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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 소설/백만 번 전생한 나는, 평화로운 세상이라도 방심하지 않는다.

29화 불가지

by Hellth 2022. 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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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서 백만 번의 전생 경험이 경종을 울리고 있다.

그래, 어째서 눈치채지 못했지?

마틴의 권유, 카리나의 승낙.
수영장에 가자는 계획이 척척 진행되고, 아무런 방해가 없었던 것이다.

즉, 내가 너무나도 쉽게 목적을 당성해 버린 것이다.

이상하다.

그야 그렇잖아, 계획이 잘 풀릴 리 없어.
잘 풀리고 있다면, 그건 [적]의 함정일지도 몰라.

그런데, 중학생의 여름방학에 남녀 둘씩 짝지어,
워터파크에 가려는 계획이 이무런 방해 없이, 청춘을 즐길 준비가 끝마쳐졌다.

틀림없다. 이건 함정이다.

하지만, 누가 무슨 목적으로 나를 함정에 빠트리려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것은 위협에 가깝다.

[적]은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그렇기에 목적 역시 모른다.
내가 [적]에 대해, 유일하게 알고 있는 것은
[투쟁심을 깍아내려한다.]라는 대략적인 방침 정도이다.

검증이 필요하다.

워터파크에 놀러 가기로 한 것이 어느덧 이번 주 주말로 다가왔다.
나는 [함정]을 설치한 장본인이 [누구]인지 검토하고 있다.

이 상황에 연루된 것은 두 세력이다.
티켓을 가지고 수영장에 가자는 얘기를 꺼낸 마틴.
그리고 내 권유를 쉽게 승낙한 카리나.

마틴은 소꿉친구다.
보육시설 시절부터 알고 지냈으니,
거의 10년을 함께 보낸 친구였다.

그런 그의 언동이나, 사상은 그럭저럭 주의 깊게 살펴보고,
조사했기 때문에 마틴이 [적] 일 가능성은 현저히 낮다고 본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친척에게서 수영장 티켓을 받았다.]
라는 것에 함정을 설치했다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친척]이 마틴을 이용해,
어떠한 목적을 달성하려는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그리고 카리나.

그녀는 아무래도 전생에서 알고 지낸 것 같은 나의 동지다.

하지만, 정작 나는 카리나에 대해 아직 잘 모른다….
[적]과의 전투를 위해, 혹은 외부 수험의 대책을 위해 라는 말을 자주 하지만,

정작 그녀의 개인 정보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

애초부터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카리나라는 여자는 여름 방학에 놀러 다니는 성격이 아니다.

그런데도 선뜻 권유를 받아들인 것이다.

[공부를 가르쳐주고 있는 것에 대한 답례.]
라는 이유로 승낙한 것에는 일단 납득을 하긴 했지만,
그것이 [가고 싶지 않은 광속성의 공간에 간다.]와
저울질해봤을 때, 답례가 우선시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여자에게 있어 변덕이란 그 정도 수준인 것일까?

모르겠다.

나는 여자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아는 것은 직접 말로 표현할 때뿐.
남자와 달리 여자의 속마음은 복잡하기에,
그녀들의 속마음을 짐작하는 데 항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수영장에 가는 날까지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상황.
이 기간 동안,

[여자를 이해한다.]라는 난행을 극복할 수 있을 거 같지는 않다.

그렇기에, 나는 여자의 속마음을 알아보기 위해,
조언자를 초대하기로 했다.

중등 학과 1학년이 된 밀림이다.

집에 초대해, 공부를 봐주는 겸 해서 밀림에게 물었다.

"다음 주 주말에 워터파크에 가게 됐는데…."

'……나, 권유받지 않았어.'

나는 테이블 너머로 보이는 밀림의 꼬리의 움직임을 보았다.

카펫 위에 놓인 그녀의 부드러운 검은색 꼬리가
바닥을 문지르듯 축 늘어져,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저건 [싫다.]는 싸인이다.

