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해 봐, 선생님이라는 단어 왠지 좀 야하지 않아?'
'너희들은 아직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우리 주변에는 커플들이 넘쳐나지.
창밖을 봐, 작은 새가 나뭇가지 위에 앉아 있지?
그 시점에서 벌써 나뭇가지가 작은 새에게 깔려 있고
그걸 보고도 아무런 손을 쓸 수 없는 나뭇잎이라는 느낌이잖아.'
'나는 디지털파지만 가끔 아날로그도 좋다고 생각해.
아날로그로 좋은 그림을 그리면… 질투하게 되잖아. 디지털 자식들.'
카리나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여러 가지고마운 조언들을 해주고 떠나갔다.
심지어 내 취미가 BL 동인지 제작 지휘라는 것까지 떠벌리고 말이다.
잠깐, 취미가 아니라고!
아마 이 세상에서,
'선생님! 저희들의 BL 동인지 제작을 지휘해 주세요!'
라는 말을 여중생에게 들은 교사는 나밖에 없지 않을까.
"싫어."
뭐, 차라리 BL 동인지 제작 동아리인 것을
알게 된 것은 서로에게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위압감이 없으며 학생과 거리가 가까운
타입의 교사를 목표로 삼고 있다….
카리나의 방문은 그점에 있어서는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밖에 여러모로 희생하게 된 것도 있지만….
은근슬쩍 부원들을 자신의 동인 서클로 빼내려고 시도했기에
카리나가 빼앗아간 것은 예상외로 많을지도 모른다.
이리하여 1학기 문예부는 열정적인 활동을 했고,
그에 따른 평가와 인정을 받게 되었다.
대회 따위는 없으니 명문 문예부가 될 수도 없기에
이대로 소소하게 계속될 것이다.
(물론 정상적인 문예부였다면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그것은 제1 문예부의 몫이다.)
대회도 없고 부상도 입을 일 없는 동아리 활동이기에
책임자로서는 편하지만 카리나의 방문 이래로
나는 얕은 늪지에서 노는 아이들의 등을 떠민 것은
아닌가 하는 후회에 계속해서 시달리게 되었다.
카리나만 얽히면 나는 어째서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걸까…?
자나 깨나 카리나 생각만 하고 있는 것 같다….
이제 여름 코미케도 코앞인데,
분명 발등에 불이 붙은 것처럼 난리를 피우고 있겠지.
농땡이 피운 것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혹은
내게 혼나기 싫어 연락을 하지 않는 것일까.
아슬아슬하게 연락해서 지금이라도 늦지 않도록
스케줄을 짜줘! 그리고 요리랑 청소도 해줘! 라고 말하겠지.
카리나의 비서 업무를 맡은 것은 실수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이유로 여름에는 동아리 활동을 하고 싶어하는 학생도 없었고,
여름방학에도 통상적인 업무는 있었지만 여가시간이 나름 많아졌다.
(혹시 모를 카리나 서클에 참가할 여견을 마련하기 위해,
또한 등을 떠민 것 같은 죄책감 때문에 무리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조금 어중간한 시기기는 하지만,
이사를 하게 되었다.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조금 더 넓은 집을 빌린 것이다.
드디어 동거를 하기로 한 것이다.
이번 여름, 나는 밀림과 동거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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