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 소설/백만 번 전생한 나는, 평화로운 세상이라도 방심하지 않는다.

70화 무더운 여름의 어느 날

Hellth 2023. 1. 20. 20:30

물에 반사된 빛이 눈부시던 어느 날이었다.

하늘에는 세계 전역을 비추는 천체가 존재했다.
나날이 더워지는 계절, 한 번 해결된 나의 [장래에 대한 불안]을
뜨거운 열기로 지글지글 달구며 다시금 걱정을 떠오르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이 불안과 초조함에 대해,
딱히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나는 이미 충실하게 학업을 끝마쳤고, 마음의 준비를 했다.
알바로 번 돈은 대부분 저축을 해,
설령 바로 취업을 하지 못 하더라도 잠시 동안 연명할 수단도 있었고,
애초에 아버지가 운영하는 학원에 취직한다는 최후의 수단 또한 준비되어 있었다.

만반의 준비를 끝마쳤으니 안심해도 된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이 취약한 인류의 육체에 깃든 내 미숙한 정신은
불안과 초조로 혼란에 빠져있었다.

그런 나를 지켜보던 밀림이 드물게도 먼저 권유를 해왔다.

'수영장 가자.'

그곳은 내가 중학생 시절 카리나 일행과 함께 갔던 수영장이었다.

시간은 흘러 세상은 변하고 있었다.
어릴 적 놀았던 공원은 어느새 주차장으로 변해 있었고,
인근 상점들은 체인점들로 바뀌어 있었다.

노부부가 운영하던 음식점은 커다란 맨션에 흡수되어,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고, 초등 학과 시절을 보낸 교사조차
리모델링이 되어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돼 버렸다.

밀림과 둘이서 수영장의 가장자리를 걸으며,
나는 전과 다름없는 수영장의 모습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다, 이 수영장은 [입방체]였다─.
내가 동경해 마지않는 모습. [불변]과 [영원]을 상징하는 형상.
변함없이 영원히 사랑받는 것. 내가 목표로 삼아야 할 것….
그것이 바로 입방체였다.

"나는, 입방체가 될 거야. 입방체가 될…."

'렉스, 역시 많이 피곤했나 보네.'

나는 피곤했던 것 같다.

밀림의 제안으로 우리는 수영장 가장자리에 서서,
멍하니 수영을 하는 손님들을 지켜보기로 했다.

여름방학 시즌에 들어선 만큼 학생들이 많이 보인다.
가족끼리 놀러 온 모습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이 정도 크기의 수영장인데도,
사람이 많다 보니 아무래도 비좁아 보였다.

그러던 중, 문득 내 눈에 띈 것은 어린 여자아이였다.

수영복 차림의 어린 여자아이를 눈으로 좇는다─.
이렇게 말하니 정말 수상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내가 눈으로 좇고 있는 것은 여자아이뿐만이 아니라,
남자이아 또한 쫓고 있기에 균형은 맞춰져 있다.

아무래도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데이트를 하러 온 것 같다.

아슬아슬하게 보호자 동반 없이 들어올 수 있는
나이대로 보이는 두 사람.
풋풋한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옛 생각이 떠올랐다.
나와 밀림에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
라고 생각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연인다운 일은 하나도 하지 않았으니까.
풋풋함 이전의 문제였다.

"미안해."

나는 어째서인지 밀림에게 사과했다.

'갑자기 왜?'

그 물음에 답변해줄 수 없었다.

사과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많다.
가슴속으로는 여러 말들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우선순위를 정할 수 없기에, 목이 메어 말이 나오질 않았다.

나는 다시 한번 미안하다 사과했다.
그리고 고맙다고 얘기했다.

아무것도 전달되지 않을 것이다.
그럴 터였는데 무언가를 느낀 것 같다.

밀림은 조용히 내 손을 잡아주었다.
나도 그 손을 조금 힘을 주어 잡았다.

여전히 우리 사이에 오고 가는 대화는 적었고,
왜 이러고 있는지도 설명할 수 없다.

모르는 것 투성이인 어느 여름날.
하지만,

오늘만큼은 어렸을 때처럼 마음껏 놀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