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제를 끝마치고서야, 올해 대규모 행사들이
모두 끝이 났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도 잠시,
카리나의 입시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에스컬레이터식 학교에서 일부러 외부 진학을 하는
학생의 사정에 대해서 캐묻지 않는 문화가 존재했다.
대다수가 집안 사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거나,
때로는 가정형편상 진학 자체가 힘든 학생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하는 계절이 지나고,
수험 막바지에 돌입할 때까지,
나는 카리나가 외부 진학을 선택한 이유를 알지 못했다.
'반에 적응하기 좀 힘들었지.'
느닷없이 한적한 도서실 한편에서 대화가 시작됐다.
'나는 중등 학과부터 외부 입학반이었는데,
같은 반 애들 반 이상이 초등 학과에서
에스컬레이터 식으로 진학한 얘들이잖아?
그래서 뭐랄까…, 이미 그룹이 형성된 상태라,
어느 그룹에도 속하지 못했거든….
그런데 이게 고등학과까지 이어진다니, 조금 그렇네.'
만약, 내가 인생 초회차였다면,
[고작 그런 일로 고민하는 거야?]
라고 순진하게 되물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인간관계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출발부터 어긋나면 만회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이미 형성된 인간관계에 끼어드는 것은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나, 에스컬레이터식 학교에서는 [굳어진 인간관계]가
중등 학과를 졸업해도 계속해서 이어진다.
그렇다면, 아예 [생판 모르는 곳에서 새로 시작한다.]
라는 선택은 그렇게 나쁜 선택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렉스는 나랑 동류가 아니었지?'
봄바람이 불던 옥상에서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전생. 이 세계 반드시 존재하는 [적].
그것을 의식조차 하지 못하는 친구들….
나는 혼자였다.
나 외외의 모두가 바보처럼 보였다.
하지만, 나는 고독하지는 않았다.
돌아갈 장소가 있었으니까.
그럴 마음이 생기면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는 거처가,
반에 또는 그 이외에 있던 것이다.
'실은 외부 수험을 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어.
그야, 네가 있는 걸. 고등학과에 들어가도,
이런 식으로 너랑 함께 할 수만 있다면 좋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너한테는 나 말고도 다른 사람이 있더라.
그래서 너한테만 의지하는 건, 역시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달까.'
…그러고 보니, 여름에 워터파크에 놀러 간 이후,
카리나의 공부에 대한 열정이 높아진 것 같다.
새삼스레 그 권유가 그녀에게 있어,
어떤 전환점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반 이외의 곳으로 눈을 돌렸더니, 동지가 꽤 많더라구.
지금은 인터넷 속에서 뿐이지만,
그런 사람들과도 꽤 자주 어울리고 있어.'
동지?
그녀는 [남자들의 우정을 좋아하는 동지들이야.]라고 답했다.
남자들의 우정을 좋아하는 동지라….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잘 몰랐지만, 분명 잘 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열심히 해볼게. 그러니까 선생님, 조금만 더 어울려줘.'
카리나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이제는 안대도, 붕대도 없다.
처음 만났을 때와 완전히 달라진 그녀의 미소를 보고,
왠지 모를 쓸쓸함을 느꼈다.
그녀는 변할 것이다.
수험을 마치고 외부 진학을 하면,
내 존재를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이런 묘한 확신이 들었다.
분명, 그녀는 더 이상 [적]과 싸우지 않을 것이다.
이 세상에 숨어 있는 악랄한 진실을 마주하는 일도 없을 것이며,
[적]에 대한 대책을 세우지 않고, 평범한 인간처럼 살아갈 것이다.
…졸업해 간다.
원하든, 원치 않든, 그녀는 졸업해 간다.
어딘가 덧없이 미소 짓고 있는 그녀를 보며,
그것 역시 분명 잘 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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