나는 당황해서 보충 설명을 하기로 했다.

"그 뭐냐…, 친구끼리의 교제라고 해야 하나?
친구들 사이에서 제시된 안건으로, 뭐랄까….
후배를 부를 상황이 아니었다고 해야 할까…."

내가 말하고도 너무 비참한 변명처럼 들렸다.

나는 말하며, 밀림 양에게 간식인 쿠키를 대접했다.
내가 내민 쿠키를 밀림 양이 다가와, 우물우물 씹으며 음미한다.

왜지?
나는 왜 이렇게 밀림 양에게 주눅이 든 거지?

[친구들끼리 가기로 한 약속에 밀림을 권유하지 않았다.]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이상한 일은 아닌데…,
어째서인지 굉장히 죄책감이 느껴졌다.

지배당하고 있다.

자체적으로 분석한 결과, 발견했다.
나는 밀림의 기분이 상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고 있다.

밀림은 귀여운 여동생과 같은 존재다. 알고 지낸 시간도 길다.
또한 지금도 최소 한 달에 한 번씩은 우리 집에 놀러 오는 사이다.
딱히 용무가 없어도 한 번씩은 꼭 찾아온다.

그것은 내게 이미 습관화되어 있었고,
어떤 사정 때문에 밀림이 한 번이라도 오지 않는 달이 있기라도 하면,

불안한 마음에 안절부절 못 할 정도였다.

그렇다.
나에게 있어 밀림은 [물], [공기], [식사], [밀림]과 같은 느낌이다.
생명활동에 필수적 요소인 것이다.

생명활동에 필수적이니, 없으면 죽는다.
밀림에게 미움을 받고 살아가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아니, 상상조차 하기 싫다.
최소 한 달에 한 번은 그 새까만 단발을 쓰다듬어주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것이다.

내가 밀림의 기분을 상하게 만드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이런 사정이 있었고,
이미 내게 있어 밀림은 아기 시절의 엄마의 젖과 같은 수준…,
아니, 밀림을 가슴하고 동급 취급할 수는 없지….

냉정하질 못 했군. 심호흡.

그렇게 침착함을 되찾은 내가 밀림에게 [여심]에 관한
질문을 하기도 전에 밀림 쪽에서 입을 열었다.

'권유?'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한테도…, 수영장, 권유해줘.'

"어? 아니, 그게 그…, 괘, 괜찮으려나? 이건 룰 위반이 아닐까?
음, 뭐랄까, 밀림에게는 조금 어려울지도 모르겠지만,
이건 남자대 남자로서 겨루는 거긴 한데….
아, 그래도 내가 밀림을 데려가면 그 이상으로 마틴을
짓밟을 수 있으니까, 뭐냐…, 그 가, 같이 갈래?"

나는 밀림에게 권유했다.

저 검은 눈동자로 지긋이 바라보면,
나는 절대 그녀를 거스를 수 없게 된다.

시큰둥한 표정을 짓고 있던 밀림이 살짝 웃으며,
허리 뒤에 있는 꼬리를 붕붕 흔들었다.

치마와 꼬리의 궁합은 너무나도 나쁘기에.
레깅스를 입고 있는 밀림은 치마가 말려 올라가더라도 크게 걱정이 없다.
그렇기는 한데, 그런 행동은 내 앞에서만 해줬으면 한다.

밀림은 쿠키를 하나 집어, 내게 내밀었다.

나는 그것을 입으로 받아 문 뒤, 고민했다.
마틴에게 [한 명 더 데려가도 되냐?]라고 물었다간, 발광하지 않을까.

세상에는 모르는 것이 너무나도 많다.

특히나 여자의 생각은 더더욱 모르겠다.
내게 있어 여자란,

너무나도 복잡한 메커니즘으로 움직이는 수수께끼에 둘러싸인 지적 생명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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