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쉴라와 명령권과 자존심
인생이란, 자존심을 적절히 버려가며 나아가는 여행길이다. 자존심──. 그것은 정신적인 걸림돌. 사과해야 할 때, 사과하지 못하고, 누군가를 의지해야 할 때, 의지하지 못하며, 행동해야 할 때, 행동할 수 없다. 자존심이란, 정작 아무런 가치가 없어 보여도, 절대 잃을 수 없는 보물처럼 보이기에 크나큰 골칫거리다. 자존심만을 내세우다, 정작 소중한 것을 잃는 일 또한 빈번히 일어난다. 그렇기에 나는 자존심 따윈 진작에 내버리기로 마음먹었고, 여태껏 적절히 자존심을 버려가며 살아왔다. 내 보물은 내 목숨이다. 그 이상은 필요 없다. 그 외에도 필요 없다. [천수를 누린다]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자존심마저 내버리겠다는 것이 나의 자존심이었다. 그런데, 이 자존심이라는 것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이성을 ..
2022. 7. 1.
30화 남자의 우정
돈을 내는 것이 폼 잡을 일은 아니라는 걸, 알고는 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나는 밀림을 설득하면서까지, 밀림의 티켓 값을 대신 내주겠다고 해버렸다. 이해가 가질 않는다. [지불하고 싶다는 밀림의 의사를 한사코 거부하면서까지, 결코 많다고 할 수 없는 저금을 깨 가며 대신 지불한다.] 는 과정이 백만 번의 전생을 경험한 나조차, 어떤 이유로 이런 행동을 범했는지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만, 내가 대신 지불하기로 결정 난 뒤에 들뜬 기분이 들었기에, 아마도 어떤 자기만족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 있던 워터파크에서의 일들을 상세하게 되짚어 보는 것은 너무 의리 없는 짓이라 생각한다. 마틴은 결국, 아무도 데려오지 못했던 것이다…. 이건, [마틴, 패배자! ㅋㅋㅋ] 라고 웃고 넘길 얘기가 아니다..
2022. 6. 3.
29화 불가지
내 안에서 백만 번의 전생 경험이 경종을 울리고 있다. 그래, 어째서 눈치채지 못했지? 마틴의 권유, 카리나의 승낙. 수영장에 가자는 계획이 척척 진행되고, 아무런 방해가 없었던 것이다. 즉, 내가 너무나도 쉽게 목적을 당성해 버린 것이다. 이상하다. 그야 그렇잖아, 계획이 잘 풀릴 리 없어. 잘 풀리고 있다면, 그건 [적]의 함정일지도 몰라. 그런데, 중학생의 여름방학에 남녀 둘씩 짝지어, 워터파크에 가려는 계획이 이무런 방해 없이, 청춘을 즐길 준비가 끝마쳐졌다. 틀림없다. 이건 함정이다. 하지만, 누가 무슨 목적으로 나를 함정에 빠트리려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것은 위협에 가깝다. [적]은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그렇기에 목적 역시 모른다. 내가 [적]에 대해, 유일하게 알고 있는 것은 ..
2022. 5. 27.
28화 동료
물론 카리나는 거절했다. '나에게 있어, 햇빛은 적이야. 녀석과는 함께 어울릴 수가 없다고.' 그리고 수영복이라던가, 조금 부끄럽기도 하고…. 라며, 작은 소리로 덧붙여 말했다. 사실 이쪽이 본심이지 않을까 싶었다. 첫 시도는 나쁘지 않았다. 거듭된 만남과 자연스러운 보디 터치로, [혹시 카리나는 나를 좋아하는 거, 아닐까?] 라는 생각을 품고 있기는 했지만…. 신중한 성격인 나는 혹시나 카리나가 나에게 무관심한 상태이며, 수영장에 가자고 권유해도, [너랑? 내가 왜?]라는 대답을 들은 뒤, 마음의 상처를 입을 각오까지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떨쳐낼 수 있었다. 카리나는 역시 나를 좋아하는 걸지도 모른다…. 도서실에서 바로 옆자리라는 미묘한 거리감에 두근거리며, 나는 주위에 폐가 되지 않도록..
2022. 5.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