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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 소설/백만 번 전생한 나는, 평화로운 세상이라도 방심하지 않는다.

23화 두 사람은 사춘기

by Hellth 2022.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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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분홍색 꽃이 만개한 가로수 길을 빠져나가면,
완만한 오르막이 나온다.

중등 학과 교사는 그 앞에 있고,
이 완만하고 긴 언덕은 지각 직전의 학생들의 체력을 사정없이 빼앗는다.

게다가 1교시가 사회라면, 담당 교사의 졸음을 부르는 목소리도 더해져,
책상은 베개로 변화하고, 단단한 의자는 침대로 변모한다.

친구들의 얼굴은 초등 학과와 별다를 바 없었다.

외부 입학생들도 적어, 그곳에는 쉴라가 없는 것
제외하고는 초등 학과의 반이 그대로 옮겨진 느낌이었다.

중등 학과 1학년이 된 나는 창가 밖을 보는 것이
버릇이 되어 있었다.

여태까지 살아오며, 나는 진지하게
[혹시 이 세계에는 적이 없는 거, 아닐까?]
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분명히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반신반의하는 수준이다.

그렇다, 나는 인생에 싫증이 났다.

중등 학과.
산수가 수학이 되고, 사회가 종류별로 나뉘며,
국어는 고대 언어 과목이 추가되었다.
체육은 남녀 따로따로, 남자애들 사이에서는
[길을 가다 습득한 야한 잡지]의 교환이 유행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활력이 넘치는 친구들을 바라보며 미소 지을 뿐.
너무나 시시하다…. 사는 의미란.
삶이란, 사람은 어째서 사는 것일까?

모르겠다. 모르겠다.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다.
인생은 죽지 못해 사는 것뿐인 게, 아닐까?

그리고 나는 누구와도 얽히지 않고,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에는 옥상에 올라가,
멍하니 풍경을 바라보기만 했다.

붙잡고 있는 투신 방지용 펜스는 군데군데 녹이 슬어 있었고,
그 모습이 마치 내용물은 추한 인간과 같아 보였다.

이 권태감의 정체는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다.

나는 알고 싶다.
이 인생이 헛된 것이 아님을.
누군가에게 내 인생을 인정받고, 위로받고 싶었다.

하지만, 이 고민은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가 없다.

이세계 전생.
정체는 모르지만, 존재한다는 증거조차 없는
[적]과의 싸움.

그렇다…,

이 허무함은 이해자가 없는 것이 원인이었다.

13살이 되던 해,
내 마음에 [혼자]라는 사실이 무겁게 덮쳐왔다.

안나 선배는 학생회 일로 바빠,
요즘은 대화도 못하고 있다.

밀림도 점차 우리 집에 놀러 오는 빈도가 줄고 있다.
물론 만나면 친하게 지내고, 휴대폰으로 연락을
주고받는 일도 많지만, 내 고민을 털어놓을 상대는 아니다.

쉴라, 사라진 그녀를 떠올린다.

따지고 보면 거리낌 없이 시비를 걸 수 있었던 건,
그녀뿐이었다.
지금까지는 의식조차 하지 않았는데,
갑작스레 그녀와 보낸 시간이 귀중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말할 수 없다.
내가 [전생] 했다는 것을.

아무도 없는 옥상이었다. 그렇기에 소리 내어 말했다.
아니, 누가 듣는다 하더라도 상관없다는
자포자기의 심정도 있었다.

'전생?'

그렇기에 내 혼잣말을 누군가 들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도 자포자기한 채, 애매한 미소를 띠며,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그곳에는 안대로 왼쪽 눈을 가리고,
팔꿈치부터 위쪽을 붕대로 칭칭 감고 있는,
목걸이를 한 여자였다.

척 보기에도 [뭔가 위험해] 보이는 그녀는
붕대를 한 손으로 안대를 가리는 듯한 포즈를 취하며 말했다.

'당신에게도 [전생]이 있었군요.
피와 살이 난무하는 세계가.'

5월의 바람이 강하게 몰아치며,
펜스를 흔들었다.

그것이 나와 카리나의 만남.

전생한 인연으로 묶인, 저주받은 운명의 시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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