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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 소설/백만 번 전생한 나는, 평화로운 세상이라도 방심하지 않는다.

64화 렉스는 엄마인가요?

by Hellth 2022. 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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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나와 마틴의 관계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우리는 가끔 서로의 집에 놀러 가고는 한다.

우리 집에 마틴이 오면, 우리들은 특별히 뭔가를 하지는 않고,
그냥 적당히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다 배가 고프면 시켜 먹거나,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거나 한다.

딱히 이야깃거리도 없고, 목적도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의미 없는 얘기들을 주고받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마틴 집에 가는 경우는 얘기를 나눌 틈조차 없다.

'렉스 엄마, 도와줘─!'

항상 그런 구원 요청을 받고, 나는 마틴의 집으로 향한다.
그리고 수많은 [무장]들을 갖춘 채, 문 앞에 서서 외친다.

"렉스야, 청소하러 왔어."

'엄마─!'

마틴은 어린 아이나 집에서 기르는 개처럼 내게 달려온다.

나는 상대방의 기세를 이용해, 마틴을 뒤로 집어던진 뒤,
마스크와 장갑, 삼각 두건과 고글을 장착한 뒤,
양동이 속에 든 세제와 청소도구의 무게를 느끼며 안으로 들어간다.

마틴의 집은 더럽다.

세제나, 청소도구를 마틴 집에 두게 되면
[쓰지를 않아서, 어디에 뒀는지 모르겠어.]라는 상황이 펼쳐지기에,
쓸 일이 있을 때마다 챙겨 오고 있고, 부족한 것은 그때그때 사 오곤 한다.

덕분에 우리 집에는 우리 집 청소도구 외에,
마틴 집 전용 청소도구들이 존재한다.

오늘의 나는 악마 중사나 다름없다.
아직까지 추락 방지용 펜스에 부딪쳐
아파하고 있는 마틴에게 다가가 상냥하게 말했다.

"하하핫! 언제 와도 멋진 집이구나, 마틴 이병!
너와 잘 어울리는 쓰레기 같은 집이다!"

"주둥이로 똥을 싸질렀는지, 배수구까지 막혔구나!
어떻게 해야 3개월 만에 이렇게까지 더러워질 수 있는 거지!?"

나는 마틴의 주둥이에서 똥이 흘러나오기 전에,
목장갑을 집어던졌다.

"우선 쓰레기부터 치워야 뭘 하든 말든 하겠구나! 마틴 이병!
쓰레기들은 타는 쓰레기와 타지 않는 쓰레기로 분류해라!
쓸모 있는 게 있다고 말할 생각 마라! 하지만, 그래! 유예는 주마!"

"10초 이상, 이게 쓸모가 있을까라고 고민한 것들은 대게
쓸모없는 것들이니, 전부 버려라!"

마틴이 '옛써─!' 라고 대답하며 경례했다.

우리의 관계는 신이 나지 않으면 이어나갈 수 없고,
애초에 신이 나지 않는 한 내가 왜 친구의 집을 청소해주고 있지?
라는 의문이 생기며 손을 멈춰버리기에, 매우 중요한 일이다.

우리는 그렇게 흥을 돋워가며 방을 정리해 나갔다.

순식간에 쓰레기봉투가 서너 개가 나오며 바닥이 드러났고,
막힌 배수구들은 뚫리고,
물때투성이이던 욕조는 원래의 크림색을 되찾았다.

가스레인지 위에 놓여 있던 대량의 만화책들을 정리해,
겨우 화구가 보이게 됐을 무렵,
우리는 일단 휴식 겸 식사를 위해 밖으로 나갔다.

청소하러 왔을 때만큼은 마틴이 밥을 사는 게 국룰이었다.

'렉스 엄마, 고마워요─!'

모두가 나를 엄마라 부른다….

내가 가지고 있는 엄마의 이미지와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엄마의 이미지가 아무래도 다른 모양이다.

내 엄마도 전업주부가 되고 나서부터는,
(분명 내가 중등 학과에 올라갈 때까지는 맞벌이였던 것 같다.)
집안일을 하고 있었고, 집안이 쓰레기로 가득 찬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집안일에 열중하는 이미지는 아니었고,
그냥 적당히 하며 취미에 몰두해 있는 시간이 많았던 것 같은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엄마의 이미지였다.

엄마라는 것은 그래…. 뭐랄까, 자유를 보장받는 사람이다.
이런 식으로 악마 중사 역할 놀이를 하면서,
남의 집을 청소하러 오는 마스크 남자는 엄마가 아니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고, 결혼을 하더라도…,
이렇게 청소하러 와줬으면 해….'

마틴……, 뒤져라….

이렇게 우리들은 우정을 다지며 식사를 했다.

돌아오면 간신히 모습을 드러낸 바닥 청소를 시작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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