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슈우.'
재채기가 아니다.
내 이름을 부른 것이다.
밀림을 데리러 온 밀림의 부모들에게 들었는데,
밀림은 [파파]나 [마마]보다 먼저 내 이름을 말했다는 것 같다.
우리 부모님과 밀림의 부모님이 우리를 사시에 두고,
대화를 나누고 있다.
'우리 밀림은 워낙 얌전해서, 기는 것도, 말하는 것도 다른 아이들보다 많이 느렸거든요.
그래서 불안했었는데 렉스 군 덕분에 드디어 말을…….'
밀림의 파파의 발언에 나는 성취감과 감동을 느꼈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잖아.
밀림은 이미 내 여동생이나 다름없는데.
나를 발견하면 허리에 달린 검은 꼬리를
살랑하고 한 번 흔들고,
감정이 얼굴에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귀와 꼬리를 보면 어느 정도 감정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밀림은 이미 내 가족이나 다름없다.
밥을 먹을 때도 내가 시중을 들어주고 있다.
그런 밀림이 처음 내뱉은 말이 [렉스]라니,
나조차도 발음하기 힘든 이름을 골라 말해주다니,
더할 나위 없는 감동이었다.
마음을 굳게 먹고 있었는데─
두 살배기 아이의 몸에 영향을 받은 나는
이 기쁨을 참을 수 없었다.
부모님 발치에서 나와 밀림은 서로 껴안고 있었다.
나는 안으려 했지만, 나나 밀림이나 크게 성장하지 않았기에,
내가 밀림을 무릎 위에 올려두고 껴안은 상태가 되고 말았다.
후배의 부모들의 눈앞에서 격렬한 포옹이라니,
뭔가 배덕적인 기분마저 들었다.
끌어안은 밀림이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화장실이다.
나는 재빠르게 밀림을 바닥에 눕히고 지정된 곳에 가, 기저귀를 들고 왔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척척 기저귀를 교환했다.
그 모습을 본 보육 교사들이 다가왔다.
다가오지 마, 밀림은 내 거야.
'렉스 군, 정말 고마워.'
밀림의 마마가 말했다.
나는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직은 나도 말하는 게 어설퍼, 그냥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렉스 군은 착실하네요….
두 살이면 보통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 건가요?'
'우리 아이가 천재라서 그렇죠.'
옆에서 파파가 '잠깐잠깐.' 이라 말하며,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고 있다.
마마의 발언에 부끄러워지고 말았다.
천재. 백만 번의 인생을 경험하며,
나를 지칭하는 표현으로서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마마에게 들으면 빈정거림이 아닌, 진실처럼 들렸기에 무척 신기했다.
나는 자랑스럽게 밀림의 더러워진 기저귀를 내밀었다.
이건 내 트로피나 다름없다.
하지만 보육 교사가 수거해 가고 말았다.
트로피는 빼앗겼고, 적절한 절차에 따라 처분될 것이다.
아쉽다… 아, 아니 아깝지 않다.
어차피 금방 또 생길 테니까.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칭찬을 받으면,
역시 자신감이 생기고 만다.
나는 이대로 보육 교사를 목표로 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마법 훈련을 하지 않았다…!
태어나서 격동의 2년이었다.
생후 몇 개월은 부모님의 감시 하에서 자랐고,
한 살이 된 이후에는 보육 교사와…
어라…? 이름이… 떠오르질 않아!?
어째서!? 그렇게나 잘 따랐던
누나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니─!
그렇다, 누나가 졸업한지도 벌써 반년이 지나 있었다.
두 살짜리 아이의 뇌에는 반년이라는 시간은 너무 길었던 것이다….
누나는 아름다운 추억만을 남기고,
이미 과거의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어쨌든 간에 나는 누나에게 관리되고 있었다.
그리고 두 살이 되어서는 밀림을 돌봐줘야 했다.
물론 집에 돌아오면 여전히 부모님들이 나를 감시했고,
나는 숨어서 마법 연습을 할 기회를 완전히 놓치고 말았다.
이대로면 위험하다.
[아기를 VIP 취급해 주는 것은 아기가 마법적으로
최강이며, 나이를 먹을수록 위력이 감소한다.] 라는
내 가설이 맞다면,
나는 이미 절정기를 2년이나 허투루 보낸 게 된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아등바등 살았더니, 어느새 이미 늙어버리고 만 것인가!
내 몸을 내려다보았다.
이제는 안정적으로 달릴 수 있고
발음도 꽤나 또렷해졌으며, 아기까지 돌볼 수 있다.
그런데 정작 내 마법의 위력은 떨어지고 있다고!?
아니, 애초에 [아기는 마법적으로 최강인 생물.] 이라는
가설을 맞는지 확인조차 하지 못 했다.
세뇌당했다.
[평화로운 일상]이라는 겉면에 속고 말았다.
그 내면은 추하고 악의로 가득 찬 세계가 있기 마련인데,
그에 맞설 준비를 하지 않고, 나태하게 지내고 말았다.
[적]은 위기감 없이 사는 멍청한 두 살배기
꼬마를 보고 싱글벙글 비웃고 있을 것이다.
교사들의 따스한 눈빛이 그것이 사실임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나는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두 살배기 아이.
지금까지 평범한 두 살배기 아이를 연기해온 덕에
적도 분명 나를 평범한 두 살배기 아이로 여길 것이다.
천수를 누리기 위해서,
지금부터라도 준비를 게을리 해선 안 된다.
불우하고 서투르며, 운도 없는 내가 평범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니까….
나는 드디어 본격적으로 마법을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렉슈우.'
하지만 그전에 밀림이 배가 고프다고 하니,
우선 밥부터 먹인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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