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내는 것이 폼 잡을 일은 아니라는 걸, 알고는 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나는 밀림을 설득하면서까지,
밀림의 티켓 값을 대신 내주겠다고 해버렸다.
이해가 가질 않는다.
[지불하고 싶다는 밀림의 의사를 한사코 거부하면서까지,
결코 많다고 할 수 없는 저금을 깨 가며 대신 지불한다.]
는 과정이 백만 번의 전생을 경험한 나조차,
어떤 이유로 이런 행동을 범했는지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만,
내가 대신 지불하기로 결정 난 뒤에 들뜬 기분이 들었기에,
아마도 어떤 자기만족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 있던 워터파크에서의 일들을 상세하게
되짚어 보는 것은 너무 의리 없는 짓이라 생각한다.
마틴은 결국, 아무도 데려오지 못했던 것이다….
이건,
[마틴, 패배자! ㅋㅋㅋ] 라고 웃고 넘길 얘기가 아니다.
만약의 일이지만, 친구들을 꼬셨다면
못해도 한, 두 명은 마틴의 권유에 응했을 것이다.
혹은 후배.
축구부에서 활약하고 있는 마틴은 제법 인기가 있어,
마틴에 대해 잘 모르고, 마틴을 동경하는 후배들을
속여 데려오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중에 마틴에게 들은 것이지만…,
그는 내게 폼을 잡고 싶었다고 한다.
내가 여자 선배를 꼬셨기에,
마틴 역시, 여자 선배를 꼬시고 싶었던 것이다.
거기에 내가 여자 후배까지 데리고 간다 연락한 것이다.
그때까지도 아직 권유에 응한 상대를 찾지 못한
마틴은 몹시 초조해했고, 스스로 허들을 높여버렸다….
무려, 고등학과 선배를 꼬시기로 한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허무맹랑한 이야기다.
중학생은 고등학생이 보자면 애나 다름없다.
안나가 좋은 예시일 것이다.
그녀에게 있어, 나는 항상 아이였다.
또한 안나의 외견을 보면 알 수 있듯….
저렇게 키가 큰 중학생은 어디를 둘러봐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고등학생은 골격부터 이미 어른인 것이다.
우리들과 같은 애송이들의 꾐에 넘어올 리 없다.
나는 마틴을 불쌍히 여기면서도,
약간의 우월감을 느꼈고, 그의 건투를 빌었다.
결국, 그날은 하루 종일 마틴의 눈치만 살폈던 것 같다.
물론, 카리나나 밀림을 등한시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워터파크에서 놀던 날,
가장 신경을 많이 쓴 것은 마틴이었다.
'렉스, 너는 좋은 녀석이야. 역시 동성 친구는 좋구나….'
그렇다,
우리들은 여자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다.
우리들은 아직 애들이기에…,
여자와 노는 것보다,
같은 남자들끼리 노는 편이 마음이 편했다.
다만, 여자 친구가 생긴다면, 사이좋은 녀석들한테
자랑해야지 정도는 생각하고 있었다.
여성에 대한 실례가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리숙하기에 그런 생각을 한 것이다.
그래도 자랑하고 싶네….
넌지시 슬쩍 [나, 여친 생겼다.] 라고 말하며,
친구들에게 자랑하며 놀리고 싶은 게 아니라…,
[설마, 여친 생겼나?] [어라, 어떻게 알았냐?]
라는 식으로 자랑해보고 싶지….
"이해해."
우리들은 수영복 차림으로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반나체로 껴안고 있는 남자 중학생들의 모습이 신기했는지,
주변에서 웅성대기 시작했고,
밀림은 꼬리를 휘두르며 나를 때렸다.
카리나는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카리나는 대체 무엇을 깨달은 것일까.
그러던 중 카리나가 말했다.
'남자끼리라…, 나쁘지 않네.'
그녀는 역시 내 편이다. 마틴 역시 내 편이었다.
카리나와 밀림을 데리고 온 나를 보며,
마틴이 욕을 내뱉는 바람에,
워터파크에서 논다는 계획이 무산될 뻔한
오전의 일들을 까맣게 잊고,
우리들은 해 질 녘까지 원없이 물놀이를 즐겼다.
돌아오는 길,
카리나를 역까지 데려다주었을 때, 그녀가 말했다.
'렉스, 나는 오늘 있던 감동을 잊지 않을 거야.
남자들끼리의 우정….
아니, 그 광경, 그 충격은 잊지 못할 거야.'
우리들의 모습이 주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줬다는 것은
예상 밖의 일이었지만,
그래도 카리나가 감동했다니, 나쁜 일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러니, 분명 오늘은 좋은 날이었고,
이번 생의 나는 전생보단 아주 조금 더
행복하지 않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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