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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 소설/백만 번 전생한 나는, 평화로운 세상이라도 방심하지 않는다.79

31화 졸업 문화제를 끝마치고서야, 올해 대규모 행사들이 모두 끝이 났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도 잠시, 카리나의 입시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에스컬레이터식 학교에서 일부러 외부 진학을 하는 학생의 사정에 대해서 캐묻지 않는 문화가 존재했다. 대다수가 집안 사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거나, 때로는 가정형편상 진학 자체가 힘든 학생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하는 계절이 지나고, 수험 막바지에 돌입할 때까지, 나는 카리나가 외부 진학을 선택한 이유를 알지 못했다. '반에 적응하기 좀 힘들었지.' 느닷없이 한적한 도서실 한편에서 대화가 시작됐다. '나는 중등 학과부터 외부 입학반이었는데, 같은 반 애들 반 이상이 초등 학과에서 에스컬레이터 식으로 진학한 얘들이잖아? 그래서 뭐랄까…, 이미 그룹이 .. 2022. 6. 10.
30화 남자의 우정 돈을 내는 것이 폼 잡을 일은 아니라는 걸, 알고는 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나는 밀림을 설득하면서까지, 밀림의 티켓 값을 대신 내주겠다고 해버렸다. 이해가 가질 않는다. [지불하고 싶다는 밀림의 의사를 한사코 거부하면서까지, 결코 많다고 할 수 없는 저금을 깨 가며 대신 지불한다.] 는 과정이 백만 번의 전생을 경험한 나조차, 어떤 이유로 이런 행동을 범했는지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만, 내가 대신 지불하기로 결정 난 뒤에 들뜬 기분이 들었기에, 아마도 어떤 자기만족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 있던 워터파크에서의 일들을 상세하게 되짚어 보는 것은 너무 의리 없는 짓이라 생각한다. 마틴은 결국, 아무도 데려오지 못했던 것이다…. 이건, [마틴, 패배자! ㅋㅋㅋ] 라고 웃고 넘길 얘기가 아니다.. 2022. 6. 3.
29화 불가지 내 안에서 백만 번의 전생 경험이 경종을 울리고 있다. 그래, 어째서 눈치채지 못했지? 마틴의 권유, 카리나의 승낙. 수영장에 가자는 계획이 척척 진행되고, 아무런 방해가 없었던 것이다. 즉, 내가 너무나도 쉽게 목적을 당성해 버린 것이다. 이상하다. 그야 그렇잖아, 계획이 잘 풀릴 리 없어. 잘 풀리고 있다면, 그건 [적]의 함정일지도 몰라. 그런데, 중학생의 여름방학에 남녀 둘씩 짝지어, 워터파크에 가려는 계획이 이무런 방해 없이, 청춘을 즐길 준비가 끝마쳐졌다. 틀림없다. 이건 함정이다. 하지만, 누가 무슨 목적으로 나를 함정에 빠트리려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것은 위협에 가깝다. [적]은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그렇기에 목적 역시 모른다. 내가 [적]에 대해, 유일하게 알고 있는 것은 .. 2022. 5. 27.
28화 동료 물론 카리나는 거절했다. '나에게 있어, 햇빛은 적이야. 녀석과는 함께 어울릴 수가 없다고.' 그리고 수영복이라던가, 조금 부끄럽기도 하고…. 라며, 작은 소리로 덧붙여 말했다. 사실 이쪽이 본심이지 않을까 싶었다. 첫 시도는 나쁘지 않았다. 거듭된 만남과 자연스러운 보디 터치로, [혹시 카리나는 나를 좋아하는 거, 아닐까?] 라는 생각을 품고 있기는 했지만…. 신중한 성격인 나는 혹시나 카리나가 나에게 무관심한 상태이며, 수영장에 가자고 권유해도, [너랑? 내가 왜?]라는 대답을 들은 뒤, 마음의 상처를 입을 각오까지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떨쳐낼 수 있었다. 카리나는 역시 나를 좋아하는 걸지도 모른다…. 도서실에서 바로 옆자리라는 미묘한 거리감에 두근거리며, 나는 주위에 폐가 되지 않도록.. 2022. 5. 20.
