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잘못된 세계에 반역하는 전사다.
카리나는 나보다 1학년 위인 14살로,
최근에 [사명]에 대해 깨달았다고 한다.
[사명]을 깨달은 뒤,
카리나는 지금까지의 교우 관계가 성가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나처럼 옥상에서 먼 풍경을 바라보는 일이 잦아졌다고 한다.
공감한다.
세계는 보잘것없는 거짓말들로 뒤덮여 있으며,
그 누구도 속에 있는 기분 나쁜 [무언가]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딱히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친구들은 바보다.
공부, 운동, 그리고 연애….
그야 뭐, 눈부시고 즐거운 청춘이겠지.
노력하면 성과가 나오고, 칭찬을 들으며,
그에 걸맞은 평가를 받는다.
아니, 도중에 포기라는 선택지를 언제든지
할 수 있다는 것 또한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세계의 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내 싸움은 그렇게 쉽게 결과를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싸우고 있는 [적]은 훨씬 더 애매하고,
저항이 성공적인 것처럼 보여도, 실패인 적이 있거나,
실패인 것처럼 보여도, 성공적인 경우가 있곤 한다.
애당초 어느 시점에 무엇이 [실패]이며,
[성공]인지를 구분할 수조차 없다.
'우리가 싸우는 상대는 애매모호하고, 막강해.
그리고 세상은 우리들의 싸움을 이해하려 하지 않아.
하지만, 나…. 아니, 우리들은 알고 있어.
[적]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를, 세계를 겨냥하고 있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다.
나는 점심시간이 될 때마다, 카리나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친구들은 [진실]에 눈을 돌리는 어리석은 녀석들뿐이다.
안나나, 밀림도 내 고민은 몰라줄 것이다.
하지만, 카리나만은 나와 같은 고민을 안고 있으며,
나와 같은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자주 모여, 적과의 싸움에 대해 논했다.
다양한 대책들을 마련했다.
대책은 대부분 [신화 속 악마를 불러낸다]라는
[막강을 힘을 가졌지만, 이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알려진 자에게 힘을 빌린다]라는 방식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세간에선 이 대책이 비웃음거리가 될 것이며,
악마니, 신이니 하는 존재가 실존할 리 없다며,
우리들을 조롱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백만 번을 전생한 13살.
믿기지 않는 위협과 맞닥뜨린 적은 수없이 많았고,
그렇기에 악마나 신의 존재 역시 있을 거라 믿고 있다.
우리는 계속해서 싸워나갔다.
카리나가 곁에 없을 때는 평범한 척을 하며,
세상 속에 스며들어 지냈다.
다만, 카리나와 만났을 때는 [적]에 대한 대책을 논의했고,
몇 번인가 실제로 [신]을 부르는 의식을 치르기도 했었다.
물론 성공하지는 못 했지만,
[할 수 없는 것]을 하나하나 증명해 나가는 것은
이 세계에 전생해 처음으로 [적]과 싸우고 있다는 실감이 났다.
'우리들은 전생에서의 인연이 있어.'
카리나는 종종 이렇게 말했다.
전생에서의 인연이라니, 어떤 건지 모르겠다.
백만 번이나 전생했으니, 접한 사람들은 무수히 많았고,
카리나 역시 자신의 정체를 모호하게밖에 말하지 않았기에 파악할 수가 없었다.
다만, 카리나의 말투로 봐선,
아무래도 그녀는 나의 인도자 역할을 했던 것 같다.
인도자…. 즉, 적이다.
스승들이란 놈들에게는 빈번히 배신당해 왔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 보호해준 사람은 없다.
반드시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것도 나의 생명과 인생을 짓밟는 끔찍한 이유가.
'나는 너에게 [답례]를 해야만 해.
그래…, [그때]의 답례를 말이야.'
대체 언제를 말하는 걸까….
집히는 게, 너무 많아 특정할 수가 없다.
카리나는 때때로 노인이었다거나, 아이였다거나,
영애였다거나, 빈민이었다거나,
혹은 생명체조차 아닌 개념이었다고 얘기했다.
이건 분명 나를 현혹시키려고 일부러 정보를 흘리는 것이겠지.
그런 그녀에게서 전생의 정체를 알아내는 것은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과거에 집착해, 현생에서 모처럼 얻은 [동지]를
잃을 만큼 나는 어리석지 않다.
그렇게 중등 학과의 1년이 지나가고, 카리나가 3학년에,
내가 2학년으로 진학했을 무렵, 드디어 적이 마수를 뻗어왔다.
'렉스…, 나는 이제 싸울 수 없어.'
"어째서야!?" 라고 물었다.
카리나는 항상 차고 다니던 안대를 벗고,
(마안을 봉인하기 위해 착용한 것)
팔꿈치에서부터 감은 붕대를 풀며 말했다.
'나에게는… 고등학교의 수험이 있어….'
우리들은 눈앞의 현실에 가로막혀버렸다.
카리나는 외부 진학 희망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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