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나는 수험에 성공해, 외부 고등 학과로 진학했다.
소소하게나마 송별회도 열었다.
참가자는 나와 밀림, 그리고 마틴과 그녀뿐이었다.
그녀의 개인적인 친구는 오지 않았기에,
전생에 관하여 물어볼 만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그리고 나는 드디어 3학년이 되었고,
작년 10월쯤부터 왠지 모르게 학생회장이 되어버려,
임기 만료까지 분주하게 활동했다.
당연하다는 듯이 밀림에게 학생회 입부를 권유했고,
밀림은 권유를 받아들였다.
성적 쪽은 문제가 없기에,
이대로 에스컬레이터식으로 진학하며 고등학과 과정을 밟게 될 것이다.
분주하면서도 평온한 나날들이 지나간다.
그렇기에 분명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이라,
나는 각오하고 있었다.
이번 생의 나는 분명 전생에 비하면,
조금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 주변 사람들이 불행해지지 않았고,
나 또한 인생을 조금은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평온하다.
이건 전조다. 예를 들자면 고무.
고무는 늘리면 늘릴수록 강한 반발력으로 줄어들으려 할 것이다.
현재 내가 보내고 있는 평온한 시간은
고무를 늘리는 시간일 뿐인 것이다.
언젠가 반드시 온다. 곧 온다. 아니, 이미 와 있다.
나는 나를 덮치려 드는 [적]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정보 수집은 가능한 최선을 다하고 있고, 자기 단련 또한 충분하다.
다만, 적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덤벼들기 일쑤기에,
사전에 얼마나 준비를 하든 무의미해지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진정한 적은 그림자조차 드러내지 않는 법이다.
빈틈을 전혀 보이지 않는 적은 언제나 나를 전율케 했고,
적은 사실 없는 게 아닐까 하고 믿고 싶은 충동을
견뎌내는 데에는 어마어마한 의지가 필요했다.
[눈에 띄지 않는다.], [눈에 띄지 않는다.], [눈에 띄지 않는다.]
나는 항상 이 말을 세 번 되뇌이고, 단상 위로 올라가,
학생회장으로서 인사를 한다.
중등 학과 학생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로 쏠린다.
나는 최대한 눈에 띄지 않도록, 평범한 인사를 끝마친 뒤,
교사들에게 강요받아 어쩔 수 없이 치는 듯한 박수를 받으며,
단상을 내려왔다.
오늘도 존재감을 지우며, 모두의 주목을 이끌고,
한 학기의 종업식을 끝마치며, 여름방학에 돌입했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밀림을 차기 학생회장으로 만들기 위해,
여기저기 바쁘게 움직였더니, 어느새 문화제도 끝났고,
학생회장 선거에서도 내 계획대로 밀림이 회장으로 당선되었다.
너무나 평온한 시간이 흘러간다.
중등 학과는 그렇게 끝마치고, 별다른 사건 없이
[중등 학과를 졸업할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던 찰나─.
그 빈틈을 노려 찔러오듯, [그것]은 나타났다.
'오랜만이네, 나, 기억해?'
봄방학.
중등 학과와 고등 학과 사이에 위치한 기간─.
고등 학과 반배정 표를 보고 있는 내 등 뒤에서,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뒤를 돌아보자,
그곳에 있던 것은─ 붉은 머리의 여자.
나와 같은 교복을 입고 있던 그 녀석은,
초등 학과를 졸업하며 사라진, 4월생의 쉴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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