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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 소설/백만 번 전생한 나는, 평화로운 세상이라도 방심하지 않는다.

12화 내년 이야기

by Hellth 2022.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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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네 살이 되던 해의 끝자락에
우리 집에 온 안나가 싱글벙글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렉스 군도 내년이면 안나랑 같은 [유치원]이네!'

나는 장난감 자동차를 만지작거리던 손을 멈추고, 정신을 차렸다.

그렇다, 내가 유치원에 들어갈 때까지, 이제 반년도 남지 않았다─.
또다시 의미 없게 시간을 낭비해 버리고 말았다.

아니, 완전히 의미 없는 시간은 아니었다.
보육 시설 생활이 그만큼 충실했다는 소리니까.

두 살이 된 밀림은 이미 진작에 내 손에서 벗어났지만,
아직도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고 있다.
아장아장 걷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내 마음은 충족감으로 가득 차,

영원히 밀림을 놓아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이별은 힘들다…….

최근 들어 안나와 밀림은 무척 빈번하게 우리 집에 놀로 오고 있다.
심지어 지금도 같은 방에서 셋이서 놀고 있다.
하지만 이제 보육 시설에서 밀림을 만날 수 없게 된다고 생각하니, 무척 쓸쓸해졌다.

하지만 유치원에는 안나가 있다.

뭐, 연령적으로 내가 입학할 무렵에는 이미 그녀가 졸업한 뒤겠지만….

연상에 의지할 수 있는 여성인 그녀는 유치원에서 있었던

여러 가지 일들을 집요할 정도로 내게 알려주었다.

아까부터 나는 전혀 흥미가 없다는 얼굴로 듣고 있었는데 (실제로도 전혀 흥미가 없다.),
안나는 상관없다는 듯 계속해서 유치원에서 있었던 이런저런 일들을 알려주었다.

이건 분명 충고일 테지.

유치원에 다닐 나이가 되면, 드디어 [악의를 가진 세계]

나에게 진심으로 마수를 뻗어올 가능성이 높다.

세계는 괴롭고 고통스러운 곳이다. 예외는 없다.
백만 번의 전생을 경험했기에 알 수 있다.
상냥한 세계 따윈 없으며, 평화로운 세계는 더더욱 없다.

그렇기에 이 세계도 괴롭고 고통스러운 곳임이 틀림없으며. [적]도 반드시 존재한다.
……분명 그럴 텐데, 이번 세계는 [평화]라는 얄팍한 가면을 쓴 채,

견고하게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있으며, 그 추하디 추한 본모습을 전혀 드러내지 않고 있다.

아마 이번 세계는 다수가 [평화]를 만들기 위한, 초석이 되고 있을 것이다.

마마도 파파도 할아버지, 할머니도 악의를 갖고, 내가 방심하도록  VIP대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세계가 행하고 있는 세뇌교육의 결과로써, 이 세계가 정말로 평화롭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아이에게는 상냥하게.
사람에게는 친절하게.
모두 다 사이좋게.

멋진 일이다.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평화다.

모두가 그것을 미덕으로 여겨야 한다는 교육을 받고,
타인에게도 친절하고 상냥하게 애정을 갖고 대한다.

전부 세뇌되어 있는 탓에──!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세뇌되었다고 해도, 모두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어쨌든 그건 좋은 일 아니야?

……어라?

네 살짜리 뇌에는 조금 어려웠던 것 같다.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한때 나는 [생각하는 기관.]밖에 없는 정보 생명체였던 적이 있었다.
그때 당시의 육체라면 어떠한 해답을 낼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육체로는 이 이상의 사고는 무리인 것 같다.

어쨌든 안나는 무작정 생각나는 대로 얘기를 이어나감으로써 ,

유치원에서 이뤄지는 보다 엄격한 세뇌교육에 대한 것을 내게 충고해 주고 있는 것이다.

역시 다섯 살 누나는 수준이 다르다.

나는 그 정보에 흥미를 가지지 못한 채, 흘려듣고 있지만
(아마도 보육 시설의 세뇌 교육으로 중요한 정보에는
흥미를 갖지 못하도록 설계되어 있는 걸 거다.)
안나가 말해주는 정보는 귀중한 것이다.
나중에 한가할 때,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하지만 지금 나는 바쁘다….
매일매일 고민해야 할 것이 있다.

그건 물론 [마법]에 관해서다.
초등 학과에서 배운다는 마법….
그것은 대체 어떤 것일까, 어떠한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장난감 자동차를 서로 부딪히거나 싸우게 해야 하기에
매일매일이 무척 바쁘다.

부웅─. 부웅─. 끼기익─! 콰아앙─! 트럭 전생!

몇 명 정도를 트럭으로 전생시킨 트럭 운전사의 인생을 망가트린 뒤,

갑자기 흥미가 떨어진 나는 그 자리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내가 누우면 우선 밀림이 내 옆에 누웠고,
반대편에는 안나가 누웠다.

미녀들 사이에 껴있던 나는 마법에 관련된 일,
유치원에 관한 일, 이번 세계에선 어떻게 해야
천수를 다할 수 있는지… 그런 고민을 해보려 했다.

그런데 내 머릿속은 금세 장난감 자동차로 가득 차 버렸다.
소방차… 새빨갛고 커다란 차다. 크고 빨갛다. 즉, 멋지다.
갖고 싶지만 파파도 마마도 사주질 않는다.
왜냐하면 지난주에도 새 장난감 자동차를 사줬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할머니한테 졸라볼까…….

우리들은 다 같이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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