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 소설/백만 번 전생한 나는, 평화로운 세상이라도 방심하지 않는다. 79

59화 각자의 전개

'다음번엔, 이번에 경험한 게 있으니, 평소보다 더 빨리 완성할 수 있을 거 같아.' [사람은 실패로부터 배우는 생물]이라는 말을 들었던 것은 대체 어느 세계에서였을까? 그게 아니라면, 카리나는 아슬아슬하게 결승선에 도달하는 것을 좋아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때때로 있다. 역경을 즐기는─.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역경을 이겨내는 것]을 좋아하는 기질을 가진 자가. 그런 자에게 운과 재능이 있으면, 사람들에게 [영웅]으로 불리게 된다. 카리나는 어쩌면 영웅의 자질을 가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러저러 해도, 지금까지 치명적인 실패는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그랜절 복사본]이라는 것을 제작하게 되었는데, 자포자기 식으로 완성시킨 작품이 묘하게 평판이 좋아, '아슬아슬하게 완성..

58화 너그러움의 습득

내 취미는 BL 동인지 제작 지휘다. 그렇다기보다는 지휘관을 희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확실히, 카리나에게 '취미다' 라는 얘기를 듣고, 냉정하게 BL 동인지 제작 지휘를 하고 있는 내 모습을 객관적으로 관찰해 봤더니, 영문을 모를 정도로 텐션이 높고, 굉장히 생기가 넘쳤다. 나는 누군가를 이끄는 것을 좋아하고, 정해진 계획대로 진행하는 것을 좋아했다. 왜 그런 걸까 하고 생각해보니, 계획대로 일을 진행하는 것은 지난 백만 번의 전생 속에서,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문득 떠올랐다. 과거에 이루지 못한 것들이, 작게나마 현재의 삶에서는 이루어지고 있던 것이다. 불화도 없고, 의견 충돌 또한 없다. 카리나 일행과 신인까지 포함해, 내 지휘를 잘 따르고 있고, 동기 부여 또한 높다...

57화 취미 이야기

'자신' 이란 대체 뭘까? 동아리 활동을 하지 않는 나로서는 매일매일이 [알바] 와 [강의] 로 이뤄져 있다. 뭔가를 하는 편이 좋다, 뭔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보고 싶다.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나는 아무래도 [취미] 를 가지는 것에 서투른 것 같다. 취미란, 사람을 구성하는 중대한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자면 [A 씨] 를 누군가에게 소개할 때, 어떤 식으로 말할까? [18살에 남성이고, 취미는─] 보통 이런 식으로 소개하지 않을까? 성적, 운동신경, 경력 등 물론 중요하다. 다만, [누군가와 친구가 되기 위함] 이라면, [취미] 가 가장 큰 계기가 될 것이다. '이 녀석은 렉스, 취미는 BL 동인지 제작의 지휘야.' 잠깐, 기다려! 카리나가 동아리에 새롭게 들어온 신입들에게 나를 ..

56화 계약 만기, 갱신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사랑] 이라는 것을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죽고 싶다. 지금 당장 죽고 싶다. 죽은 다음에 환생 따위는 없는 [완벽한 죽음] 이야말로, 나의 가장 큰 소망이다. 그렇다면 [완벽한 죽음] 을 맞이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천수를 누리는 것] 이 유일한 방법이다─. 라고 [전지 무능한 존재] , 흔히 말하는 [신] 에게 그렇게 전해 들었다. 환생할 때마다, 그 시절 내가 가장 사랑했던 존재의 외견으로 나타나는 전지 무능한 존재는 경계심이 녹아버릴 정도로 달콤하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사랑합니다]. 사랑하기에, 나를 되살리는 것이라 했다. 사랑하기에, 내가 전생을 반복하도록 하는 것이라 했다. 사랑하기에,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는 삶을 맛보게 하고 싶다는 단순한 생..

55화 루트 분기?

언제나 안나 양은 나보다 두 발은 앞서 있다. 물론 나보다 두 학년 정도 빠르니, 당연한 거지만. [만약 동갑이라면?] 이라는 가정 하에도 역시, 그녀는 나보다 두 발은 앞서 있을 것이다. 알바. 안나 양은 음대 3학년이며 ( 4년제 대학에 다니고 있다 ), 이제 슬슬 알바를 그만두고, 취업 길에 나설 생각인 것 같다. 나는 안나 양의 자리를 메우기 위해, 현재 교육을 받고 있다. 음악의 실습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설명을 들어도 잘 이해가 가질 않았다. 뭐랄까, 스케일이 너무 컸다. 어떤 거장의 제자로 악단에 들어가게 됐다는 얘기를 들어도, 감이 잘 오지 않았다. 어쨌든, 안나 양의 노력과 재능을 인정받았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매일매일 고된 연습을 했을 것이다. 게다가 알바까지 하고 있다니, 정..

