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 소설 79

9화 세뇌당한 그녀

나는 단련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두 발로 걸을 수 있게 된 후부터, 매일같이 몸을 단련하고 있다. 눈앞에는 영상을 비추는 마도 영상판 TV가 있고, 그 속에서 미친 듯이 춤을 추는 2차원 캐릭터들이 있었다. 그 미친듯한 영상은 계속해서 반복 재생되며, 나는 질릴 때까지 마도 영상판 속 캐릭터들과 같은 움직임을 따라 하고 있었다. 즐거운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는 법. '렉스는 정말 그 춤을 좋아하는구나.' '틀어만 주면, 계속 따라 춤을 추고 있고. 덕분에 그 틈을 노려 집안일을 할 수 있어 다행이야.' 부모님은 아직 뭘 모르고 있다─. 마치 내가 순수하게 흥미를 가지고, 춤을 추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춤이란 전신의 근육을 사용한다. 즉, 나는 전신의 근육을 단련하고 있는 것이다. 어..

8화 두 살배기 아이는 사명을 떠올린다

'렉슈우.' 재채기가 아니다. 내 이름을 부른 것이다. 밀림을 데리러 온 밀림의 부모들에게 들었는데, 밀림은 [파파]나 [마마]보다 먼저 내 이름을 말했다는 것 같다. 우리 부모님과 밀림의 부모님이 우리를 사시에 두고, 대화를 나누고 있다. '우리 밀림은 워낙 얌전해서, 기는 것도, 말하는 것도 다른 아이들보다 많이 느렸거든요. 그래서 불안했었는데 렉스 군 덕분에 드디어 말을…….' 밀림의 파파의 발언에 나는 성취감과 감동을 느꼈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잖아. 밀림은 이미 내 여동생이나 다름없는데. 나를 발견하면 허리에 달린 검은 꼬리를 살랑하고 한 번 흔들고, 감정이 얼굴에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귀와 꼬리를 보면 어느 정도 감정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밀림은 이미 내 가족이나 다름없다. 밥을 먹을..

7화 너무 잘난 선배

후배와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밀림은 기본적으로 정말 얌전하다. 털썩 앉은 채로, 손가락을 빨며 가만히 있는다. 내가 무슨 짓을 하던 전혀 움직이질 않는다. 놀자고 해도, 간지럽혀도 움직이질 않는다. 식사조차도 얌전하게 한다. 다만, 조용하게 기저귀를 더럽히는 일만은 그만둬 줬으면 좋겠다. 제발 좀 울어서 알려달라고. 이 수인 여자아이는 그냥 방치해도 될 정도로 얌전하기에, 내가 만약 평범한 두 살짜리 아이였다면 밀림을 내버려 두고, 동기들과 친분을 쌓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백만 번의 전생을 경험한 전생자다. 밀림의 얌전한 태도에 대한 이유도 나름 짐작이 간다. 밀림은 나를 감시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은 시시때때로 그녀의 시선을 느낀다. 밥을 먹을 때도, 화장실을 갈 때도 시선을 느낀다...

6화 새로운 만남

푸른 잎들이 파릇파릇하게 피어날 무렵, 안나는 유치원으로 갔고, 우리 보육 시설에는 새로운 아이들이 들어오게 되었다. 보육 시설 졸업식에서 안나는 울상을 지으면서도, 훌륭하게 졸업식 대표 인사를 끝마쳤다. 나는 울고 말았다. 안나가 말하는 도중에 서럽게 울고 말았다. 마지막에는 결국 안나도 울었다. 덩달아 다른 아이들도 울고 말았다. 이렇게 모두가 우는 졸업식은 백만 번의 인생을 살아오면서 처음 겪는 일이었다. 인정한다. 그 순간만큼은 나는 [적]의 존재를 잊을 수 있었다. [적]이란 무엇인가? 그 정체는 알 수 없다. 어쨌든 적들은 그림자조차 드러내지 않으며, 정체를 숨기고 있다. 하지만 [적]은 분명히 존재한다. 어찌 됐든 간에 지금까지의 인생은 너무나도 평화롭다. 평화에 찌들어 싸울 기력을 상실한 ..

