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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 소설/백만 번 전생한 나는, 평화로운 세상이라도 방심하지 않는다.

27화 여름의 전쟁

by Hellth 2022. 5.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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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 가자.'

바쁜 일상을 보내다 보니, 시간이 순식간에 흘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봄바람과 함께, 벚꽃이 휘날리는 등굣길을 걸었었는데,
어느덧 뜨거운 태양빛이 내리쬐는 여름이 되어 있었다.

학생회의 일과 카리나의 교사 역할로서,
정신없는 일상을 보내던 나는 중등 학과 2학년으로 진학했고,
여름방학을 일주일 앞두고 있었다.

실감이 나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어딘지 모르게 꿈만 같았다.

그런 와중에 2학기 문화제 준비로 머리를  싸매고 있던,
나에게 마틴이 말을 걸어왔다.

수영장─.
이 학교에서 [놀러 가자]라는 말은 학교와 역 사이에

있는 대형 워터파크 시설에 가자는 것을 의미한다.

학생 할인이 가능하지만, 입장료는 결코 저렴하지 않으며,
가는데도 약간의 용기를 필요로 하는 곳이다.

시민 수영장과는 다르게.

학교 지정 수영복으로 가는 것이 조금 망설여지는 곳이다.
그렇기에 수영복 값과 입장권, 그리고 식사까지 생각하면,
중등 학과 학생들은 쉽사리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런 사정은 마틴 역시 잘 알고 있을 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 그가 말했다.

'실은 티켓이 있어.'

아무래도 친척 중에 워터파크 시설의 주주가 있다는 것 같다.
그 친척한테서 입장권을 선물로 받았는데,
여자 친구라도 꼬셔서 가라고는 말을 들었지만,
마틴에게는 여자 친구가 없었고,
결과적으로 나를 꼬시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야, 렉스. 이렇게 생각 안 해?
여친이 없더라도, 현지에서 만들면 되는 거잖아?'

"하지만, 나한테는 카리나가 있으니까…."
라고 말끝을 흐리며, 슬쩍 얘기를 꺼냈다.

예상대로 마틴은 나에게 달라붙으며, 질문을 해왔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아니, 여친은 아닌데, 3학년 선배랑 조금….
사적으로 만나고 있달까?
그래서 조금 바쁘다고 해야 하나…."

나는 여자 선배와 사적으로 만나고 있다는 것을
마틴에게 자랑하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물론 여자 친구는 아니다.
여자 친구는 아니지만…,
여자 선배와 사귀고 있다는 것을 친구에게 자랑하고
싶은 충동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결국 나는 충동을 참지 못하기도 했고,
보육시설 시절부터 알고 지낸 사이인 마틴에게 라면,
얘기하더라도 적대 관계는 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하기도 했고,
까놓고 말해서 적대 관계과 돼도 상관없다는 생각도 없지 않아 있었다.

다만, 마틴의 반응은 예상외였다.

'아, 그런 거라면 나도 있어.'

너한테? 구라 치네.

나는 의심했다─.
마틴 역시 보육시설에서 지냈기에,
1살 때는 3살 형이나 누나의 보살핌을 받은 경험이 있다.

에스컬레이터식 학교기에 자신을 돌봐주던 상대와
교제가 이어지는 경우는 적지 않다.

다만, 마틴을 돌봐주던 상대는 남자였다.
안나에게 보살핌을 받고, 밀림을 돌보게 된,
나를 마틴은 자주 부러워했었다.

그런 접점이 있는 여자도 없고,
그 외에도 여성과는 거리가 먼 13살의 남자아이가 바로 마틴이다.

그렇기에, 나는 마틴은 여러모로 앞서고 있는 나를
부러워하고 있는 입장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마틴이 단호하게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여자가 있다]며,
나와 겨루고 있다.

이게 사실이라면,
나는 마틴이라는 남자를 잘못 보고 있던 것이다.

근처에 있는 사람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 했다는 것은 크나큰 문제이다.

그렇기에 나는 말했다.

"그럼, 나도 돈을 추가로 낼 테니까, 티켓 두 장 더 사고,
서로 그 상대를 데려오는 걸로 하자.
물론 네가 데려올 수 있는 경우의 얘기지만."

솔직히 마틴이 물러서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마틴은 물러서지 않았다.

이렇게 된 이상, 나 역시 대책을 마련해야만 한다.
카리나의 이름을 댄 이상, 물론 카리나를 데려와야만 한다.

하지만, 곤란하게도 카리나는 내성적이다.

사람이 많은 장소를 꺼려하고, 피부를 드러내는 것을 싫어한다.
학생들로 북적이는 여름방학의 수영장,
카리나가 가장 싫어할 만한 장소 중 하나임이 틀림없다.

그런 카리나를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어라, 이거 답이 없네?

머릿속에선 지금이라도 그만두라 외치고 있다.
그러나, 마틴이 대답했다.

'너야말로, 얼버무릴 생각 마라.
거짓말이 아니라면, 확실히 증명해!'

해보자 이거지.

나는 물러설 수 없었다.

남자에게는 물러서면 안 될 때가 있다.
그것이 때로는 작은 고집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있지만,
목숨을 걸더라도 결코 물러서면 안 되는 때가 있다.

나와 마틴은 서로를 마주 보며,
깔보는 듯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것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는 전쟁.

남자의 자존심을 건, 중등 학과 2학년,
여름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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