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 통지서가 도착한 것은 봄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신티아도 합격,
예상외라고까지는 얘기하지 않겠지만,
리리스도 무사히 합격했다.
조금 놀란 것은 내가 철저하게 짓밟은 주인공,
알렌 또한 합격했다는 소식을 제비스로부터
전해 들었다.
세계의 억제력인지, 아니면 누군가 뛰어난
재능을 꿰뚫어 본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까지도 결정하지 못한 상태다.
주인공과 친해질 것인지, 아니면──
철저하게 짓밟을 것인지.
자신이 강자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일까,
성악설을 주장한 위인이 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이해할 수 있다.
뭐, 될 대로 되겠지.
노블레스 학원은 저택에서 통학할 수도 있으나,
다방면으로 고려해 본 결과, 기숙사에 들어가기로 했다.
아버님은 외로워했지만, 어차피 맨날 외교 때문에
집에 없잖아!라고 말하자 눈물을 흘리셨다.
일과 나, 어느 쪽이 더 중요한지를 고르라 하면,
곤란하게 만들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등교 첫날, 순백의 하오리에 어깨에는 노블레스 학원을
상징하는 모양이, 금으로 자수가 놓여 있다.
바지는 검은색, 구두는 가죽 구두 같지만,
신축성이 있어 생각보다 사용감이 좋다.
여성은 당연히 치마로, 신티아와 리리스의 아름다운
몸대가 보다 더 강조되고 있다.
그리고 허벅지는 새하얗다.
다만──.
"이 마차에 셋이 타는 건 조금 무리지 않을까?"
"좁은 편이 좋습니다!"
"어머나, 바이스. 대화를 나누기에도 편하잖아요."
평소 쓰던 마차는 아버님이 사용하고 있기에,
작은 것 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다.
기다렸으면 더 큰 것도 빌릴 수 있었건만,
이게 좋다는 의견에 묵살당해 버렸다.
그리고 두 사람도 기숙사에 입주하기로 한 모양이다.
리리스는 메이드였기에, 별 문제가 없었지만,
신티아는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나섰다.
결정적인 이유는 내가 기숙사에 살기로 했기 때문이다.
드디어 출발선에 섰다.
여기서부터가 진짜,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리리스, 그 반지는 어디서 난 건가요?"
"제비스 씨가 주신 거예요!
리미야의 특산품이라는 것 같습니다!"
뭐, 그래도 두 사람을 보고 있자니,
평온한 기분이 들지만.
도착해, 마차에서 내리자, 다시금 커다란 철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쩐지 좀 그립네.
대문을 들어서자, 광활한 노블레스 학원
교정에 눈에 들어온다.
상급생들도 보이나, 이제는 적이다.
나는 새로운 목표를 세우기로 했다.
목표란, 학원 내의 톱이 되는 것.
더러운 수는 쓰지 않는다.
오로지 정면승부, 철저하게 때려눕힐 것이다.
교실로 들어서자, 이미 같은 학년의
신입생들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시선이 날아오는 건 내가 바이스라서일까,
아니면 양손에 들린 꽃 때문일까.
일일이 스테이터스를 확인하는 것도 번거롭기에,
밀크 선생님이 하시는 것처럼 마력을 눈에 모았다.
지루하다는 듯이 발목을 잡고 있는 장발의 남자,
몸집이 큰 단발 남자, 키가 작은 여자, 훈남풍의
금발 인싸남, 전부 상당한 마력의 소유자들이다.
뭐, 수준 높은 학교에 입학할 수 있을 정도니,
이 정도는 당연하려나.
놀랍게도 절반 이상이 모르는 얼굴이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가 연관이 있는 것은
틀림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해야 할 일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그전에 몇 명이나 살아남을지 모르겠지만.
"너는… 바이스, 맞지! 역시 합격했구나."
돌아보니, 어느새 뒤에 있던 알렌이
환한 미소와 함께 인사를 건네왔다.
그 옆에선 셜리가 오도 가도 못하고 있다.
나와의 모의전을 보고 있었기에,
불안한 것이겠지.
남들이 보기엔 과했던 모양이니까.
"뭐, 그렇지. 너도 합격했구나."
"그렇다니까! 그렇게 진탕 깨졌는데….
그래도 다행이다. 바이스랑 다시 만나고 싶었거든.
아니, 싸우고 싶다가… 본심이려나."
수줍은 얼굴, 뺨을 긁적이는 오른손,
투쟁심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선한 얼굴임에도,
어째서인지 짜증이 난다.
"바이스 님, 바람이 시원하니,
창가 쪽에 앉는 게 어떠신가요?"
"그러자."
"날씨가 좋네요."
우선 대화를 끝내고, 리리스와 신티아에게
끌려가듯 자리에 앉았다.
긴장, 불안, 기대의 감정이 뒤섞여,
심장이 기분 좋은 고동 소리를 낸다.
"바이스 판센트 군, 리리스 스칼렛 양,
신티아 비올렛 양."
뾰로통해 있는 내 모습이 귀엽다며 신티아가
손가락으로 쿡쿡 찔러대고 있던 때,
어떤 남성이 내 앞에 나타났다.
눈부신 금발, 청량한 목소리, 인싸 같은 외모,
아…, 뭐였더라.
생각났다, 루이──.
"나는 미센트 가문의 루이라고 해.
너희들이 시험을 치르는 모습을 봤는데… 굉장하더라.