5화 아름다운 이별

내가 어설프긴 하지만 달릴 수 있게 되었을 무렵, 안나가 기쁜 듯이 무언가를 내게 보고해 왔다. '안나 있지, 이제 곧 [유치원]에 가─!' [유치원.] 내가 맡겨진 영유아 감시 시설은 어떤 거대한 학원에 속해 있는 일부에 불과하다. 이 거대한 학원에는 연령에 따라, 달라지는 다양한 시설들이 존재한다. ·보육 시설 (가장 어리고, 생후 6개월 ~ 4세까지.) ·유치원 (4세 ~ 6세까지.) ·초등 교육과 (6세 ~ 12세까지.) ·중등 교육과 (12세 ~ 15세까지.) 이후 진로가 정해진 사람들은 ·전문 교육과 (15세 ~ 20세까지.) 추가적으로 배우고 싶은 사람은 ·고등 교육과 (15세 ~ 18세까지.) 로 나뉘게 된다. 기본적으로 보육 시설에 맡겨진 사람들은 그대로 학원 내의 유치원으로 들어가, 초..

4화 새로운 땅, 새로운 적

붙잡고 일어서기부터, 몇 걸음의 보행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무렵, 나는 [보육 시설] 이라는 곳에 맡겨지게 되었다. 그곳에는 나 이외에도 여러 명의 영유아들이 수감되어 있었고, [보육 교사] 라고 불리는 간수가 있어, 우리들을 항상 감시하고 있다. 분명 보육 교사들은 영유아들의 감시 전문가일 것이다. 지레짐작일 수도 있지만, 내가 울거나 했을 때, 마마나, 파파보다 더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 마마는 나를 보육 시설에 두고, 일을 하러 가버렸다(파파 역시). 하지만 이것은 기회이기도 하다. 보육 교사는 단 둘. 반면 같은 교실에 있는 영유아들은 도합 스물. 한 사람당 열명씩 감시해야 하는 체제이다. 반드시 빈틈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 틈을 노려, 마법 훈련을 한다. ─는 계획을 세웠었는데…. '렉스..

3화 아기, 자신의 가능성을 깨닫다

'있잖아, 카밀라. 아기가 가끔 정색을 하는데, 왜 그럴까?' '글쎄, 왜 그럴까? 아, 그래도 정색한 뒤에는 금방 다시 웃네. 이유가 뭘까?' '그러게.' 나는 나 자신의 힘을 깨닫고, 폭소했다. 목을 가누고, 몸을 뒤집을 수 있게 됐을 무렵. 나는 내 안에 잠들어 있는 힘을 깨닫게 된 것이다. 즉 [마법]이다. 이번 세계는 검과 마법의 세계였다. 이세계란 크게 두 종류로 나뉘는데, 대체로 [마법 세계] 혹은 [과학 세계]로 분류된다. 이 두 세계 간의 차이점은 이런저런 것들이 있지만, 가장 큰 자이점은 [개인의 에너지로 굴러가는 세계]이냐, [자원 에너지로 굴러가는 세계]이냐이다. 마법 세계는 개인 에너지로 굴러가는 세계다. 사회 구조도 [개개인이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라는 것을 전제로 성립되고 ..

2화 파파와의 조우

나라는 개체를 식별하기 위해, 사람들이 붙인 이름, 즉 코드가 있다. 렉스. 그게 내 이름인 것 같다. 이름이라는 것의 의미는 물론 아주 잘 알고 있다. 이름이란 [관리자가 가축을 구분하기 위해 짓는 것]이다. 숫자, 글자, 뭐든지 좋다. 하지만 간단한 것을 붙이는 것이 세상의 이치. 그럼 왜 나는 [렉스]인가? 답은 뻔하다. 가축의 수가 많기 때문이다. 나라는 가축에게 [레]와 [아]그리고 [1]도 아닌, [렉스]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인 것은 [레]와 [레 2], 그리고 [렉]도 이미 있기에, 이름이 겹치는 것을 피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출산이 끝나고 얼마 뒤, 나는 마마의 품에 안겨,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곳에는 분명 나와 비슷한 가축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달리, 넓은 집..

1화 백만 한 번째 인생

'귀여운 남자아이예요!' 위기에 대비하라. 싸움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아부우." 나는 신음했다. 이번 몸은 너무나도 약하다. 갓 태어난 상태에선 만족스럽게 눈을 뜨지 못하며, 주먹도 쥘 수 없고, 제 발로 움직일 수 조차 없다. 이런 몸으로 할 수 있는 건, 극히 한정적이다. 너무나도 약한 육체로의 전생. 이번에도 [꽝]인 것 같다. 나는 아등바등거리며 손발을 움직여 보았지만, 아무런 저항도 되지 못한 듯. 나를 안아 들고 바라보던 사람들은 '건강하네─.' '엄마를 닮아, 사랑스러운 아이네요.' 등 나를 깔보는 듯한 말을 늘어놓았다. 지난번 환생으로 습득한 번역 스킬이 기능하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말을 알아들을 수 있던 탓에 연거푸 귀엽다는 말을 듣고만 나는 분개하고 말았다. 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