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18년간은 평온했다고 인정한다.
나는 백만 번의 전생을 경험했다.
그 시간 동안 위험한 상황에 빠지지 않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고,
누군가에게 빼앗기기만 하는 인생만을 살아왔다.
평온이란, 내 인생과는 연이 없는 것….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인생만큼은 다르지 않을까?
단지 상냥하고, 평화로운 인생으로
여태까지의 고생에 대한 보답을 받는 것이 아닐까?
물론 내 마음은 이미 진정되어 있다.
사람은 언제까지고 위기 상황에 놓여 있을 수 없기에,
어떤 상황에서든 결국 적응하기 마련이다.
심지어 미래에 일어날 위기를 계속해서 상정하고 있는
나였지만, 이제는 경계를 하고 살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닌가 하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그런 나의 헤이해진 정신을 다잡는 사건이 일어난 것은
자취할 장소가 정해지고, 나머지는 도장
(엄지를 이용해 찍는 마술적인 각인을 의미한다.)을
찍어야 할 서류가 완성되기를 기다리고 있던 때였다.
'……동거하지 않을래?'
너무나도 퉁명스럽게 말했기에,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그런 사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분명 자취하게 되었고, 놀러 오라는 말도 했던 것 같다.
실제로 사이도 나쁘지 않다.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같은 반 친구이다.
서로 겨루고, 다투기도 했다.
때로는 오해로 인해, 엇갈리는 일도 있었지만,
우리의 관계는 큰 균열 없이 이어져왔다.
하지만, 동거는 또 얘기가 틀려진다.
우리가 잘 해낼 것이라는 예감은 있다.
궁합이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지금까지 함께해 온 삶이 증명하고 있다.
그렇기에 나는 긴장했다.
[잘 될 것 같다]고 생각하면 의외로
일이 잘 풀리지 않는 법이다.
그런 일을 여러번 겪어온 나이기에,
동거하자는 제안을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동거를 하게 되면 분명 장점은 있다.
집안일도 반, 집세도 반, 외로움도 반이 되며
생기와 기쁨은 배가 될 것이다.
라는 말을 듣고 나는 결단을 내렸다.
"안 돼, 너도 알잖아? 마틴."
'왜! 기쁨이 배라니까, 배!'
마틴은 단순해서 그런 감정론으로 사람을 움직이려 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오히려 마지막에 들은 외로움이 반이라는 소리에서
흔들리던 마음이 거절로 돌아섰을 정도이다.
정에 호소하는 것은 사기의 기본적인 수단이다.
집안일이 반이라고는 했지만,
집안일은 개개인마다 성향이 다르다.
수학여행을 갔을 때, 마틴은 옷을 벗어던지고,
짐은 구겨 방 구석에 처박아 놓고,
신발을 신은 채로 침대에 눕지를 않나,
그 상태로 다리를 흔들며 진흙을 휘날리곤 했다.
마틴과 나는 집안일에 대한 기준이 확연히 다르다.
마틴 기준에서 정리가 끝난 것은 내 기준에선
눈에 안 보이는 곳에 처박아두는 수준이고,
마틴의 요리는 익기만 하면 먹을 수 있다이고,
내 기준에서 요리는 먹기 쉽고, 치우기 쉬우며
맛있는 음식을 최대한 저렴하게 만든다이다.
이 차이는 반드시 다툼을 나을 것이다.
위험했다.
머릿속으로 마틴과의 동거 생활을 상상해봤는데,
내가 마틴을 죽이고 감옥에 가는 경우가 80번도 넘었어.
이 세상은 누군가를 죽이는 것에 대한 위험이 너무 크다.
상상만 했을 뿐인데, 마틴에게 살의가 샘솟았고,
그 살의에 휘둘려 내 인생이 망하는 것은 피하고 싶다.
'너, 신경질적이네….'
마틴이 무신경할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이것도 개인마다 기준이 다를 것이다.
우리 둘은 잘 맞지 않는다.
나는 주거환경이 더럽혀지는 것을 참지 못하는 편이기에,
마틴과 동거 생활을 하게 되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참지 못하고 살인을 일으킬지도 모른다.
나는 그 사실을 마틴에게도 설명해 주었다.
"뒤지기 싫으면 닥치고 있어라…."
'알겠어, 알겠어. 그래도 너도 그런 점은 고치는 게 좋아.
인생은 양보가 기본이라고. 그렇게 신경질 적이면 인기 없다.'
나는 바로 밀림을 떠올렸다.
하지만, 밀림과의 관계는 어디까지나 시범 연인.
자랑삼아 얘기하기에는 조금 꺼려진다.
그래서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너야말로 너무 적당히 살다간 평생 솔로로 살게 될 걸?"
'대학에 가면 여자친구 팍팍 만들고 다닐 거니까, 괜찮거든.'
팍팍 만든다라….
왠지 [저는 마음만 먹으면 술을 끊을 수 있습니다.
벌써 서른 번이나 끊어봤다니까요.]라는 소리로 들리는데,
이걸 마틴에게 설명하기에는 고생 좀 할 것 같다.
'어쨌든 가구나 보러 가자. 기분이 바뀔지도 모른다고?
같이 살자고….'
싫다고 했잖아.
이렇게 또다시 나는 경각심을 되찾았다.
대학생활 또한 마틴과 비슷한 사기꾼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이 세상은 그렇게 위험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안전하지도 않다.
그것을 마음에 새기며 우리는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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