특히 바이스 군은 역대 최고 성적이라 들었어."
맞아, 그런 이름이었지.
분명 원작에서도 등장하는 상큼한 인싸 캐릭이다.
미센트 가문은 대대로 땅속성 마법에 특화되어 있다.
친하게 진해서 손해 볼 건 없으나,
딱히 원작에서도 좋아하는 캐릭터는 아니었다.
어떻게 답변할까 싶었지만,
그래도 무난하게 잘 부탁한다로 갈까.
라고 생각하던 찰나, 신티아가──.
"바이스는 지금 그럴 겨를이 없으니,
혼자서 닥치고 천장이라도 보고 있어주지 않을래?"
잘은 모르겠지만 엄청난 발언을 했다.
볼을 찔리는 게 그 정도의 일인가?
아니,
자세히 보자 리리스도 매서운 눈빛을 보내고 있다.
작위를 가지지 않았기에 얌전히 있는 거겠지만,
살기를 숨길 생각은 없어 보인다.
"아, 미안해. 루이 군, 다음에 기회가 되면 얘기하자."
"하, 하하하, 하하핫, 방해해서, 죄, 죄송합니다!"
반쯤 울먹이며 떠나가는 루이 군, 미안해.
그래도 첫날이니 용서해 줘.
이후, 내 부드러운 귓불이 기분 좋다며,
신티아가 말하고 있는 와중에, 종이 울렸다.
그리고 문이 열린다.
놀랍게도 내가 예상했던 선생님이 아니었다.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녀가 선생이라면
오늘 당장이라도 알렌이 사라질지 모른다.
안경을 썼고, 키가 큰 누님.
비단 같은 보랏빛 머리칼이 휘날린다.
옷은 몸매가 강조되는 정장처럼 보이나,
이 시대에는 없으니 특별 주문품일까.
"우선 입학 축하드립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 반을 담당하게 된 클로에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억양이 느껴지지 않으며,
질문은 받지 않겠다는 듯한 빠른 말투가
그녀의 특징 중 하나이다.
원작에서는 분명 다른 반의 담당이었는데,
어떤 의미로는 잘된 일이라 볼 수 있겠다.
그리고는 칠판에 숫자를 쓰기 시작했다.
──1,000.
학생들 사이에 소란이 일자,
클로에가 앞을 향해 손을 내밀고는,
손가락을 따악 하고 울렸다.
그러자, 우리들 전원의 손등이 빛나기 시작했다.
튀어나온 숫자는 칠판에 적혀 있는 것과 동일했다.
──나를 제외하고.
"1,000, 이것이 당신들에게 지급된 포인트입니다.
다만 바이스 판센트, 당신만은 시험 결과를 감안해,
2,000입니다. 이건 학원에서 보내오는 기대치와도
같습니다."
시작부터 눈에 띄어버렸는데, 뭐 괜찮겠지.
이 정도의 견제는 필요할지 모른다.
학원물은 지루하다.
그게 내가 가진 원래 세계의 상식이다.
폐쇄된 공간에서 할 일이 한정된다던가,
세계관이 작아지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큰 인기를 끌 수 있던 건 이 시스템 덕분이다.
또한 바이스 판센트가 어째서 극악인으로 불렸는지,
그것은 이 포인트 시스템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슨 소리죠?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만."
"포인트가 뭐지? 성적 같은 건가?"
당연히 이해하지 못한 학생들 사이에서 소란이 일었다.
나 이외엔 자세히 아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학원 내의 규약은 은닉,
결코 누설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신티아와 리리스조차도 모른다.
그저 나와 함께 훈련에 매진한 덕분에,
이런 일로는 당황하지 않을 뿐이다.
"이건 그저 잣대에 불과합니다.
다만, 학원을 졸업할 때까지 따라다니는 것이죠."
"선생님, 결론부터 부탁드립니다."
"그렇네, 이해를 못 하겠어."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클로에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끼어들기.
학생들은 대부분 귀족, 악역이라고까지 하지는
않겠지만 질이 나쁜 놈들이 많다.
그리고 클로에가 안경테를 만졌다.
이건 그녀가 화가 났다는 신호다.
모두가 제 목을 조르고 있다 생각했지만,
뭐, 그건 그거대로 재밌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정중하게 말로 설명할 예정이었으나,
그렇게까지 말하니 바로 실전으로 넘어가죠."
그 한 마디에, 수많은 학생들이 쾌재를 불렀다.
"그 편이 좋지, 까다로운 건 딱 질색이거든."
"그러게, 알기 쉬워서 좋네."
"포인트 계산이라니 귀찮잖아."
그렇게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것도 지금뿐이다.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되면 경악하게 될 텐데.
"방금 전, 입학을 축하한다 했습니다만,
딱 그뿐입니다. ──졸업할 때까지 돌봐준다고는
하지 않았어요."
그 순간, 모두 입을 다물었다.
클로에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이어 말한다.
"포인트가 0이 된 시 점에서, 퇴학입니다.
그렇네요, 오늘 시험은… 누구 한 사람의 포인트가
0이 될 때까지 치르도록 할까요."
바이스는 원래부터 악역이었다, 하지만 악명을
떨친 이유가── 바로 이 포인트를 지키기 위해,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다녔기 때문이다.
'웹 소설 > 나태한 악욕귀족으로 전생한 나, 시나리오를 부숴버렸더니 규격 외의 마력으'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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