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봄 이야기
날씨가 쌀쌀해 코트를 입을만한 날이 없어, 세탁 시기마저 놓치고 말았다. 방학이 끝나갈 무렵, 봄꽃은 이미 지고 있았고, 찬 바람을 쐬며 꽃구경을 한 사람들이 몸살을 앓는 소식들이 들려오던 가운데, 새 학년이 시작됐다. 나 역시 평범하게 강의를 들으며, 동아리 활동은 하지 않았고, (동아리 활동을 탈퇴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알바와 강의만을 반복하는 지루한 대학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드디어 밀림도 대학에 들어와, 그녀와 보내는 시간은 늘었지만, 딱히 우리 사이는 진전되지 않았고, 그저 같이 놀고, 같이 시간을 보내고, 같이 돌아갈 뿐이었다. 마치, 인생이 안정기에 접어든 기분이다. 백만 번의 전생 속에서 가끔 이런 때가 있었다. 안정기…. 쉽게 말해 [오늘과 같은 날이 계속되겠구나.]라고 생각되는..
2022. 12. 16.
60화 우리들의 미래 설계
내가 옛날에 전생했던 세계에서는 신데렐라 이야기라는 개념이 하나 존재했는데, 그것은 꿈이 가득 담긴 성공적인 소망을 의미했다. 최하층에서 노력하는 자가 기적을 동료로 삼아, 권력자의 눈에 띄어 결혼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리 없었고─. 물론 있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경험할 리는 없었다. 카리나 또한, [콘티 짠 것 좀 보내주세요.]라는 단순한 권유일뿐. 작가 데뷔는 전혀 아니었다. 그래도 카리나는 '다행이다…, 양복을 차려 입고, 면접을 보는 일 따위는 절대 하고 싶지 않았는데…, 정말 다행이야….' 라며 기뻐하고 있었다.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지만, 그녀가 기쁘다면 무슨 상관이겠나. 견실함을 목표로 삼고 있는 나로서는, 그런 [도박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와 같은 ..
2022. 12. 9.
58화 너그러움의 습득
내 취미는 BL 동인지 제작 지휘다. 그렇다기보다는 지휘관을 희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확실히, 카리나에게 '취미다' 라는 얘기를 듣고, 냉정하게 BL 동인지 제작 지휘를 하고 있는 내 모습을 객관적으로 관찰해 봤더니, 영문을 모를 정도로 텐션이 높고, 굉장히 생기가 넘쳤다. 나는 누군가를 이끄는 것을 좋아하고, 정해진 계획대로 진행하는 것을 좋아했다. 왜 그런 걸까 하고 생각해보니, 계획대로 일을 진행하는 것은 지난 백만 번의 전생 속에서,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문득 떠올랐다. 과거에 이루지 못한 것들이, 작게나마 현재의 삶에서는 이루어지고 있던 것이다. 불화도 없고, 의견 충돌 또한 없다. 카리나 일행과 신인까지 포함해, 내 지휘를 잘 따르고 있고, 동기 부여 또한 높다...
2022. 12. 2.
57화 취미 이야기
'자신' 이란 대체 뭘까? 동아리 활동을 하지 않는 나로서는 매일매일이 [알바] 와 [강의] 로 이뤄져 있다. 뭔가를 하는 편이 좋다, 뭔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보고 싶다.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나는 아무래도 [취미] 를 가지는 것에 서투른 것 같다. 취미란, 사람을 구성하는 중대한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자면 [A 씨] 를 누군가에게 소개할 때, 어떤 식으로 말할까? [18살에 남성이고, 취미는─] 보통 이런 식으로 소개하지 않을까? 성적, 운동신경, 경력 등 물론 중요하다. 다만, [누군가와 친구가 되기 위함] 이라면, [취미] 가 가장 큰 계기가 될 것이다. '이 녀석은 렉스, 취미는 BL 동인지 제작의 지휘야.' 잠깐, 기다려! 카리나가 동아리에 새롭게 들어온 신입들에게 나를 ..
2022. 11.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