 수 있을만한 사람들을 찾아야만 한다.

마 군 같은 녀석을 눈독 들이고 있는데, 이 녀석은 분명 장차 큰 인물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내 예상을 깨버리듯, 보육 교사가 나에게 의뢰를 해왔다.

'렉스 군, 밀림 쨩을 돌봐주지 않을래?'

"우!(알겠다는 의미.)"

……핫! 세뇌당하고 말았다!

보육 교사의 말에는 기본적으로 따라야 한다는
틀에 박힌 규율에 순응해 버리고 말았다.

나는 나 자신을 부끄러워했다.
경계했으면서도 결과가 이거다.
역시 이번 세계는 만만치 않다.

하지만 이제 와서 [역시 안 할래.] 라고
하는 것도 여러모로 좋지 않다.

보육 시설에서 지내는 아이들은 보육 교사에게
순종하기에, 나만 반항적으로 나갔다가는 교사들의 눈에 찍혀,

앞으로 살아가며 어떤 방해를 받을지 모른다.

지금은 따라주지.
나는 어리석은 두 살짜리 꼬마를 연기하기로 했다.

'고마워, 올해는 새로운 친구들이 많아서 말이야….
렉스 군한테는 조금 이르지만,
형이랑 누나들과 함께 아기들을 돌봐줬으면 해.
잘 부탁해. 아참, 지켜봐 주기만 하면 된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좋다.
훌륭하게 기대에 부응해 보여주지.
나는 당신의 순종적인 종이니까.
지금은 말이지…….

나는 비꼬는 투로 말하며, 비웃고 싶었지만,
아직 두 단어를 이어 말하는 것이 한계다.
그렇기에 나는 긍정의 뜻을 담아 방긋하고 웃었다.
머리를 쓰다듬어 줘서 기뻤다.

이리하여 내가 밀림을 돌보게 되었지만,
마치 짐승과도 같은 인종이었다.

이번 세계에는 여러 인종들이 살고 있다.
과거에는 서로 같은 인종끼리 모여 살았지만, 최근 들어 세계화가 진행되며,

모든 지역에 다양한 인종이 분포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수인이란 바다 건너 머나먼 곳에 있는 종으로,
아무리 세계화가 진행되었다지만, 이 근처에서는 보기 드문 인종이었다.

나는 아직 붙잡고 일어서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그 녀석의 눈을 빤히 쳐다보았다.

검은 눈동자가 가만히 나를 응시했고,
머리 위에 난 검은 털에 둘러싸인 귀가 움찔거리며,
허리 뒤쪽에 달린 꼬리가 살랑살랑 좌우로 흔들렸다.

그 광경에 나는 학술적 흥미를 억제하지 못하고, 그 아이의 꼬리를 붙잡고 말았다.
하지만 꼬리를 붙잡아도 그 녀석은 멍하니 나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꼬리를 붙잡혔는데, 빼내질 않는다니. 꽤나 배짱이 있는 녀석이다.

나는 그 녀석의 겨드랑이 밑에 손을 넣고 들어,
가까이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신경이 쓰여, 무심코 볼을 빨아버리고 말았다.
이 녀석… 매끈매끈하고 부드럽잖아.

'밀림 쨩, 얌전하지? 잘 챙겨줘.
모르는 게 있으면 바로 선생님을 불러야 한다?'

나는 있는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해서 나에게 밀림이라는 후배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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