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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 소설/백만 번 전생한 나는, 평화로운 세상이라도 방심하지 않는다.

22화 떠나가는 그녀

by Hellth 2022.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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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학과 과정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렸고,
그간의 모든 생활은 내 마음속 깊이 새겨져 있었다.

알고 있다.
이것도 분명 세뇌의 영향이겠지.

왜냐하면 추억은 아름답고, 즐거웠다.
세계에는 아무런 위험이 없고, 분명 미래는 밝으며,

지금처럼 소란스럽고 즐거운 삶이 지속될 것이라 생각했을 정도다.

방심하고 있었다.
비극은 그 틈을 노려 찾아온다.

비극은 무엇에서 비롯되는가?

구체적인 것은 모른다.
하지만, 비극이란 언제나 절친한 친구와 같은 얼굴로 다가왔고,
태어날 때부터 함께해 온 소꿉친구처럼 다정하게 어깨를 감싸진 채,

달콤한 목소리로 [너의 행복은 환상이었어.] 라며,
내 마음에 지워지지 않는 깊은 상처를 입혔다.

그렇기에 갑자기 쉴라가 나를 불러냈을 때는 경계했다.

이미 나 역시 초등 학과 6학년 과정을 마무리 짓고 있는 12살이다.

살을 에는 추위 속에, 휴대폰이라는 물건이 있고,

서로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는데,

편지라는 고풍스러운 수단으로 나더러 혼자서만

인기척이 없는 곳으로 오라는 엄명이 담긴 내용의 호출이었다.

경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쉴라, 악연으로 얽힌 빨간 머리 여자애.

생각해보면 녀석과는 유치원 시절부터 알고 지내온 사이다.

보육 시설에서 함께 한 안나나 밀림보다 교제한 시간은 짧지만,
동급생이기에 단순히 함께한 시간으로만 따지자면,
누구보다도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상대다.

게다가 초등 학과에서는 2년마다,
즉, 총 2번의 반배정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나와 같은 반이 되었다.

게다가 대화도 꽤 많이 하는 편이다.
쉴라는 언제나 나와 경쟁하려 들었다.

[눈에 띄지 않는다.] 라는 신념을 가지고 사는 나를 교묘하게 선동하고,

눈에 띄게 만들어버린 강적이다.
사실 아직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이 세계에 반드시 존재하는 적.]

첨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나는 그 쉴라로부터의 호출에 대해,
여러모로 예상을 해보았다.

그리고 다양한 대책을 세웠다.

혼자서 오라고 했기에, 동료를 데리고 간다던가.
약속 지정 시각보다 이른 시간에 도착해, 상황을 살핀다던가.

다양한 경우의 수를 상정하며 대책을 세웠다.

그리고 너무 고민한 나머지,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약속 시간이 된 뒤였다.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코트를 손에 쥔 채 집을 나섰다.

엄마에게는 저녁을 먹기 전까지는 돌아오겠다 외치며,
잠 기운을 내쫓기 위해, 뺨을 때리며 달렸다.

약속 장소는 근처에 두 개 있는 놀이터 중 한 곳인데,
놀이터라고는 하지만,
미끄럼틀 한 대 밖에 없는 공원이라 그런지,
항상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곳이다.

석양 속에서 쉴라는 미끄럼틀에 등을 기댄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쉴라는 버릇인 바깥쪽으로 뻗은 빨간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어색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뭐야, 4월생" 하고 나는 물었다.

쉴라가 웃으며, 예상치 못한 얘기를 꺼냈다.

'이, 있잖아…. 나, 이사해.'

이사.
그것만으로 무슨 의미인지 깨달았다.

내가 지내는 학교는 기본적으로
에스컬레이터식으로 진학한다.

즉, 내가 그랬듯, 나와 함께 초등 학과 과정을
밝고 있던 사람은 같은 학교의 중등 학과로 진학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이사를 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나와 같은 중등 학과로 진학하지 않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깜짝 놀랐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너무나 큰 충격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게 내가 생활하는 곳에는 항상 쉴라가 있었다.
끈질기게 붙어 다니고, 시끄럽고, 당해되는 빨간 머리 여자애.
키가 크지만, 내가 점차 따라잡기 시작해,
중등 학과에 입학하면 앞지를 예정이었던 소꿉친구.

그녀는 반드시 내 곁에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녀가 사라진다.

속 시원하네─.
평소라면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지금도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조금도 그런 기분이 들지 않았다.
나는 충격에 빠져 멍하니 그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그….'

쉴라는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그게 있지….] 라고만 반복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지막에는 힘없이 웃으며,

'안녕…, 또 보자, 렉스.'

라고 말했다.

내가 뭐라 대답했는지, 모르겠다.

크게 동요하고 있었다.
안녕이라고 답해준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고,
아무 말도 안 한 것 같기도 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집으로 돌아와,
방 안에 틀어박혀 저녁도 먹지 않은 채,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고 있었다.

늦은 시각까지 계속되어,
내 약한 육체가 수면욕을 견디지 못하게 되었을 무렵,
쉴라에게서 한 통의 문자를 보냈다.

[방학이 되면 놀러 갈게.]

어째서 그런 문자를 보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 내 몸과 정신이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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