54화 노동의 기쁨

금전은 생명이고, 저금은 HP이다. 나는 지금 학비를 지원받으며 살고 있다. 그 금액은 월세와 생활비를 제하더라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을 정도의 액수였다. 게다가 나는 절약하는 방법들을 알고 있고, 돈이 많이 드는 취미 또한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런데도 내가 알바를 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생존]을 위해서였다. 우선 이 세계 사람들 대다수가 잘못 인식하고 있는 것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사람이 일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이곳은 마법세계이며, 에너지야 개개인마다 가지고 있고, 기술만 있다면 전기세와 가스비 또한 지불할 필요가 없다. 라는 뜻은 또 아니다─. 예를 들면 과학 세계. [요리할 때 불을 사용한다]라는 경우, [가스관을 연결한 가스레인지를 사용한다]라는 방법..

53화 상상 · 동거

나의 18년간은 평온했다고 인정한다. 나는 백만 번의 전생을 경험했다. 그 시간 동안 위험한 상황에 빠지지 않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고, 누군가에게 빼앗기기만 하는 인생만을 살아왔다. 평온이란, 내 인생과는 연이 없는 것….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인생만큼은 다르지 않을까? 단지 상냥하고, 평화로운 인생으로 여태까지의 고생에 대한 보답을 받는 것이 아닐까? 물론 내 마음은 이미 진정되어 있다. 사람은 언제까지고 위기 상황에 놓여 있을 수 없기에, 어떤 상황에서든 결국 적응하기 마련이다. 심지어 미래에 일어날 위기를 계속해서 상정하고 있는 나였지만, 이제는 경계를 하고 살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닌가 하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그런 나의 헤이해진 정신을 다잡는 사건이 일어난 것은 자취할 장소..

52화 만약 처음 만난 여성이 메인 히로인이라 한다면

동경은 사람을 바꾼다. 예를 들어, 18년 전쯤의 나는 세상 모든 것들을 미워하고, 의심했으며 어떤 세상에 태어나도 적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투쟁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이 세상에서 오래 살다 보면 비유로 밖에 들리지 않는 이 말이 나의 표어이자, 나의 현실이었다. 태어난 순간부터 경주는 시작되고, 누군가 죽는 것이 유일하게 나 자신의 생존 시간을 늘려주는 방법이라 진심으로 믿고 있었다. 그걸 바꿔준 여성이 존재한다. 바로 엄마다. 생후 몇 분 된 내가 이 세상에 믿어도 될만한 상대가 있다고 믿게 된 것은 분명 그녀 덕분이다. 고민이 있을 때마다 그녀는 내게 조언을 해주었다. 나의 고민은 내가 해결했지만, 그 해결법에 대한 힌트를 준 것은 엄마였다. 18살 겨울, 내 성장이 ..

51화 자기 변화

여름 축제에서 만만하게 봐서는 안 될 것들이 세 가지 있다. 열기, 습도, 인파. 이 세 가지다. 나보다 선배인 카리나는 [뭔가 이런 느낌으로] 라는 식으로 충고를 해주었지만, 무슨 일이든 논리적이 아니라, 감각적으로 파악하는 타입인 카리나를 대신하여, 내가 후배인 밀림에게 논리적으로 충고를 해주려 했다. "우선은 그래, 화장실의 중요성부터 얘기할까?" 가볍게 설명을 마치자, 벌써 이동해야 할 시간이었고, 우리는 다소 서두르며 회장으로 향했다. 이번 축제는 정말 아무런 일도 없었고, 회장 분위기에 익숙지 않은 밀림이 곤란해지는 일 없이 무사히 종료되었다. 일을 끝마친 뒤, 우리는 야키니쿠를 먹었다. 여러 서클이 함께 한 불고기 파티로, 겨울 축제 때 카리나가 미리 약속을 잡아둔 것 같았다. 그 카리나가…..

50화 신의 현현

사람은 몇 달 주기로 기억상실에 걸리는 생물이다. 분명 지옥을 봤을 것이다. 다가오는 마감, 새하얀 원고. [하루에 5일 치 분량을 매일같이 할 수만 있다면] 이라는 말도 안 되는 스케줄 탓에 수명을 단축시켜가며 작업을 해야 했다. 그 고통은 틀림없이 두 번 다시 되풀이하고 싶지 않은 고통이었을 것이고, 제대로 계획만 세운다면 피하는 것이 가능한 고통이었다. 그런데도 카리나는 작년 일을 잊어버린 것 같다. '아니, 잊지는 않았어. 오히려 잘 기억하고 있지. 작년에는 고생했지. 복사기로 인쇄하고 일일이 수작업으로 제본할 수밖에 없지 않냐는 상황까지 갔으니까…. 하지만, 우리들은 기억하고 있어. 그런 상황이었는데도 어떻게든 해냈다는 걸.' 차라리 그냥 죽을까 싶었다. 핫! 이러면 안 돼…. 나는 평온한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