27화 여름의 전쟁 '수영장 가자.' 바쁜 일상을 보내다 보니, 시간이 순식간에 흘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봄바람과 함께, 벚꽃이 휘날리는 등굣길을 걸었었는데, 어느덧 뜨거운 태양빛이 내리쬐는 여름이 되어 있었다. 학생회의 일과 카리나의 교사 역할로서, 정신없는 일상을 보내던 나는 중등 학과 2학년으로 진학했고, 여름방학을 일주일 앞두고 있었다. 실감이 나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어딘지 모르게 꿈만 같았다. 그런 와중에 2학기 문화제 준비로 머리를 싸매고 있던, 나에게 마틴이 말을 걸어왔다. 수영장─. 이 학교에서 [놀러 가자]라는 말은 학교와 역 사이에 있는 대형 워터파크 시설에 가자는 것을 의미한다. 학생 할인이 가능하지만, 입장료는 결코 저렴하지 않으며, 가는데도 약간의 용기를 필요로 하는 곳이다. 시민 수영장과는 다.. 2022. 5. 13.
26화 데니어 [눈에 띄지 않는다]라는 목표를 가지고 살고 있다. 매일 아침마다 거울을 보며, [눈에 띄지 않는다]를 삼창 한다. 눈에 띄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눈에 띄면 [적]에게도 주의를 끌게 된다. 승리란, 단순히 싸움에서 이기는 것만이 아니다. 나에게 있어 승리란, 생존이며, 그것은 즉슨, 적이 나를 죽일 필요조차 없다는 생각이 들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렇기에 내가 목표로 하는 것은 길가의 돌이다.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에 살의를 담는 자가 있을까? 적당한 크기의 돌이라면, 아무 생각 없이, 걷어차는 경우가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손가락으로 잡기도 힘들 정도의 작은 돌이라면? 그렇다, 나는 아주 작은 돌이 되고 싶다. 아무도 볼 수 없고,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길가의 작은 돌. 그걸 위해선 무엇보다 눈.. 2022. 5. 6.
25화 그녀는 공부를 못 한다 성적으로 사람의 가치를 매길 수 있는가? 나는 [매길 수 없다]라고 생각한다. 그도 그럴게 성적이란, 이 세계의 시스템 밖에 서있는 지배자인 척하고 있는 어른들이 앞으로 진출할 자들을 속아내기 위해 만들어낸 개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수함은 성적과는 바른 곳에 있다. 나는 성적표의 평가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내가 바보라고 생각하는 자는 열정이 없는 자이거나, 성급한 자, 혹은 타인을 깎아내려하는 자들이다. 카리나는 그 어떤 것에도 속하지 않는다. 진심으로 [적]과 계속 싸워온 전사다. 그렇지만 나는 생각했다…. 카리나는 바보다. '렉스, 너를 신용하기에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 나에게 공부를 가르쳐 줘.' 이때, 나는 중등 학과 2학년, 카리나는 3학년이었다. 그리고 이 세계에서는 연령이 올라갈 .. 2022. 4. 29.
24화 앞길을 가로막는 것 우리들은 잘못된 세계에 반역하는 전사다. 카리나는 나보다 1학년 위인 14살로, 최근에 [사명]에 대해 깨달았다고 한다. [사명]을 깨달은 뒤, 카리나는 지금까지의 교우 관계가 성가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나처럼 옥상에서 먼 풍경을 바라보는 일이 잦아졌다고 한다. 공감한다. 세계는 보잘것없는 거짓말들로 뒤덮여 있으며, 그 누구도 속에 있는 기분 나쁜 [무언가]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딱히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친구들은 바보다. 공부, 운동, 그리고 연애…. 그야 뭐, 눈부시고 즐거운 청춘이겠지. 노력하면 성과가 나오고, 칭찬을 들으며, 그에 걸맞은 평가를 받는다. 아니, 도중에 포기라는 선택지를 언제든지 할 수 있다는 것 또한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세계의 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내 .. 2022. 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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